| |  |
| 남극의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 언덕 위에서 췬스트랩 펭귄 한마리가 알을 품고 있다. 박수현 기자 |
#킹 조지섬의 아침
창 너머로 여명이 밝아온다. 시계를 찾아보니 새벽 3시. 비로소 남극에 왔음을 실감한다.
북반구와 반대로 여름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남위 62도13분에 위치한 세종과학기지에선 밤 10시께 일출을, 새벽 3시께에 일몰을 구경한다. 남극이라면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백야를 연상하기 쉬울 터이지만 이런 현상은 남위 66.5도 아래 지점에서부터 생긴다.
숙소를 나선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내친 김에 기지 뒤에 위치한 해발 252.2m 의 설악봉으로 향한다. 겹겹이 옷을 껴입고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나간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 했을까, 기지대원들은 근처 봉우리들에 정겨운 우리 산 이름을 붙였다. 해발 266.3m로 가장 높은 백두봉을 위시해 설악봉, 태백봉, 지리봉, 한라봉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설악봉에서 내려다보니 세종기지의 빨간 퀀셋 건물들이 하얗게 반짝이는 눈밭 사이에서 작은 성채처럼 견고하다.
갑자기 지척에서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도둑갈매기라 불리는 스쿠아 두 마리가 지척에 있다. 경계를 풀지 않은 채 기자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이 녀석들이 도둑갈매기라 불리는 것은 펭귄 알을 즐겨 훔쳐 먹기 때문이다.
해변으로 내려오자 무리에서 떨어진 펭귄 한 마리가 보인다. 펭귄은 집단생활을 하는데 이 녀석은 어쩌다가 뒤처진 것일까. 다가가니 날지 못하는 날개로 홰를 치며 '끄억 끄억' 소리를 지른다. 펭귄이 놀랐을 때는 가까이 다가가면 안된다.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도망가다 자갈에 차여 발목을 부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기지 주변에 경쾌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전 7시. 기상시간이다. 여기저기서 간밤의 안부를 묻는 인사를 시작으로 세종과학기지는 활기를 찾는다.
#남극에서의 스쿠버다이빙
남극에서 첫 스쿠버다이빙을 시도했다. 다이빙 용어로는 바다를 연다는 뜻인 '오픈 워터(Open Water)'라고 한다. 다이빙 경력 20년에 스쿠버다이빙 강사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선 통하지 않는다. 지난해 잠수담당 대원으로 월동을 한 나승구 씨는 국내에서 내가 준비해 온 장비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기지에서 보관 중인 장비를 내놓는다. 다행히 옷이 몸에 맞았다.
먼저 보온용 양말과 덧신을 신고 아래 위로 두 벌씩의 내복을 껴입는다. 다시 아래 위가 붙은 내피를 입고 물이 새지 않는 잠수복을 입는다. 손에는 특수 제작된 장갑을 끼고 얼굴 전체를 덮는 마스크를 쓴다. 잠수복 속에 겹겹이 껴입은 옷과 장비의 부력을 감안해 18kg짜리 납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바다엔 얼음덩어리가 가득 차 있다. 해안에서 10m 정도만 나가면 수심이 30~40m 까지 가파르게 떨어진다. 바닥면까지 떨어진 후 계기판을 보니 '수심 35m에 영하 1.5도'이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상승을 시작하는데 호흡이 뻑뻑해진다. 함께 다이빙을 한 나승구 대원을 돌아보니 역시 문제가 있는 듯하다. 두 사람 모두 호흡기가 얼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상승 도중 발생한 문제여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처음 입수한 지점은 이미 얼어 있어 반대편으로 출수를 시작했다. 손으로 얼음을 떠밀며 나아간다. 겨우 물 밖으로 나오자 강한 바람에 눈보라가 무섭게 휘날리고 있다. 장비를 해체하고 호흡기를 살펴보니 얼음 알갱이가 마스크 안쪽을 막고 있었다. 체류하는 동안 바다에 얼음이 사라져줘야 남극 바다 속을 제대로 탐사할 수 있을텐데….
후원 : 부산과학기술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