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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오순환 |
옛날 옛적 한 옛적에 한 고을에 무서운 도깨비가 살았는데 이 도깨비가 휘두르는 방망이가 얼마나 무시무시했던지 모두가 얼씬을 못했는데 신통하던 것은 착하고 마음씨 고운 사람이 "돈 나와라, 뚝딱!" 하면 돈이 와르르르, 쏟아졌지만 고약한 사람한테는 영락없이 응징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두려워 했는데 어디 누가 어떻게 되었는지 한 번 봅시다요요요…
예식장. 한 쌍의 젊은 남녀를 위해 마련된 최상의 의식이 펼쳐지는 장소가 결혼 의식장이라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성장을 두 사람은 분명 신랑 신부이지 않겠는가. 거기에 또 필요한 사람이라면 주례사를 하는 인사이리라. 형편없는 가식과 가당찮은 미사여구를 거침없이 설(說)하는 사람이 또 주례가 아니겠는가. 이를 테면 허가낸 거짓말쟁이가 주례였다. 일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하객들로 가득 메운 장내를 둘러보며 주례가 들어섰다. 사회자의 소개에 따라 근엄하게 섰는 주례석 앞으로 차례대로 입장한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섰던 것도 그때였다. 마이크를 앞으로 당긴 주례가 점잖게 입을 열었다.
"…에…," 그런데 주례의 말이 나오질 않았다. 마이크가 고장인가. "…에…, 에…?" 신랑과 신부는…하려는데 목너머에서 걸린 말이 밖으로 발성되질 않았다. 마이크를 잡은 주례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장내의 쏟아지는 눈길을 의식한 주례는 일순 당혹감으로 어쩔줄을 몰라하는 눈치더니 손으로 넥타이를 잡고 흔들었다. 그런 다음 자신의 목울대를 움켜잡고 흔들어댔다. 그래도 뭔가 안 되는 눈치였다. 하객들은 주례가 하는 양을 의아하게 지켜보고 거기에 신랑과 신부도 멀뚱하게 섰던 것이었다. 그래서 어쩔줄을 몰라하던 주례가 급기야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러자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것은 사회자였다. 우왕좌왕 하던 사회자마저 따라서 뛰어 나갔다. 밖으로 나온 주례와 사회자는 달리기 선수가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얼마간 달리다 숨을 시끈거렸다. 한참을 뛰다 주례는 숨을 돌리지 못해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 그때는 사회자도 보이지 않았다. 주례는 숨을 돌리기로 했다. 헐떡거리는 숨을 돌리게 되자 시큼한 쓰레기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거기는 세상의 쓰레기는 다 모여서 썩고 있는 쓰레기 집하장이었다.
한낮이라 인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사람이 없다는 것에 우선 안도하며 다시 목을 잡고 아아, 하는 소리를 질러 보았다. 마찬가지였다. 도통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두 번, 세 번…, 거듭 거듭 했지만 여전했다. 멀쩡하던 목이 이 무슨 해괴한 노릇이란 말인가. 그는 당황해 어쩌할 바를 몰랐다. 그러다 소변이 마려워 거기 담장에 붙어 서서 오줌을 갈겼다. 그런 다음 바지의 지퍼를 올리다 보니 거기 담벼락에서 오줌을 잔뜩 뒤집어 쓴 웬 사내가 그를 향해 빙그레 웃고 있지 않겠는가. 조롱하는 것도 같았다. 오줌을 뒤집어 쓴 것은 벽보 속의 사진이었다. 그래서 사내의 면상을 냅다 질러 버렸던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소리내어 욕설을 퍼부어 주었을테지만 그렇게 하질 못하고 속으로만 구시렁거렸다.
