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저임금 맞추기 위해 편법으로 근로시간 줄여
- 사납금 못채우면 급여공제, 법에 호소해도 업주 무혐의
- 이직률 높은 업계현실 무시
- 근속 1년 미만 근로자 상여금·수당 등 13만원 빼
- 지난해 신설 정부 생산수당 슬그머니 임금에 포함 '분통'
2008년 10월 1일, 택시요금이 20.46% 올랐다. 부산시민은 이날부터 5000원이면 갈 거리를 6000원을 지불해야 했다. 시민들은 "택시기사들의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겠지"하고 큰 반발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택시요금 인상의 첫째 이유는 택시발전협의회 회의자료 등에 나타난 대로 '택시기사의 생활안정'이었다.
2009년 7월 1일, 부산 등 7대 도시의 법인택시기사에게 최저임금제가 실시됐다. 택시기사들은 '삶의 마지노선' 안으로 들어왔다고 기뻐했다.
2010년 4월 30일, 부산지역 법인택시기사는 1년 전에 비해 2322명이 줄어든 1만5215명에 그쳤다. 왜 이럴까, 요금도 올랐고 임금도 인상됐고 더구나 최저임금법도 적용받는데….
■법보다 우선하는 임금협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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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제 시행 1년이 지났으나 부산지역 택시기사들은 여전히 중노동을 하면서도 저임금에 허덕이고 있다. |
요금 인상 이후 택시기사들의 살림살이는 겉으로 나아진 듯 보인다. 2008년 12월에 체결된 부산지역 택시 임금협정서에 따르면 2인 1차제 택시기사의 임금 총액은 87만8675원(1년 근속, 25일 만근 기준)이다. 요금 인상 이전인 70만6422원에 비해 17만 원가량 올랐다. 제법 큰 폭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난 택시기사들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현재 적용되는 임금협정서를 짚어봤다. 명목상 지급되는 임금(87만8675원)은 1년 이상 근무한 장기 운전자에 해당된다. 택시업계의 이직률은 한 해 30%가 넘고 택시기사들 가운데 27% 이상이 근속 1년 미만의 초보 운전자이다.
즉, 현 직장에서 1년이 넘지 않으면 상여금(12만8000원)과 근속수당(1만 원)을 받지 못한다. 이 경우 월급은 74만 원으로 줄어든다. 1년 차 이상이라 해도 한 달 21일 이상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상여금은 지급되지 않는다.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월급에서 공제된다.
부산 Y교통에 근무하는 택시기사 황춘근 씨는 최근 사업주를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법정 근로시간(하루 8시간)만큼만 차를 몰았다. 야근 10일을 포함해 한 달 25일을 일하고 그가 받은 급여는 17만1720원(2009년 11월분). 사납금을 채우지 못해 미수금 54만1870원이 급여에서 빠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임금협정서를 근거로 사업주에게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취재팀은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미수금으로 인해 급여가 최저임금(월 65만7600원) 아래로 떨어지면 법 위반이 되는지 여부'를 물었다. 택시 담당 근로감독관은 "정식 공문이 오기 전에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고 입을 닫았다.
■최저임금 피하는 수단
제3의 노조로 불리는 부산지역택시노동조합 제경배 위원장은 "임금협정서가 있는 한 택시기사들에게 최저임금법은 무용지물"이라고 꼬집었다.
택시업계의 임금협정서는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되지 않는 내용이 들어 있다. 임금협정서상 택시기사의 시급은 4294원. 정부가 정한 최저시급 4110원보다 많다. 하지만 문제는 근로시간이다. 협정서에는 택시기사는 하루 5.2시간(1인 1차제는 5.4시간), 월 160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2005년도 임금협정서를 들춰봤다. 하루 6.4시간, 월 200시간(시급 2100원)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맞지 않다. 택시와 관련된 모든 통계자료에는 택시기사는 하루 10~15시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실제 그렇다.
이는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해 소정 근로시간(법정 근로시간 내에 노사 간에 정할 수 있는 근로시간)을 줄여 놓았기 때문이다.
