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사지 땅깎기, 그 속에 건물들
- 채움의 욕망으로 숨이 막힐 지경
- 2층 옥상을 종합운동장으로
- 캠퍼스 한가운데400m 육상트랙은 우후죽순 건물까지 아득하게 보듬어
- 물리적·정신적으로 학생들에게 이보다 더 큰 가르침이 있으랴
부산에 있는 대학교의 많은 건축물들은 경사지를 절토하여 만들었으므로 변변한 평지가 제대로 없다. '평지 없음'은 곧 학생들이 물리적으로 채움만 체험하지 비움을 체험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과도 같다. 채움과 비움은 물리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채움과 비움은 정신적으로 연결된다.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채움과 비움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떼려야 뗄 수 없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채움과 비움 중에 어느 하나를 놓치는 것은 교육상 큰 손실이다. 어느 한쪽이 결여되면 다른 한쪽이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를 적절히 조정해나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동서대는 지난해 6월 30일 종합운동장 기공식을 가졌다. 경사지를 활용해 건설된 종합운동장에는 맨 위쪽 공간에 국제규격의 인조잔디 축구장과 우레탄 육상트랙 등이 들어가고, 축구장 아래에 위치한 건물에는 동아리실, 각종 학생 편의시설이 자리한다. 현재 건축물 자체는 완공됐고 학생 편의시설에 대한 마무리 입주 작업이 한창이다. 이 시설물은 이 대학의 '캠퍼스 공원화 작업'의 최종 단계에 해당한다.
■ '공허하므로 움직인다'는 김지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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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대 신축 종합운동장 건물. 육상트랙과 국제규격 인조잔디 축구장 등 체육편의시설이 있는 이 장소는 건물의 옥상에 해당하며 그 아래에는 각종 학생편의시설을 잘 갖춘 지하 2층, 지상 1층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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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400m나 되는 육상트랙을 갖는 면적의 운동장이 생긴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비움의 의미와 가치를 물리적·정신적으로 제공한다. 물리적 비움은 정신적 비움을 촉발시킨다. 우선 정신적 비움의 감을 잡기 위해 시인 김지하의 시 '無'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공허하므로 움직인다 // 시장해서/ 나/ 너를 사랑했노라 // 땅위의 풀과 벌레 / 거리의 이웃들 / 해와 달, 별과 구름 모두 다 / 모두 다 죽어가는 이 한 낮// 내 속에 / 텅 빈 속에 / 바람처럼 움트는/ 웬 첫사랑 우주사랑// 그 새뿕음(첫사랑)을 / 본다 // 공허하므로 / 공허하므로 움직인다.'
왜 이 시에서는'땅위의 풀과 벌레 / 거리의 이웃들 / 해와 달, 별과 구름 모두 다 / 모두 다 죽어가는 이 한 낮'이라 했을까? 자기욕망에 사로잡혀 공허함을 잃어버림으로써 '모두 다 죽어가는 이 한 낮'이라 표현한 것 같다. 그러나 시인은 공허하니까 우주사랑을 시작했고 이로 인해 살아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물론 시인이 말하는 공허함이란 '마음의 비움'을 가리킨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동물이다. 400m의 육상트랙 운동장이 주는 그 물리적 비움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운동장이 주는 비움의 힘에 의해 운동장을 둘러싼 우후죽순의 건축물들이 차분해진다. 이 같은 종합운동장이 대형으로 형성되지 않았으면 각 건물마다 이글거리는 채움의 욕망이 서로 부딪혔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각 건물이 채움의 욕망을 종합운동장에다 비워냄으로써 균형점을 찾는다.
채움만 가득한 곳에 이런 식의 비움을 둘 수 있는 것은 정신적 비움이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정신적 비움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자 사랑이다. 텅 빈 운동장과 마음은 상호작용하여 학생들의 정신적 비움을 촉진시킬 수 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비움과 채움이 균형을 이룬다.
■ 캠퍼스 한가운데를 비워 균형을 맞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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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 종합운동장 시설물. 경사면의 절개지를 활용한 건물로 부산의 대학건물로는 극히 유례가 드물다. 사진 정면은 에스컬레이터다.