"이 놈. 보긴 뭘 봐?" 그랬지만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되게 본 듯한 얼굴이었다. 사내는 반쯤 찢기다 남은 총선 때 붙인 벽보 속에서 그냥 빙그레 웃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온갖 욕설로 된 낙서가 가득했다. 누군가가 볼펜으로 잔뜩 휘갈겨 쓴 것이었다. '사기꾼' '이 거짓말쟁이야' '죽일놈아!' '거짓과 허위와 위선의 인간아!'등이었다. 총선은 얼마 전에 치렀다. 국회의원을 꿈꾸며 그도 출마를 했다가 형편없는 표차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고배를 마신 것은 저런 돼먹지 않은 인간 쓰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울화가 치밀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자신이 낙선한 것은 진실되고 참된 말을 너무 많이 했던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유세장에서 한창 사자후를 토하느라 '여러분, 저는 길고 튼튼한 다리를 놓겠습니다' 했을 때 옆에서 참모진이 '다리를 놓다뇨? 우리 지역에는 다리 놓을 곳이 없지 않습니까' 하고 만류했다. 그는 그때 화를 버럭 내었던 것이다. '무슨 소리야? 다리를 못 놓는다고? 그럼 다음에 또 강을 만들겠다고 하면 될 거 아냐? 유권자란 본래 그렇게 속여야 되는 거야. 어떻게 전부 진실된 말만 하냐?' '그래도 그건 사깁니다.' '뭐? 사기를 아무나 치는 줄 아나? 얼빵한 것들. 뭘 좀 알고서 말해.'
그는 담벼락에 붙어 있는 사진을 향해 발길질을 하려다 흠칫해서 다시 보았다. 아, 그런데 어디서 본 듯하던 그 사진, 사진 속의 그 얼굴,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이지 않겠는가. 그는 그만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다.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를 않아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만 두드리던 끝에 안 되겠다 싶어 병원으로 내달아갔다. 병원으로 달려간 그는 말이 되질 않아 바쁜 마음에 의사를 상대로 손짓 발짓을 했는데 의사가 먼저 그를 알아보던 것이었다. 의사는 그가 얼마 전 총선에서 국민기민당(國民棄民黨)후보로 선거 기간내내 멀쩡하게 유세전을 펼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다니. 의사도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였다.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리던 의사는 우선 필담을 하기로 했다.
"…청각에는 이상이 없는가요?" "없, 없습니다." "호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인지 의사가 다시금 물었다. "언제부터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까?" "오늘 아침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예식장에서 주례사(主禮辭)를 하려다가 그만…, 그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말이 나오질 않았…"
다른 동물도 아닌 사람이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다니. 얼토당토않은 일인지라 의사가 되레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여간, 며칠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의사는 먹는 약까지 한 봉지 조제해 주었다. 하지만 그건 약이 아니었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낌새인지라 의사가 조제한 약은 소화제로 된 플라시보일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 와서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 달이 되어도 도무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그는 가족들 손에 이끌려서 용하다는 묻거리한테까지 찾아가게 되었다.
묻거리가 하는 말이었다. "에그…, 쯧쯧. 별 것 아냐. 원인은, 선거 때 너무 많은 말을 해댔기 때문에 말의 씨(素)가 전부 소진 고갈돼서 그래. 아, 샘에도 물을 한꺼번에 다 퍼내봐 어떻게 되나…. 그리고, 이 집안에 시집 못가고 죽은 손말명이 하나 있구먼. 이 걸, 해원해 줘야해. 그래야 집안도 안가태평하고 만사형통할 건데 뭘 그래? 당장 말 좀 못한다고 답답하지? 그렇지만 시집도 못가고 구천을 떠도는 그 손말명이만 할까? 에그, 답답한 인간들…."
그러면서 묻거리는 우격다짐으로 해원굿을 하라는 명령조였다. 실컷 당한 나머지 화가나지 않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 날밤, 그는 가족들 몰래 늘 마음에 걸리던 쓰레기 집하장 담벼락의 벽보 사진을 찾아갔다. 담벼락에 사진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그는 사진을 쓰다듬으며 그 앞에 주저앉았다. 그는 어째선지 그 사진을 끌어 안고 한 번 실컷 울고 싶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커다란 손이 뒷덜미를 덥썩 잡아채며 쩌렁쩌렁한 소리로 벼락 같이 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둠 속이었지만 키가 팔대장승 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엑키, 이 고얀놈 같으니라구. 온갖 사기를 친다했더니, 뭐? 네 놈이 말을 못한다구? 이래도 말을 못하겠냐?!" 그러면서 내려치던 것은 그 무시무시한 도깨비 방망이였다. 그는 혼비백산 해서 "에그, 아니올시닷! 아니라구요" 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러면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냅뛰던 끝에 간신히 숨을 돌리고 "히야, 그 놈의 도깨비가 생사람 잡으려는구만."
의사도 못 고치던 병이 언제 말짱하게 나아 있던 것에 그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윤진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