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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15> 일본 오키나와영화제

근대사의 비극 숨쉬는 오키나와에 평화와 웃음의 레드카펫 펼치다

태평양전쟁의 상흔 파란만장 역사 땅에

지난 2009년 3월 일본 최대의 코미디기획사 요시모토흥업 영화제 창설

칸·PIFF 큰 영향…올 2회 영화제엔 10만 관객 몰려들어 웃고 즐기는 축제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4-21 19:47:29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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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오키나와국제영화제 개회식의 레드카펫에서 배우들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오키나와는 일본 규슈와 대만의 중간에 위치한 섬이다. 오키나와는 반원형으로 펼쳐진 난세이제도 남부인 류큐제도에 속해 있다. 해안에 발달한 산호초와 감청색 바다 그리고 흰 모래밭을 자랑하는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나 중국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류큐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이 지역은 연평균 22도의 따뜻한 아열대성 기후로 인해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휴양지이기도 하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현(縣)으로 귀속되기 전인 14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동안 류큐 왕국의 중심지였다.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일본 중국 조선 동남아시아 등 여러 나라와 중계무역을 통해 무역대국으로서의 번성을 누려왔다. 슈리성 정전에 있는 '만국진량의 종'에 각인된 명문(銘文)은 당시 류큐 왕국이 처했던 위상과 번창함을 말해준다. 슈리성은 독특한 건축양식 때문에 유네스코에 의해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지역에 대해 처음으로 문화적인 느낌을 받은 것은 지난 2003년 야마카타 다큐멘터리영화제에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때마침 오키나와 특산물 전시와 함께 오키나와에서 촬영했거나 오키나와 출신 감독에 의해 제작된 60여 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오키나와에는 이처럼 풍부한 역사가 서려 있을 수밖에 없는 지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섬이 속해 있는 고대 류큐 왕국은 삼한(三韓·조선)의 빼어남을 모아 놓았고, 대명(大明·중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 일역(日域·일본)과도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류큐 왕국은 1609년 일본 규슈의 사쓰마 번에게 정복당하면서 도쿠가와 막부 통치 하의 일본과 중국에 동시에 귀속되었다. 1879년에는 '류큐처분'에 의해 메이지정부의 현으로 귀속된다.

오키나와국제영화제 주극장.
무엇보다 오키나와가 근대사에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했던 1945년 4월의 일이다. 이곳은 미군의 상륙작전으로 3개월에 걸친 태평양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으로 기록된다. 이 전투에서 1만2000명의 미군과 10만 명의 일본군이 전사했을 뿐 아니라 주민의 4분의 1이 희생당한다. 징병과 징용 그리고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던 1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도 이곳에서 희생되었다. 오키나와 시내인 사키마 미술관 중앙에 전시된 '오키나와전쟁', '치비치리가마', '집단자결' 등의 대형 그림들과 도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동굴과 방공호에는 당시 처참했던 모습을 생생하게 상기시켜 준다. 특히 1975년 8월 조성된 한국인위령탑에는 시인 이은상이 짓고, 서예가 서희환이 쓴 다음과 같은 비문이 우리를 숙연케 한다.


역사의 흙탕물 폭포같이 쏟아질 적에 양떼처럼 희생의 제물이 되어

바다 하늘 맞닿은 곳으로 끌려와 광풍에 생명의 등불 꺼지던 날

하늘도 울고 파도도 울고 핏줄기 뻗혀 오색무지개처럼

용솟고 치솟아 해달을 덮고 산과 바다를 회오리바람처럼 돌고

조국을 향하여 기원하던 목소리 지금도 귀에 들리는 영원한 메아리···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으로 오키나와는 미군점령하의 군정체제로 바뀐다. 26년간의 오랜 군정이 종식되고 1972년 5월 15일, 오키나와는 일본에 반환되었지만 아직도 2만5000명 이상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면적의 75%가 미군기지로 남아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아 온 오키나와이기에 '평화기념공원'의 기념을 '紀念'이 아닌 '祈念'으로 표기하듯이 평화에 대한 갈구와 염원은 남다르다. 오키나와가 갖고 있는 이와 같은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평화를 갈구하는 주민들의 염원에 비추어 볼 때 '웃음과 평화'를 주제로 한 오키나와국제영화제의 탄생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2009년 제1회 오키나와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들과 함께한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오키나와 국제영화제는 2009년 3월 요시모토흥업주식회사에 의해 창설되었다. 요시모토흥업은 일본 최대의 코미디기획사다. 오사카에서 창업한 요시모토는 오사카와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고 오는 2012년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연예 연극 TV드라마 영화 디지털콘텐츠, CD 및 DVD 등의 제작, 배급, 흥행과 배우양성 및 관리 등의 업무를 관장하고 있으며 1200명의 코미디언과 현재 교육 중인 1000명의 예비 코미디언을 확보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일본 연예계의 대부(代父)다.

