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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29> 베오그라드·사라예보·예레반 영화제

유서깊은 동유럽, 문화·전통이 숨쉬는 영화제들

세르비아 현대사와 고난을 함께 한 베오그라드 영화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지에서 창설된 사라예보영화제

즉흥적으로 탄생했지만 잘 성장하고 있는 아르메니아의 황금살구영화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7-27 21:04:4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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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반 황금살구영화제의 주극장 모습.
'센트 이스트'(Cent East)는 중동부유럽영화제연합(The Alliance of Central and Eastern European Film Festival)의 약자로 중부 및 동부 유럽국가에서 개최되는 영화제 간의 상호 협력과 교류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2007년 11월 7일 독일의 코트버스영화제에서 바르샤바영화제 스테판 로딘 집행위원장이 주도해 만들었다. 한 국가에 하나의 영화제만이 회원으로 가입한 이 협력기구에는 현재 바르샤바영화제와 코트버스영화제를 비롯해 17개 영화제가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체코의 카를로비바리는 우호적인 지원영화제로 참여하고 있다.

동유럽의 영화제들은 방문하는 일이 드물지만 그중에서도 에스토니아의 타린영화제를 간 기억은 특별하다. 이 지역은 여름에는 낮이 길고 겨울에는 밤이 길다. 그래서 타린영화제를 흑야영화제라고도 부른다. 1997년 두 딸의 어머니인 티나 록 여사가 창설하여 14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초청으로 2004년 12월 제8회 영화제에 참가한 후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를 순방, 영화제 관계자들을 만난 바 있다.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영화제는 올해 11월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예정이다. 이외에 아르메니아의 예레반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는 2006년 7월과 8월에 각각 심사위원으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베오그라드는 2008년 2월 심사위원장으로 참가했다. 이 글은 동유럽에 관한 짧은 인상기라고 할 수 있다.


■ 베오그라드영화제

베오그라드영화제 상영관 내부가 영화팬들로 북적이고 있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는 올해 57회를 맞는 베오그라드 다큐멘터리영화제와 베오그라드에서 60㎞ 떨어진 코스마이 산속에서 개최되는 소포트영화제, 올해 38회를 기념하는 베오그라드영화제가 있다.

이중 베오그라드영화제는 1971년 시에서 창설했다. 유고영화 75주년을 기념하여 티토 대통령은 찰리 채플린, 루키노 비스콘티, 프랭크 카프라 등 세계 거장 감독들과 주요 유고 영화감독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이 행사는 단순히 한 해 극장에서 상영됐던 인기 외국영화들을 모아서 틀어주는 주간행사에 불과했지만 훈장을 받은 감독 외에도 많은 영화인들이 참여해 성대하게 치러졌다. 발칸반도의 최대 일간지 폴리티카의 영화평론가 밀루틴 콜리치가 영화선정을 맡았고 영화감독 두산 마카베예프, 데얀 두루코비치가 주도했던 이 행사가 성공하자 베오그라드국제영화제로 바꿔 매년 비경쟁영화제로 열게 됐다. 이렇게 출범한 베오그라드영화제는 오랜 기간 비경쟁영화제로 운영하다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쟁영화제로 전환했고,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1993년과 1994년에는 영화제가 중단되기도 했다.

1997년 미롤류브 부코비치가 집행위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베오그라드영화제는 오랜 정체에서 벗어나 도약하기 시작했다. '유럽 중의 유럽'이란 공식경쟁부문이 신설되었고 'FantAsia'부문을 신설, 1998년부터 아시아영화들을 초청하기 시작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 등 4편의 영화와 함께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불의 딸' 등 아시아 영화가 처음으로 베오그라드에 소개되었다. 이후 한국영화는 2000년 '유령'(민병천) 등 4편이 초청된데 이어 '박하사탕'과 '거짓말'(2001),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2), '오아시스'(2003),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4), '올드 보이'(2005), '빈집'과 '망종'(2006),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와 '시간'(2007), '숨'과 '밀양'(2008) 등 매년 그 해의 대표작 1~2편이 꾸준히 초대받고 있다.

미롤류브 부코비치는 세르비아 출신 평론가로 남서유럽시네마네트워크의 창설 및 회장(2001~2005), 동서교류재단의 창설 및 회장(2005년 이후) 등을 역임했다. 그의 초청으로 2008년 2월, 제36회 베오그라드 영화제에 참석한 적이 있다. 영화제는 매년 2월 마지막 금요일부터 3월 첫 주 일요일까지 3700석의 사바센터와 베오그라드문화센터, 유고슬라브영화자료원, 돔 신디카타영화관 등에서 개최되며 13만 명의 관객이 참여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영화제다.


