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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11> 대연동 발도르프 사과나무 학교

흙마당에서 물씬 솟는 추억… 친밀함과 낯섦 뒤섞인 공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9-06 19:58:04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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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흔한 오래된 도심 주택가, 경사지붕과 적벽돌 일상적 형태의 집
- 주황색 적삼목 벽, 푸른 계단실… 이웃 담벼락 맞닿은 뒷마당 흙과 나무엔 낯선 정취가
- 느낌과 체험 통해 예술·국어·수학 등 함께 가르치는 대안학교 참모습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있는 대안학교인 사과나무학교 전경. 지붕의 모양과 벽돌 등은 지극히 일상적인 외양 같지만 가만히 보면 그 속에 뜻하지 않은 낯섦 또는 비일상이 함께 있다.
독일의 사상가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가 100여년 전 처음 설립한 발도르프 학교는 일종의 대안학교이다. 슈타이너 박사는 아이들이 진정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은 느낌, 체험 등을 통한 예술적 교육임을 믿었다. 세계에 640여 개 발도르프학교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부산 대연동에 생긴 이 학교가 처음이다. 이 학교는 국어 수학 음악 미술 등으로 구획되는 과목들 간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보았다. 이 과목들 속에 숨어 있는 비일상을 찾아냄으로써 경계가 명확한 과목 간의 일상적 틀을 깬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비일상의 예술적 느낌과 체험을 국어 수학 등의 이성적 과목에서도 느끼도록 교육을 행한다. 그리고 예술과목에서는 감성뿐 아니라 이성도 인식토록 한다. 일상과 비일상의 균형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이 학교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일상은 현실로 습관화된 면이다. 비일상은 현실로 습관화된 것의 보이지 않는 면들인 기억, 상상이다. 예술가들은 일상과 비일상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린다. 영화감독 홍상수와 봉준호의 영화세계에서도 그 예를 볼 수 있다. 이 두 감독의 작품세계는 일상과 비일상의 공존의 세계이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다르다.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과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다. '강원도의 힘'은 강원도라는 비일상적 휴가지를 철저히 일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특징이라면 봉준호의 '괴물'은 그 역이다. 일상에서 비일상적 괴물의 등장으로 일상이 철저히 비일상화 된다. 이 와중에서 일상이 부각되기도 하고 비일상이 부각되기도 한다. 홍상수 감독은 비일상을 배경으로 일상을 전경으로 내세운다. 봉준호 감독은 일상을 배경으로 비일상을 전경으로 내세운다.

■ 일상적인 것 속에 새로움이 솟다

사과나무학교 아이들이 흙을 밟으며 생활하고 있는 뒷마당.
건축에서는 주로 일상을 배경으로 비일상을 전경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 일상은 일상대로, 비일상은 비일상대로 새롭게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홍상수 감독의 사례는 건축에서 거의 볼 수 없다. 봉준호 감독처럼 일상성 속의 비일상성 즉 친밀함 속의 낯섦이 건축에서 주류를 이룬다. 부산의 발도르프 사과나무학교가 그랬다. 문화공원이 지척인 곳이었다. 그곳의 분위기는 부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주택가의 일상성이었다.

삼각형의 박공지붕, 경사지붕에다 징크합판, 평지붕에다 붉은 벽돌은 그야말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형태의 집이다. 그런데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군데군데 부분적으로 부착된 주황색의 적삼목 벽들과 푸른 계단실이다. 이들은 왠지 비일상적으로 보였다. 이러한 비일상적인 부분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유는 이 건물의 일상적 부분이 너무나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비일상적으로 보인다.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이웃의 슬레이트 지붕의 담벼락과 나란하게 가고 있는 뒷마당 쪽 돌과 흙마당이 정겨운 시골냄새가 물씬 나게 한다. 파헤쳐진 흙마당. 어릴 적, 흙, 돌, 물, 나무 등과 함께 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조그마한 놈들이 놀던 흔적들이 방학 중에도 생생히 살아 있다. 이것을 바라보는 순간, 기억의 흔적들이 머리를 쳐든다. 그리고 튀어나온다. 뒷마당을 가득 메울 정도로 기억이 가득 찬다. 이 도시에서는 진정으로 맛 볼 수 없는 기억의 상큼한 맛. 나의 기억이 뒷마당을 가득 채운다. 뒷마당 깊숙이 숨어 있던 먼 기억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온갖 시시콜콜한 것들이 어린 시절 '코르덴' 윗도리의 주머니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마당을 뒤집어 털듯이 샅샅이 훑어 내린다. 너무 쏟아져 나와서 일상이 전복될까 두렵다.

