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조계가 보여준 활력을 짚어본 '부산시조가 뛴다' 시리즈의 마지막은 부산 시조시인들 좌담회로 마련했다. 주제는 '부산 시조의 과제'.

현재 지역 시조문단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있는 좌담회 참가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일시 및 장소=12월 12일 국제신문 편집국 회의실

▶참가자=정해송(부산시조시인협회장) 박옥위

박달수 주강식 전치탁 백승수 이상훈

▶진행= 정해송

▶사진=서정빈 인턴기자

박옥위 - 현대인의 사상 감정 신축성 있게 담되 청일한 이미지 갖춰야

정해송 -언어의 응축과 압축 간결의 정신을 찾는게 중요

정해송=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시조의 저변 확대와 질적 중흥이다. 여기서 '질적 중흥'이란 현대인의 생활 감정을 잘 담아내고 현대인과 소통이 잘되는 현대시조를 창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민들은 여전히 시조 하면 고시조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먼저, 현대시조 활성화와 시조 중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박옥위=중요한 문제이며 공동의 과제다. 최근 시조인 정완영 선생을 기리는 김천 백수문학관에 다녀왔다. 우리 시조에 자부심, 긍지를 느꼈다. 시조는 우리 모두의 것으로서 세계화를 꿈꿔야 한다. 세계화는 진행 중이다. 캐나다 시인 엘리자베스 세인트 자크의 시조집 발굴, 재미 시조인 김호길 시인의 미국 시조인 육성, 북미의 '시조 웨스트'지 발행, 미국과 캐나다 현지인과 동포의 시조 등단 등이 그것이다. 노력한다면 꿈이 아니다. 그러자면 우리 시조의 정형시라는 틀을 유지하되 음수율 등 고정된 형식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신축성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현대인의 사상 감정을 신축성 있게 담되, 청일한 이미지를 갖춘 시조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주강식-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뒤따라야

박달수 - 현대시조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난해해지는 경향도 경계해야

백승수=현대시조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고뇌와 미의식, 감정을 담아야 한다. 그런데 주의할 것도 있다. 1930년대 이후 우리 시에는 모더니즘, 다다이즘, 주지주의 등 혁신적인 시도들이 있었다.그러나 이들은 한때 반짝 하고 말았다. 시조 전통 속에서 현대화란 것이 이렇게 한때 빛나고 말아선 안 될 것이다. 예술미 극대화, 인간 정신 본령의 심화, 한국 문학의 전통 내포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박달수=현대시조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난해해지는 경향도 경계해야 한다. 일본 규슈시인대회에 초청받아 갔을때 그쪽의 중견 이상 현대시인들이 "한국에 가니 시집이 많이 나와 있던데 우린 안 그렇다. 너무 난해해져 시를 읽지 않는 것 같다"고 하더라. 우리에겐 아직 기회와 시간이 있다. 현대시조가 늘면서 상당히 난해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부산은 고집스러울 만큼 정형률에 대해 고민한다. 모범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난해함 일변도는 피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말의 생리, 우리 정서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시조 아닌가. 그런 면에서 시조시인은 순우리말을 많이 찾아 쓰고 있어 바람직하다.

정해송=조상들이 '이렇게 쓰자'고 했던 게 아니다. 우리 말의 생리 자체가 3·4조 민요조의 가락을 띠고 있다. 그러다 보니 3·4조가 읊어져오다 시조의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조상들이 언어를 다듬어내려오는 동안 그것이 시조의 3장 6구가 된 것이다. 서정주 조지훈 등 시의 대가들 또한 시조를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우리말을 다듬어 가다보니 시조 형식이 된 작품이 많다. 미당의 '문둥이', 조지훈의 '승무'는 완연한 시조 가락이다. 시조의 미가 글자수를 맞추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시조를 처음 쓸 때 시조형식에 낱말을 끼워맞추려고 노력하는 현상이 있다. 오히려 부산의 황산 고두동 선생이 '시조는 시의 엑기스다'라고 말했고, 미당이 '시조야말로 시의 가장 드높은 관문'이라 한 것처럼 언어의 응축과 압축, 간결의 정신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백승수 - 부산의 특징을 잘 살린 해양 시조에도 관심 기울여야

전치탁 - 대중앞에 가려면 좋은 시조를 쓰는 것이 먼저다

주강식=고시조 가락이 우리 전통 가락에서 온 것 아닌가. 오랜 세월에 거쳐 형성된 것이다. 그런 전통이 고시조에서 현대시조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가락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변모를 시도할 수 있지만 근본적 가락은 강물처럼 이어져 오고 있다. 시 자체가 응축이고 말을 줄이고 줄이는 것이 본질이다. 더구나 시조는 3장이라는 형식 속에 담아내야 하니 응축과 간결미가 더욱 중요하다.

백승수=시조는 간결미가 있고 남이 읊으면 잘 기억되는 구조가 있다.

박옥위='시조의 형식 때문에 갑갑하지 않느냐'하고 우리 시조시인들에게 다른 문인들이 묻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형식을 누리는 것이다. 시조는 형식이라는 물에 들어가서 헤엄치는 물고기다. 이미지로 헤엄을 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3·4/3·4…하는 식의 형식에 억눌려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율격은 자연스럽게 배어나와야 한다. 그런 뜻에서 몸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조는 3장 6구에 이런 형식으로 꼭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뇌를 담아내고 감동을 주는 좋은 작품을 쓴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주강식=현대시조로서 다양성과 현대인의 지적 욕구에 부응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정통성과 형식의 문제를 놓쳐선 안 된다. 그렇게 해선 세계적 자랑거리가 되기 힘들다. 형식은 중요하다. 형식이 잘 되어야 전달도 잘 된다. 그것이 답답하다고 해서 풀어버리자. 이래서는 안 된다.

