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토르 시내의 지독한 교통체증을 겨우 뚫고 초원 사이로 난 2차선 아스팔트 도로로 버스가 들어섰다. 지금부터 여섯 시간을 달려야 목적지인 바양고비에 닿을 수 있다. 한낮의 햇빛은 뜨거웠고 풀밭은 끝이 없었다. 문득 "몽골어에 '그늘'을 뜻하는 고유어가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억측을 해보았다. 그늘을 아예 찾기 힘들 만큼 너른 초원이었고, 보이는 빛깔은 하늘색과 푸른색뿐. 우리는 드디어 몽골 초원을 만난 것이다.
■마지막 문학기행의 여정,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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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전성태(오른쪽) 씨와 안도현 시인이 바양고비의 모래밭을 거닐며 몽골의 풍광에 빠져든 모습이다. |
지난 2001년 10월 경북 영양으로 첫발을 내딛었던 본지의 '新(신) 문학기행'은 달마다 한 번 씩 꼬박꼬박 길을 나섰고 이번 2010년 8월로 100회 째를 맞았다. 그리고 이번 제100회 행사를 끝으로 '신 문학기행'은 막을 내린다. 이번 여행은 마지막 문학기행인 것이다. 우리에겐 이 100번의 여정을 기념할 만한 뭔가가 필요했다. 그런 우리 일행을 맞아준 곳이 몽골이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실시했던 작가 레지던스(거주) 프로그램을 통해 2005~2006년 6개월 동안 몽골에서 지낸 뒤 2009년 빼어난 소설집 '늑대'(창비)를 써낸 작가 전성태 씨가 초청문인 자격으로 부산에서 간 문학기행 일행을 안내했고,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이 동행했다.
"한국말에서는 소의 새끼는 송아지, 말의 새끼는 망아지입니다. 몽골어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말, 소, 양의 새끼를 가리키는 낱말이 한 살이냐, 두 살이냐, 세 살이냐, 네 살이냐에 따라 다 다릅니다. 다섯 살이 되면 비로소 어른으로 인정해줍니다. 게다가 '양이 운다'를 나타내는 동사와 '소가 운다'는 뜻의 동사 등이 따로 있습니다." 비지야 씨는 몽골의 민속학자다. 얼마 전까지 몽골국립대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몽골에서 사업을 하는 1971년 생 동갑내기 친구 바트을지 씨와 함께 흔쾌히 이번 문학기행의 현지 안내자로 나서주었다.
지난 18일부터 시작해 25일까지 이어진 몽골 문학기행에서 두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와 보여준 풍광은 몽골의 몽골다움을, 그 다름과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느끼게 해주었다.
■구름과 하늘이 특산물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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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학기행'의 일행이 몽골 정부종합청사 앞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울란바토르 시내의 몽골역사박물관에서 비지야 씨는 학자답게 몽골 역사의 핵심을 짚어나갔다. 그는 오래된 비석을 가리켰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는 흥할 것이다'라는 문장이 이 비석에는 새겨져 있습니다." 몽골 초원을 차로 달리면서도 내내 느꼈던 것이지만, 몽골 사람들에게 유목과 이동은 삶 그 자체였다. 그것은 '유목정신'이나 '유목주의' 또는 '노마디즘' 같은 근사하고 무겁고 추상적인 개념어로 고착되기 이전에, 그냥 삶 자체였다.
바트을지 씨가 유창한 한국말로 말했다. "한국에 간 적이 있는데 인천공항에 딱 내리니까 답답했어요. 하늘이 너무 멀리 있었어요. 하늘이 너무 높았어요." '가을하늘 공활하고, 천고(天高)에 마비(馬肥)라면' 쾌청하고 시원한 기분이 들 텐데 유목민의 후손인 그는 그게 오히려 답답하다고 했다. 한국에서 들었다면 이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원에서는 단박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초원의 하늘은 낮아서, 사람과 땅을 편안하게 품어주었다. 구름도 덩달아 낮게 떠있는 것 같아 마치 모든 구름은 몽골 초원에서 피어나서 세계로 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몽골초원에서 만난 첫번째 몽골 특산물은 구름과 하늘이었다.
"관광지나 도시에 사는 개들과 달리, 유목민의 개들은 사납습니다. 유목민들의 게르(몽골 유목민들이 사는 이동식 천막가옥)에 갔을 때 개가 묶여있지 않았는데 자동차 문을 열면 매우 위험해요. 그래서 여기선 한국의 '이리 오너라' '손님 왔다' '잘 지내는가'를 뜻하는 인사말이 '개 묶어라'입니다." 초원에서 자동차는 원할 때마다 섰다. 사람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마다 차를 세워주었다. 도로에는 표지판이 거의 없었고 초원에서 풀을 뜯던 양 소 말떼가 지나갈 때마다 마치 신호에 걸린 것처럼 차가 서거나 서행해야 했다.