'고무줄 근로시간' 때문에 시급(최저임금)이 변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최저임금의 가이드라인을 '월급'으로 정하지 않고 '시간 단위'로 정했기 때문이다. 노사가 임금협정서의 근로시간을 조정하면 정부의 최저임금(시급)을 얼마든지 맞출 수 있다.
결국 정부의 최저임금(시급) 취지와는 무관하게 월급은 오르지 않게 된다. 부산택시개혁연합 최병로 사무국장은 "이번에 오른 내년도 최저임금(시급 4320원)도 임단협의 근로시간 숫자만 줄이면 얼마든지 최저임금법을 피할 수 있다"면서 "경기도 의정부시의 택시 임단협에는 아예 하루 근로가 2.7시간으로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임금협정서에는 '택시산업의 특수성을 감안,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해도 일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란 단서가 달려 있다. '제13조 성실의무' 조항이다.
■국가 보조금으로 월급 보조
지난해 새로 신설된 생산수당(10만 원)은 택시기사들이 가장 분통을 터트리는 대목이다. 생산수당은 정부가 택시기사들에게 주는 부가가치세 경감액을 말한다. '택시 부가세 경감제도'는 정부가 박봉에 시달리는 택시기사들을 돕기 위해 택시회사가 영업수익(운송수익금)에 따라 낼 부가가치세를 깎아주고, 그 감면액을 택시기사들에게 되돌려주기로 한 제도. 정부가 세수를 포기하고 택시기사에게 주는 국고보조금 같은 것이다. 1995년부터 시행됐고 지난해부터 감면액을 50%에서 90%로 확대했다. 한 사람당 월 10만 원 정도 된다.
하지만 국가로부터 보너스처럼 받는 이 부가세 경감분이 택시회사의 통장을 거치면서 슬쩍 임금에 포함된 것이다. 지난해 노동부가 "부가세 경감액을 매달 지급할 경우 임금에 포함할 수 있다"는 지침을 내린 게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D교통의 어느 20년 차 택시기사는 "부가가치세 경감분(생산수당)이 임금에 합산돼 실제 급여는 곧 20만 원가량 준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부가세 경감제(조세특례제한법)는 내년 말로 일몰 종료된다. 결국 2012년부터 임금이 10만 원가량 감소해, 근속 1년 아래 택시기사의 월급은 64만 원으로 떨어지게 된다.
# 근로시간 단축 임금조정안, 경남서도 업체-기사 마찰
- 月 209시간→112시간으로
- 기사 "편법동원" 사측 "도산직면"
- 20여개社는 1000명 해고통보
택시 최저임금제는 경남지역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경남도 내 창원, 진주, 밀양, 김해 등 20여 개 택시회사들은 지난달 초 1000여 명의 택시기사들에게 "2010년 7월 1일부터 적용될 최저임금제 시행에 따른 경영상 이유로 부득이 종사원인 귀하를 2010년 6월 30일부로 해고하려 한다"며 해고 예고 통지서를 발송했다.
또 마산·창원지역 4개 업체는 하루 근무시간을 6시간30분으로 줄이는 '근로시간 단축 임금 조정안'을 내놓고 노사 협상을 벌이고 있다. 사측이 제시한 조정안은 사납금은 13만 원으로 그대로 두되 월 209시간(하루 16시간)의 근무시간을 월 112.45시간(하루 6.5시간)으로 줄이자는 내용이다.
택시 노조와 기사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법에 8시간 근로가 보장돼 있고, 실제로는 이보다 휠씬 더 많은 근무를 하고 있는데도 '하루 6.5시간'이란 편법을 동원하려 한다는 것이다.
전국운수산업노조 민주택시본부 경남지부 장성환 사무국장은 "기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제정된 법을 시행해 보지도 않고 못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근본적으로는 전액관리제(완전 월급제)와 1일 2교대제가 돼야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다음 달 초가 되면 최저임금이 어떻게 적용되어 월급에 반영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경남택시운송조합 전영채 사무국장은 "현 상태에서 최저임금법을 따르게 되면 회사가 수십만 원씩 추가 부담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도산 업체가 속출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각 사업장에서도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식으로 노사 협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남에는 전체 125개 택시회사 중 시 단위 87개 사가 최저임금제 시행 대상이며, 현재 권역별로 집단교섭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