나는 이쯤에 기억털이를 그만 두었다. 아파트에서 자란 아이가 과연 이런 기억털이가 가능할까? 흙, 돌, 물, 나무, 새 등을 자연 속에 만나기 힘든 판에 무슨 놈의 기억이 주머니 속에서 털어져 나올까? 털어져 나온 것들을 일상의 친밀한 것과 구분하여 사람들은 비일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봉준호의 괴물처럼 일상의 평온한 모습 속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비일상은 일상의 잠잠함 속에 괴물처럼 우리 앞에 숨어있다. 꿈에서처럼 '저 놈'이 작동하기만 하면 우리의 일상은 순간에 전복될 것이다.

■ 학교교육에 대한 나름의 메시지를 던져

아이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공간. 건축사진가 조명환
일상이 전복될 개연성이 있는 곳 하나 더. 푸른 하늘처럼 푸른 계단실. 이것 또한 우리 상상을 보관하는 보관실이다. 나는 가만히 가서 그걸 열고 싶었다. 상상을 만지고 싶었다. 계단실이라는 상상의 상자, 상상을 몽땅 담고 있는 곳. 덮어두기로 했다. 벽면 도처에, 계단실 일부에 마감된 주황색 적삼목은 비일상의 또 다른 면인 기억과 상상의 혼합을 의미한다. 그것이 풀어 헤쳐지면 우리의 일상성 역시 전복되리라. 우리의 일상은 괴물 같은 비일상, 즉 비일상의 또 다른 면인 기억과 상상의 혼합을 감추고 있다. 이 건축물도 일상이란 이름을 띠면서 비일상성을 간직하고 있다. 마감재료별로 일상, 비일상으로 나누어 보면 징크패널, 치장벽돌 등은 일상의 느낌을 우리에게 주고 하늘색 불소수지 페인트는 일상의 깊이를 주는 비일상의 상상의 상자를 주고 주황색 적삼목은 비일상의 농축액을 담고 있다. 기억과 상상이 응집하는 곳에 비일상의 농축액이 고인다.

교육목표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일상 속에 비일상을 제공하는 이 학교는 적어도 일반학교에게 학교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학교는 일상과 비일상이 공존하는 교육을 지향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일상이 이성과 감성이 습관화된 것이라면 이 학교의 교육목표는 습관화된 일상을 자극시켜 비일상의 새로움을 받아들여 일상과 비일상의 균형점을 잡아주는 것이리라.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이 학교의 궁극적인 교육목표는 시인 정현종의 시, '이 세상 깊음 속으로'에 함축되어 있다.

'날으는 새의 날개가 느끼는/ 공기/ 그 지저귐이 느끼는/ 내 귀/ 에 흐르는 푸른 공기/ 귀속에 흐르는 날개/ 모든 것들의 경계의/ 氣化/ 서로 다른 것의 모양 속에 녹는다/ 네 모양이 내 모양/ 내 모양이 네 모양이라며/ 날개와 바람/ 날개와 바람처럼…//인제 다시 떠나야 한다/ 이 세상 깊음 속으로…'

■ "괴물을 다룰 줄 알아야 건축가"

이동언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날개와 바람처럼' 일상과 비일상이 '이 세상 깊음 속으로'들어간다. 일상과 비일상이 이 세상 깊음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일상과 비일상이 교묘히 엮어져 그 둘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경지로 짜깁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교한 짜임을 예술 혹은 건축이라 부른다.

대부분 건축가들이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처럼 일상 속에 비일상이 숨어 있는 것을 애써 모른 체 한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건축하기에만 급급한지 모른다. 건축가는 모름지기 괴물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 괴물과 함께 이 세상의 깊음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참다운 건축가일 수가 있다. 건축가 조형장과 이원영(건축사사무소 메종 공동대표)은 일상과 비일상이 날개와 바람처럼 한 짝을 이룸을 안다. 그러나 '이 세상 깊음 속으로' 들어감은 아직 체험을 못한 것 같다. 이젠 평면에서 일상과 비일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1층 평면에서는 남쪽에 주출입구가 있고 북쪽에 부출입구가 있다. 주출입구에서 전면으로 나아가면 홀의 단부 좌측 끝에 계단실이 있고 왼쪽에는 행정실, 자료실, 간이주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교실, 주방/식당, 화장실, 양호실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홀이 있고 다목적실, 상담 및 회의실이 있고 이와는 분리된 지층에서 바로 연결된 문을 가진 교실이 하나 더 있다. 내부평면에서는 전혀 비일상적인 패턴이나 모양을 가진 실이 더 없었다. 아직까지 일상과 비일상을 형태와 평면에서 동시 짜깁기하기에는 그들의 연륜이 역부족인 듯하다.

건축가 조형장과 이원영은 일상과 비일상의 짜깁기를 막 시작했다. 이제부터 바짝 혼의 줄을 당겨야 한다. 시인 유하는 시, '오징어'에서 건축가들이 꼭 들어야만 할 것 같은 충고를 한다.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이들이 건축세계의 깊음 속으로 가는 동안 내내 시인의 충고를 잊지 말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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