■사라예보영화제

필자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지난 2006년 사라예보영화제의 시상식.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도시다. 1973년 4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에리사와 정현숙 선수가 세계를 제패하였고 1984년에는 제14회 동계올림픽이 열려 사라예보란 이름을 회자시킨 바 있다. 무엇보다 역사 속의 사라예보는 세르비아의 국수주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칩이 순방중인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임신한 그의 부인을 암살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켰던 현장으로 유명하다.

사라예보영화제는 1995년 창설되었고 올해 16회를 맞는다. 복합문화회관인 오바라 아트센터의 관장인 미르사드 푸리바트라는 1992년부터 다양한 문화운동을 전개했던 인물이다. 그는 1993년 2월 '키노 아폴로'에서 당국의 허가없이 전쟁영화를 상영하다가 극장이 폐쇄되는 일도 겪었고, 1993년 10월 23일에는 오바라 아트센터에서 소규모의 '사라예보 필름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는 1995년 10월 27일 제1회 사라예보영화제를 개최했다. 첫해에는 미르사드 푸리바트라의 부인 이제타 그라데비치가 창설자 겸 집행위원장을 맡아 15개국 37편의 영화를 상영했는데, 로카르노영화제의 집행위원장 마르코 뮐러(현재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가 직접 가지고 온 비디오로 틀었다고 전한다. 1996년 제2회 영화제부터 미르사드 푸리바트라가 맡아 영화제를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2006년 8월 18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되었던 제12회 사라예보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경쟁영화제인 사라예보영화제에서는 상금 2만5000유로가 수여되는 최우수 장편영화상과 1만 유로의 상금이 수여되는 심사위원특별상, 여우 및 남우주연상이 수여되고 있으며 단편경쟁, 다큐멘터리경쟁부문이 따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프로젝트 마켓인 '씨네 링크'를 운영하면서 이에 따른 시상도 병행하고 있다. 필자가 참석했던 2006년 강이관 감독의 '사과'와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파노라마 부문에서 선을 보였고, 미국의 아벨 페라라 감독과 헝가리의 벨라 타르 감독의 회고전이 열렸다. 체제기간 중 심사위원과 주요 게스트들이 비행기로 이탈리아 동쪽 아드리안 해에 마주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니크에 갔던 것은 색다른 체험이었다.


■예레반의 황금살구영화제

흑해와 카스피해의 중간 지역에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이 있다. 북쪽은 그루지아(그루지아의 북쪽은 러시아다), 서쪽은 터키, 동쪽은 아제르바이잔, 남쪽은 이란이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나라가 아르메니아다. 예레반에 100만 명이 살고 있다.

올해 7회를 맞이한 예레반영화제의 탄생은 즉흥적이었다. 2003년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갖고 참석한 하루툰 가차트리안 감독은 네덜란드 언론인 피터 반 뷰렌을 만나 매일 술자리를 함께 했다. 피터 반 뷰렌은 하루툰 가차트리안에게 영화제 창설을 제의했고, 하루툰은 귀국하자마자 영화평론가인 수잔나 하루츄난과 함께 2004년 7월 제1회 예레반국제영화제를 창설하였다. '살구'가 그 지방의 특산물인 점에 착안하여 영화제 이름을 황금살구영화제(Golden Apricot)로 정했다. 이 과정에서 그루지아 출신의 여배우 아시니 칸지안이 적극 참여하게 되었고, 그의 남편인 이집트 카이로 태생의 캐나다 감독 아톰 에고이얀이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예레반영화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제3회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로카르노와 베를린 그리고 베니스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모리츠 데 하델른이 심사위원장으로, 당시 로테르담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산드라 덴 하머와 터키감독인 예심 우스타오글루, 그리고 아르메니아의 작가 페르치 제이툰시안이 필자와 함께 심사위원을 맡았다. 크쥐시토프 자누시 감독과 필자는 아르메니아 문화부 훈장을 받았다. 이 일정을 통해 프로젝트 마켓인 로테르담영화제의 시네마트와 부산국제영화제의 PPP, 그리고 예레반영화제의 DAB(Directors Across Borders) 프로젝트를 서로 교환하여 운영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이후 2007년 1월,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아르메니아 문화부 장관과 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들이 모여 정식으로 자매결연을 선언했다.

동유럽의 영화제들은 한국 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전통이 숨쉬는 도시들이다. 아직 대규모의 영화제들이 꾸려지지는 않았지만 영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관객들과 함께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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