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표범해표가 빙산 위에서 낮잠을 자는 뒤로 펭귄 한 마리가 겁없이 다가오고 있다. 표범해표는 펭귄을 주식으로 삼는다. 박수현 기자 |
남극권에서 발견되는 해표(바다표범)류에는 웨델, 크랩이터, 표범, 코끼리, 로스해표 등 다섯 종이 있다. 이 중 대륙 건너편 로스 해에 서식하는 로스 해표를 제외한 4종은 세종과학기지가 있는 사우스 셰틀랜드 군도 인근이 주 무대이다. 이중 웨델이나 크랩이터 해표는 얼마나 수가 많은지 바닷가를 걸을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누워 자고 있는 녀석들에 발이 걸려 넘어질 정도이다.
해표, 즉 바다표범이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대로 이들은 남극바다의 먹이사슬에서 강력한 포식자의 지위를 가진다. 다른 종들이 크릴이나 오징어 물고기 등을 잡아먹는 등 성격이 비교적 온순하다면 특히 표범해표는 상당히 사납다.
표범해표는 길이 4m에 이르는 회색의 몸체에 검은색 얼룩무늬가 새겨져 있다. 물속에서 쉽게 움직이도록 유선형이며 머리와 턱이 크고 허리는 마치 영화 '쥐라기 공원'에 나오는 육식공룡처럼 불룩하다. 한번씩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 입을 쩍 쩍 벌리면 시뻘건 입 안에서 번뜩이는 날카로운 이빨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표범해표는 다른 해표나 오징어 등을 잡아먹기도 하지만 펭귄을 주식으로 한다. 이곳에서 표범해표의 사냥장면을 비디오로 본 적이 있다. 녀석들은 물 위에 떠있는 펭귄 무리 속으로 은밀하게 잠입해 그 중 한 마리를 낚아챈다. 강력한 턱에 걸려든 펭귄은 잠시 발버둥을 쳐보지만 벗어날 수가 없다. 펭귄을 입에 문 표범해표는 두꺼운 펭귄 가죽을 벗겨내기 위해 수면에 이리저리 패대기를 쳐댄다. 잠시 후 주위 바다는 벌겋게 물들고 수면에는 찢긴 펭귄 가죽만 남는다.
표범해표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24일 러시아 벨링스하우젠 기지대원들과 함께 넬슨 섬을 방문했었다. 넬슨 섬 초입의 유빙 위에는 표범해표 세 마리가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스르르 물속으로 사라졌다. 모두들 사라진 한 마리의 행방보다는 유빙 위에 있는 다른 두 마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러시아 대원들이 탄 보트로 표범해표가 몸을 솟구쳐 올랐다. 보트에 올라 타려는 듯.
제 영역을 침범한 인간들에 대한 단순한 위협을 넘어선 적극적인 공격이었다. 다행히 러시아 대원들이 노로 해표를 밀친 후 전속력으로 그곳을 빠져나왔지만 300kg이 넘는 해표가 보트에 올라타 요동을 쳤다면 보트가 뒤집어졌을 테고 물에 빠진 사람들에겐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2년 전에는 영국기지의 스쿠버다이버가 표범해표의 공격으로 숨진 사고가 발생했었다.
사실 남극에서 수중활동때 차가운 수온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는 표범해표의 존재가 더욱 큰 부담이 된다. 해양 생태계를 살펴보며 수중촬영을 하고 있는데 물속에서 '끄~윽 꾸르륵' 해표 소리가 들렸다. 그 존재가 표범해표인지 다른 해표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음을 경고하는 소리인 것만은 분명했다. 물속은 공기 중에서보다 소리 전달이 빨라 소리의 방향을 분간해 내기 힘들다. 어느 방향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있다면 방비를 할 수 있을 텐데 방향을 짐작할 수 없으니 앞뒤, 좌우, 위아래를 목이 아플 정도로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혹여 수중사진기를 놓칠까 끈을 손목에 감은 채 물속을 빠져나오며….
표범해표도 자연의 일부이며 그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것은 본능이자 권리일 터이다. 해표의 경고는 남극의 생태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자연의 경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원 : 부산과학기술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