이것은 역사의 교차를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근대사의 비극이 가시지 않은 이 땅에 코미디의 명가인 요시모토가 축제를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요시모토흥업의 히토시 오사키 사장은 33년간 재직해 온 요시모토의 산증인이며 사장에 취임한 후 적극적인 경영전략으로 사세를 대폭 확장해 온 전문경영인이다. 부사장이던 2007년 5월, 요시모토흥업이 제작한 히토시 마투모토 감독의 '대일본인'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자 그는 히데노리 나가이 등 대표단을 이끌고 칸으로 갔다. 해변의 작은 도시에서 개최되는 칸영화제에 매료된 그는 칸처럼 '바다가 있는 해변'에서 모든 사람들이 '즐기면서 영화를 보는' 독특한 영화제를 만들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검토한 끝에 아름다운 바다와 해변이 있고 도쿄 서울 상하이에서 4시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한 오키나와를 낙점했다.

그해 가을에 히토시 오사키 사장은 '대일본인'이 야외 상영되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부산에서 많은 것을 보았고,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받았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난 후 자신이 만든 첫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나를 초청했다. 제1회 오키나와 영화제는 챠탄쵸(北谷町) 해변에서 3월 19일부터 22일까지 4일간 열렸다. 선셋비치에 야외무대를 마련하고 250m의 레드카펫을 깔았다. 경쟁부문에 선정된 8편을 포함하여 특별초청 10편, 특별상영 13편, 회고전 26편을 포함한 장·단편을 아우르는 161편의 영화가 상영되었고 콘텐츠 마켓, 뮤직이벤트, 라이브 코미디 이벤트, 심포지엄, CM경쟁 등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여 4일간에 1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심사위원단은 나를 포함하여 미국의 제리 쥬커 감독, 홍콩의 고든 첸 감독, 일본의 스토리 작가인 소메마루 하야시야, 일본의 여배우인 요, 부쿠넨 나카 일본 목판화가로 구성되었다. 대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특별상은 일본영화 가츠히데 모토키 감독의 '카모가와 호르모'가 수상했고, 관객상에 해당하는 '해인상'은 한국 김성욱 감독의 '못 말리는 결혼'에 돌아갔다.

올해 개최된 제2회 영화제에서도 나는 심사위원장을 다시 맡게 되었다. 지난 3월 20일에서 28일까지 9일간 열렸던 제2회 영화제에는 나와 함께 베를린영화제 영 포럼 책임자인 크리스토프 테레히테, 홍콩의 영화감독 리치카이, 대만의 프로듀서 리칸, 일본 소설가 에이키 마타요시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에이키 마타요시는 1996년 '돼지의 응보'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다. 그의 이름은 조금 낯설지만 재일교포 감독인 최양일에 의해 몇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고, 오키나와를 소설의 배경으로 삼은 작가다.

경쟁에 오른 26편의 영화를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13명의 예심위원들이 6편을 선정하여 본선에 올렸고, 우리는 타쿠 와타나베 감독의 '미스 구로자와 필름'에게 대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관객들은 '웃음' 부문에서 '미스 쿠로자와 필름'을, '평화' 부문에서 야쉬 초프라 감독의 '신이 맺어준 커플'을 관객상에 해당하는 '해인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올해의 영화제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최기간을 4일에서 9일로 늘렸고, 장소도 접근성이 높은 기노완 해변의 컨벤션센터로 옮겼다. 대극장을 포함해 5개 스크린과 해변무대, 그리고 예술전용극장인 사쿠라자카 극장을 사용하였다. 상영작은 90편으로 줄이는 대신 관객과의 대화시간을 늘렸다. 관객이 만든 코믹 동영상을 보여주는 '월드 와이드 래프'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탄생 100주년 기념전 등 이벤트행사를 마련해 관객의 참여폭도 넓혔다. 무엇보다 요시모토흥업의 명성을 선전하듯이 영화제기간 동안 많은 코미디언들이 참여해 관객과 함께 웃고 즐기는 코미디 천국을 이뤄냈다. 폐막을 하루 앞둔 토요일에만 관객 10만 명을 동원함으로써 오키나와 주민 모두가 '함께 웃고 즐기는' 영화제로 뿌리 내리고 있다.

시간이 흘러 영화제의 역사가 쌓여가면 근대사의 비극은 누그러지지 않을까 싶다. 영화제는 기록과 영상을 통해 과거를 되새기는 자리인 동시에 사람들의 감정을 달래고 즐기는 놀이의 마당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제를 통한 과거와 현재의 만남은 섬 한쪽에서도 깊은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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