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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학기행 <99> 울산 장생포 고래문학제

상상과 이야기, 생명 그 자체… 사실, 고래가 문학이다

선사인들이 고래그림 새긴 울산, 그 앞바다는 이제 '울산 고래바다'다

고래만을 위한 두번째 문학제가 이 바다에서 열렸다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0-07-06 19:42:16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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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참돌고래떼가 울산 고래바다에 나타났을 때 찍은 사진이다. 지난 4일 신문학기행 일행이 고래바다여행선을 타고 나갔을 때는 고래를 만나지 못했다. 정일근(경남대 교수) 시인 제공


'불쑥, 바다가 그리워질 때 있다면/

당신의 전생은 분명 고래다'

(정일근 시인 '나의 고래를 위하여' 중)


"울산의 해안선 길이는 155㎞입니다. 울산시는 지난해 이 해안선 일대 바다 이름을 '울산 고래바다'로 정한다고 공식선언했습니다. 이 바다는 이제 울산바다나 울산앞바다가 아니라 '울산 고래바다'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4일 오전 고래를 보기 위해 장생포 항구를 떠난 배 위에서, 문학기행 일행에게 이런 설명을 들려준 이는 바로 '불쑥 바다가 그립다면 당신의 전생은 고래'라고 썼던 정일근(경남대 교수) 시인이었다.

장생포고래박물관 매표소의 귀신고래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일행을 태운 배는 262t 규모로 울산 남구청이 장생포고래문화특구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한다. 이 배의 이름이 '고래바다여행선'인데 정 시인의 설명을 듣고서야 왜 배 이름을 이렇게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배의 이름은 전국에서 오는 승선객들을 태우고 나가 울산 근처 바다를 지나는 고래를 볼 수 있게 해준다는 뜻도 있지만, '고래바다'라는 해역을 여행하는 배란 뜻도 갖고 있는 것이다.

보통 매월 셋째주 일요일에 떠나는 신문학기행(동보서적·부산문화연구회 주최, 국제신문 특별후원)이 이번 만큼은 7월 첫주 일요일로 앞당겨 열린 것은, 고래 때문이었다. 울산은 일찌감치 고래를 만나 일찌감치 고래에 눈뜬 고장이다. 신석기시대 말기나 청동기시대 초기 선사인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울산 울주군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에는 고래가 종류별로 58마리 그려져 있다. 울산 남구의 장생포는 일제시대 이후 1986년 포경이 금지될 때까지 한반도 유일의 고래잡이 기지 구실을 했다.

1995년부터 울산 사람들이 열기 시작한 울산고래축제는 올해로 16회째며, 장생포는 2008년 8월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됐다. 울산 남구청은 2009년부터 4월 25일을 '고래의 날'로 제정했다. 고래의 날 제정과 함께 울산고래축제의 일환으로 시작한 고래문학제가 올해로 2회째를 맞았다.(올해는 6·2 지방선거의 영향으로 고래의 날인 4월 25일 행사가 7월 1~4일로 늦춰진 것이다) 장생포에는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연구소가 있다.


■고래를 위한 바다 위 문학콘서트

고래바다여행선 선상 문학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올해부터 '대한민국고래문학제'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한 이 문학축제에서 이웃의 해양도시인 부산의 독자들을 초청했고, 그 덕분에 신문학기행 일행 30여 명은 장생포 포구로 와 고래바다여행선을 탈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풍속은 초속 2~3m, 운항하기에 아주 좋은 바람입니다. 문제는 80~90%에 달하는 습도인데 고래를 생각하면서 노래하시고 고함치면 이 정도 불쾌지수는 쉽게 떨칠 수 있을 겁니다. 단,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좀 있다 선상 문학콘서트가 펼쳐질 때 생각 없이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라고 노래하시면 안 됩니다. '고래 찾으러'라고 꼭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고래 덕분에 여는 문학제인데 고래를 잡으면 되겠습니까." 울산 고래가 결국 울산만의 문화예술콘텐츠가 될 것이라 일찍부터 생각하고 관련 활동을 많이 펼쳐온 정일근 시인의 유쾌한 설명에 고래바다여행선 분위기가 살아난다.

이날 고래바다여행선에는 고래문학제 대회장인 최동호(고려대 교수) 시인을 비롯해 부경대 교수이기도 한 권혁동 부산시인협회장, 동화작가 배익천 씨 그리고 울산과 부산의 시인들 수십 명이 문학기행 일행과 함께 승선해 시·동화·수필 낭송을 했고, 울산의 노래꾼들로 시노래 공연 등을 활발히 펼치는 남미경 박성일 씨의 공연이 잇달아 열렸다.

