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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 아래 잠긴 육중한 빙산 속엔 수십만 년 전의 공기방울이 응결돼 있다. 박수현 기자 |
남극의 생명은 바다에서 시작된다.
연간 평균기온이 영하 23도인 육지에 비해 남극 해역은 일년 내내 영하 1~2도로 수온 변화가 극히 적어 매우 안정된 환경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편서풍에 의해 형성된 거칠고 차가운 남극 순환해류가 남극 대륙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다른 곳의 바닷물은 남극권 안으로 섞여들 수가 없다. 따라서 생물들이 차가운 물에 생리적으로 적응만 한다면 남극 해역만큼 물리적, 화학적으로 안정되게 살 수 있는 공간은 드물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이러한 안정적인 환경 덕분에 남극 바다 속은 오랜 세월에 걸쳐 해양생물들이 다양한 종의 분화를 이루어냈다. 기자는 이번 남극 체류기간 중 30회에 걸쳐 남극 바다 속을 둘러보았다. 남극 바다의 특성 중 하나는 조간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바다에는 만조와 간조의 차이로 물에 잠겼다가 노출되기를 반복하는 조간대 갯바위 등에 따개비 등 부착성 생물이 자라고 있지만 남극은 겨울철에 바다가 얼어 결빙층까지는 해양생물이 살 수 없다.
그런데 그 이하로 내려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양한 해조류들이 무성한 숲을 이루며 그 사이에는 삿갓조개, 남극 대구, 성게, 말미잘, 해면, 불가사리 등의 생명체가 먹이사슬이라는 틀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계절상 초여름인 요즘 얕은 수심대에 부착하기 시작한 1년생 녹조류는 밝게 투영되는 햇살을 받아 앙증맞은 자태를 뽐낸다. 이들 해조류는 식물 플랑크톤과 함께 광합성을 통해 산소와 탄수화물을 생산하여 남극 바다를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지구 온난화를 막아준다. 남극 바다 식물 플랑크톤의 광합성에 대해 연구하는 세종과학기지의 송환석 연구원은 "다른 바다에선 식물 플랑크톤들이 광합성을 위해 흡수한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되돌아가지만 남극 바다에 서식하는 식물 플랑크톤들은 낮은 수온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채 바다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리기 때문에 남극 바다는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심 20~30m 바닥 면으로 내려가자 '부드러운 펄(fine-grained mud)'로 형성된 지형이 펼쳐진다. 보통의 바다와 비슷한 환경이지만 군데군데 움푹 파인 흔적이 있다. 거대한 빙산이 흘러 다니다 바닥에 걸린 자국이다.
물 아래 잠긴 부분을 살펴보기 위해 빙산 벽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매끈하다기보다는 얼음 면이 다소 거칠게 굴곡져 있다. 해수에 깎이고 쓸려나간 흔적들이다. 빙산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남극의 얼음은 오랜 세월 동안 내린 눈이 다져져 만들어진 결정체이다. 이 얼음 속에는 눈이 내린 당시의 공기 입자가 들어 있다. 얼음덩어리인 빙산은 해수 속에서 녹으며 공기방울을 아지랑이처럼 뿜어올린다. 수십만 년 동안 얼음 속에 갇혀 있던 공기방울은 비로소 얻은 자유를 만끽하며 상승한다.
세계 각국 연구원들의 노력으로 남극 바다의 신비가 조금씩 벗겨지고 있지만 인류가 연구한 것은 아직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수온이 낮아 인류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있지만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남극 바다의 자원을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