박옥위=나 역시 동의한다. 그런 형식을 바탕과 기본으로 한 내용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현대시조라는 미명 아래 중견 중진 가운데서도 형식 안 지키고 이것은 '시조가 아니다'는 느낌을 주는 시를 쓰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자중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훈 - 시조 부흥 외쳐도 살림살이 너무 고단해 문화행정의 관심부터

정해송=주제를 바꿔보자. 우리 시조의 저변 확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그리고 부산시조시인들의 과제는 무엇일까 논의해보자.

전치탁=오늘날 우리나라에 시조를 짓는 시인이 1000명이 넘는다 한다. 이들이 시조를 겨레시니 민족시니 국시니 얘기해도 일반인은 끄덕도 않고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현실이다. 시조 부흥을 외쳐도 거의 안 먹힌다. 이를 극복할 전략을 고민해봤다. 첫째 시조가 대중 앞에 가야한다. 둘째 씨앗을 뿌려야한다. 셋째 교육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 먼저 시조가 대중 앞에 가려면 우리가 좋은 시조를 쓰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대중매체의 파급효과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일본의 방송 등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조인은 어린이 시조전문지 등 매체를 증설할 수 있다. 좋은 시조를 명함에 새겨서 널리 배포하고 주부교실 개설 등 노력을 스스로 해야 한다.

두 번째 씨앗 뿌리기. 이건 미래를 위한 것이다. 사춘기 시절 시조를 감상하도록 해야 한다. 시조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초등교사를 위한 연수, 예비교사를 위한 강좌, 온라인 공간 활용 등 통로는 많아졌다. 우리가 활성화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 정책.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지난 10년 동안 시조교육은 쇠퇴 일로다. 초등 교과서에 실리는 시조는 자꾸 준다. 정책적이고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해송=교육 정책 면에서 어떤 방향이 필요할까.

주강식=교대 학생들에게 시조에 대해 묻고 글쓰라 하면 초·중·고 때 접한 이들은 가깝고 그때 접근이 안된 학생은 거리가 아주 멀다. 초·중·고 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다. 교육과정은 교과서 구성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교육교재 중 시 교재가 제일 많다. 모든 영역을 통틀어 봐도 그렇다. 이건 선진국도 비슷하다. 그만큼 자기 고유의 말과 문학이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자유시에 비해 시조는 너무나 적다. 7차 교육과정의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는 자유시가 178편 나온다. 그런데 시조는 고시조 4수, 현대시조 4수 해서 모두 8수 뿐이다. 시조도 해방후 1950년대 15편, 4차 교육과정에서는 18편까지 갔는데 그런데 7차 교육과정에는 8편으로 줄어들었다. 국어교육이 문학보다 언어 기능을 중심으로 가다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재고할 필요가 있다. 또 문제는 교과서에 꼭 실어야 할 만큼 뛰어난 시조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란 점이다.

전치탁 =제7차 교육과정 고교 교과서 상·하권에는 시조가 '어부사시사' 40수 중 딱 4수가 있다. 다만 준비학습에 이은상 '가고파'와 황진이의 시조가 있다. 그나마 '가고파'는 현대시로 규정하고 있다.

주강식=교과서 싣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조를 어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고민도 뒤따라야 한다. 교사용 지도서에 낭송 암송 노래 등 다양한 방법이 들어가야 한다.

박옥위=시조는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태교의 교재로도 훌륭하다. 여성에 대한 보급을 늘리면 태교나 유치원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은가. 인성교육을 위해 시조는 훌륭한 자원이다.

백승수=부산의 시조에 대해 조금 더 좁혀보겠다. 부산에서 해양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해양시조 등의 작품이 많은 것은 아니다. 다른 장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략적 차원에서라도 해양 시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어촌과 항구 사람들 삶의 진면목을 담는 그런 작품이 필요하다. 그리고 번역 작업과 해외동포 교류 등을 구상해볼 수 있다. 모두 개방된 항구로서 부산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영역이다.

정해송=시조가 상대적으로 작은 장르이다보니 시나 국가의 문화정책에서도 관심을 끌기에 힘든 점이 있을 것이다.

이상훈=시조 부흥을 아무리 외쳐도 사업비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해마다 신청은 하지만 지원되는 기금은 사실 항상 모자란다. 부산시가 주도하는 메세나 사업도 신청했는데 탈락했다. 다른 장르는 됐는데 시조는 안되더라. 작년엔 시조 교실을 열지 못했는데 자금 탓이었다. 작년에 시조연수세미나, 시조교실 지원금을 신청했으나 지원받지 못했다. 다른 장르도 비슷하겠지만 사실 살림살이가 매우 고단하다. 협회가 '부산시조' 발간하기도 벅찬 것이 사실이다. 시조인들이 더 노력해야겠지만, 문화행정이 우리 고유의 시조문학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박달수=부산은 다른 지역 협회에서 활력이 있다고들 말한다. 분위기도 가족적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을 많이 했으니 앞으로 더 힘을 내서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해송=부산 시조시단이 전국 시조시단의 중심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준비하고 있다. 반성도 한다. 거의 모든 문화가 서울 중앙집권인데 남쪽 끄트머리 부산이 열정과 의지를 갖고 시조만큼은 전국을 이끌어나가 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