그 사이 울산의 김종경 시인이 연단에 올랐다. 오랫동안 울산의 방송사에 몸담았고 현재 울산신문 대기자를 맡고 있는 그는 고래연구가로 통한다. 올해 고래문학제가 처음 시행한 '2010 고래의 날 기념 문화예술상'의 예술부문 수상자도 김 시인이다. 파도의 너울을 올라타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그의 짧은 강연은 이목을 끄는 힘이 있었다. "꼭 40년 전인 1970년 12월 24일 울산 울주군에서 천전리각석이 발견됩니다. 천전리각석은 3년 뒤인 1973년 곧장 국보 제147호로 지정됩니다. 천전리각석 발견 1년 뒤인 1971년 12월 25일 멀지 않은 곳에서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돼요. 그런데 반구대암각화는 국보보다 격이 많이 떨어지는 경상남도기념물 제57호로 지정됩니다. 반구대암각화가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건 발견 뒤 24년 지난 1995년 6월이었단 말입니다."

이런 사연이 있었다. 천전리각석에는 신라 법흥왕의 동생과 왕자 시절의 진흥왕 등이 왔다가 남긴 명문(銘文)이 남아있었다. 이 덕에 단박에 국보가 됐다. 하지만 반구대의 동물·사람 그림은 당시 수준이 낮았던 한국 고고학으로서는 제대로 평가할 역량이 없었다. 한국암각화학회가 생긴 건 1995년 1월이었다. 그런 반구대암각화의 가치를 세계에 각인시킨 존재가 바로 여기 그려진 58마리 고래다. "세계 학계는 유적을 바탕으로 줄곧 노르웨이가 최초로 고래를 사냥하기 시작한 지역으로 여기고 있었지요. 그런데 반구대에서 고래 그림이 나온 바람에 지금은 한반도가 최초로 고래를 잡은 지역으로 인정받게 된 겁니다." 김 시인의 설명이다.


■문학과 고래는 잘 어울리는 한 쌍

정일근 시인
'고래가 있을 것이다'라고 상상하면서 바라보는 바다와 그냥 쳐다보는 바다는 달랐다. 많이 달랐다. 고래바다여행선 갑판 위에서 계속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봤다. 고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 바다 속에 고래가 있다고 상상하자 바다는 아예 다른 바다로 다가왔다. 비록 고래를 못볼 지라도 고래를 찾는 항해의 인기가 식지 않은 이유는 분명했다. 상상과 이야기.

바다 위에 떠서 고래를 기다렸다. 고래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닷 속 어딘가엔 있다. 말하자면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다. 대형고래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돌고래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감수성이 발달했다. 지구가 오염되자 희생돼가면서 고래는 생태와 생명의 지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고래들은 운다. 또 암각화 속 고래들에서 알 수 있듯 인류와 오래 함께 살았다.

이렇게 놓고 보니, 고래는 문학과 완전히 똑같다.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것을 잘 다루며,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상상력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간에게 자극을 주고, 왜소해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생태와 생명을 대변하며, 울고, 인류와 함께 오래했던 그 무엇이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우리는 뭐라 답할 수 있을까. 이 퀴즈에 대해 '문학'만큼 완벽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 고래와 문학이 잘 어울리는 쌍이다.

장생포에서 느낀 아쉬움도 있다. 고래생태체험관의 돌고래 관람장은 좌석 자체가 아예 없이 수조 둘레에 빙 둘러서서 보게 돼 있었다. 그러니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뒷줄에 서게 된 사람은 앞사람들의 키 때문에 관람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일부 어린이들이 난간에 서서 돌고래를 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아찔할 만큼 위험해 보였다. 고래박물관의 전시물 구성도 손질이 필요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고래를 실컷 만나고 왔고 그 덕에 고래와 친해진 기분이 들게 해준 고래문학기행은 독특했고 느낌이 깊었다. 김종경 시인의 지적대로, 이처럼 좋은 조건을 바탕으로 이제 문학인들이 더 좋은 고래문학작품을 내놓아 고래와 사람들을 더 가깝게 엮어주는 것이 다음 순서일 것 같다.

신문학기행 참가 문의=동보서적 (051)803-8000 부산문화연구회 (051)441-0485 http://문학기행.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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