■소설집 '늑대'가 빛을 발하는 이유
해가 질 녘 다시 한 번 초원 한 가운데 버스가 섰다. 초원에 내려서니 사람들의 그림자가 막힌 곳 하나 없이 100m는 되어보일 정도로 길게 뻗어나갔다. 아! 내 그림자가 원래 이렇게 길었구나. 도시에서 내 그림자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오랜만에 내 그림자도 무언가 툭 터지는 시원함을 느끼는 듯했다.
어쨌든 몽골은 사람 사는 곳이었다. 잠깐 다녀가는 여행자에게는 초원의 감상, 별밭의 낭만을 허락하겠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냉정한 현실이다. 울란바토르를 중심으로 몽골에는 빠르게 자본이 들어와 경제가 팽창하고 있다. 혼란스럽고 때로 사나웠다. 전성태 작가는 "시장에 가보면 참 좋을 텐데 거기는 소매치기가 극성이라 관광객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며 아쉬워했다. 도로는 그대로인데 자동차는 급속히 늘어 한국차와 일본차들이 거리를 빽빡하게 채웠고 밤 10시가 되어도 울란바토르 시내의 교통체증은 식을 줄 몰랐다.
작가 전성태의 소설집 '늑대'가 탁월한 점이 여기에 있었다. 그는 수록작 '늑대' '코리안 쏠저' '목란식당' '중국산 폭죽' 등을 통해 몽골의 오늘과 현실, 혼란과 힘겨움을 솔직하게 그렸다. '낭만 속의 유목민' 이미지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생명력을 얻고 상투적인 전개를 떨쳐버린 그의 소설들은 거꾸로 몽골에 살아있는 유목의 삶, 그것이 간직한 빛과 희망을 예민하게 잡아낸다.
그는 한 한국 남성이 울란바토르에서 겪는 곤경과 정체성 혼란을 예리하게 그려낸 '코리안 쏠저'의 무대가 된 아파트와 식당, '늑대'의 무대가 된 사원과 자작나무숲, '목란식당'을 착안하게 해준 울란바토르 시내의 북한식 식당, '중국산 폭죽'이 보여주는 자본주의 체제 울란바토르의 아픔의 배경이 된 광장을 친절하게 일행에게 보여주었다. 그 여정에서 현실을 도외시한 낭만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위험하며, 꿈과 미(美)를 품지 못한 삶이 얼마나 각박할 것인지 초원을 통해 보여준다.
여섯 시간을 달린 버스가 드디어 바양고비의 게르 캠프촌에 도착했을 때, 일행은 사막체험을 했다.(바양은 몽골어로 '풍부하다', 고비는 '사막'이라는 뜻이다) 전성태 작가가 말했다. "몽골은 역시 내면여행을 하기에 참으로 좋은 곳인 것 같아요. 편의시설은 모자라지만 자연의 품, 유목의 마음을 깊이 호흡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사막에 해가 지자, 하늘은 별밭이 되어갔다.
# 한국-몽골 문학교류 확대, 울란바토르서 '문학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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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시를 낭송 중인 몽골 시인 을지터그스. |
지난 19일 저녁 울란바토르 시내의 데코르호텔에서는 '한국-몽골 세미나 및 문학의 밤' 행사가 열렸다. 유명한 몽골의 문학인들이 기꺼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몽골작가동맹위원장이자 몽골국립도서관장인 칠라자브 씨, 한국 문인들에게도 이름이 잘 알려져 있으며 몽골을 대표하는 시인들인 을지터그스와 아유르잔, 최근 새 시집을 펴낸 남바푸르 시인 등이었다. 몽골의 현대시단에서는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시인들이었다.
한국 쪽 참가자는 제100회 신(新)문학기행 일행 16명이었다. 안도현 시인과 소설가 전성태 정인 씨, 강정이 시인과 화가 강영순 씨, 김성배 부산문화연구회 대표, 동보서적 박현주 팀장 등과 독자들로 구성됐다.
이날 두 나라 참석자들은 서로 준비해 온 시와 소설을 낭송하고 환담을 나누며 한국과 몽골의 문학교류를 더 활발하게 펼쳐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칠라자브 위원장은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몽골 문학인들은 1990년대 이후 현대 몽골문학의 대표적인 분들이며 특히 아유르잔과 을지터그스의 작품집은 한국어로도 번역돼 큰 관심을 끌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 문인들의 작품도 더 많이 몽골에 소개되기 바라며 그렇게 두 나라의 문학교류가 활발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행사에서는 한국 독자들은 음악성이 강하고 낭송에 적합한 몽골 시의 묘미를 현지 시인의 육성으로 맛보는 기회를 갖는 등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