사진=건축사진가 조명환 |
마음이 채움을 갈구하니까 도시건축 공간도 채움이 너무 일어난다. 채움은 곧 막힘을 예고한다. 주위의 건축물들이 채워진 상태에서 지금의 운동장 자리에 채움을 행했더라면 궁극적으로 막힘이 일어났을 것이고 동서대는 기(氣)의 막힘으로 질식할 뻔했다. 경사면의 절개지를 활용해, (종합운동장 면을 기준면으로 할 때)지하 2층 건물의 옥상을 종합운동장으로 만듦으로써(사진 2 참조) 텅 빔을 얻는다. 이곳은 정신적으로도 비움을 촉발시킨다. 그러므로 움직인다. 비움으로써 캠퍼스가 활력을 찾는다. '시장해서/ 나/ 너를 사랑했노라'. 캠퍼스의 모든 것들이 꽉 채워져만 가는 시점에 운동장 속에, 텅 빈 속에 '바람처럼 움트는 웬 첫사랑, 우주사랑 그 새뿕음(첫사랑)'을 본다. 캠퍼스가 운동장이라는 허공을 둠으로써 이제 정신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상기의 시를 통해 살펴보면 원래 정신적 비움으로 부여받은 우리의 욕망이 차츰 고무풍선처럼 불어올라 채움이 되었으므로 이젠 정신적 막힘이 된다. 이 막힘은 욕망인 채움이 빠져나갈 때, 즉 우리가 배가 고플 때, 허공이 생긴다. 비로소 움직임이 일어난다.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보이는 증거이기도 하다. 욕망인 채움에 의해 우리 인간이 풍선처럼 위로 위로 올라가는 것(예를 들면, 바벨탑)을 멈출 때만 우리 인간은 정신적 비움을 체험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 비움이 되면 허기가 지기 마련이고 타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또 다시 욕망인 채움으로 되돌아갈 개연성이 있다.
예수도 석가도 모두 채움의 괴력을 보았다. 예수는 채움의 힘을 모조리 안고 가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석가의 출가도 역시 채움의 힘에 의해 형성되는 것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다. 채움의 힘이 소멸되어 갈수록 비움은 강화될 것이며 인간은 채움을 침잠시킴으로써 자신을 텅 비게 하여 그래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움직임은 정신적 비움으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건축적으로, 동서대는 적어도 종합운동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물리적 채움의 현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건물들이 위로 위로 우후죽순 솟아올라 왔다. 물리적으로 채움을 소멸시키지 못했다. 모든 건물이 만족할 만큼의 비움을 이루지 못했다. 그중 몇이라도 비움을 어느 정도 챙겼다면 채움과 비움이 어느 정도의 평형상태를 이뤘을 것이다. 드디어 가운데 종합 운동장을 비움으로써 채움을 받아줄 공간이 형성된다.
제각각 자기 채움으로 올라간 건물 한 가운데 비움을 둔다는 것은 캠퍼스 자체의 밸런스를 맞추는 행위다. 불행하게도 물리적으로 너도 나도 채움을 버리지 못하고 지니고 산다. 그런 세상에서 약간의 비움의 공간이 있는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캠퍼스의 거의 중앙부에 운동장이 배치된 것은 정말 행운이다. 채플관에서 운동장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은 금상첨화다. 채플관과 종합운동장은 정신적·물리적 비움의 합성으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 종교란 정신적으로 채움에서 비움으로 그리고 마침내 공복에 도달함이 아닌가? '시장해서 나 너를 사랑했노라.' 이것이 기독교 사상의 핵심이 아닌가? 이것이 거듭남 아닌가? 이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 김명건(다움건축사사무소 대표)은 이런 점을 알고 있는 것 같다.
■ 비움과 채움, 움직임과 막힘의 긴밀한 관계
내부공간에 들어가 본다. 경사지를 절토하여 만든 땅인지라, 야외 운동장의 면을 지상 1층 건물의 옥상으로 볼 때 지하 2층은 시작점에 해당한다. 외부계단을 타고 올라오면 보행자 마당, 진입마당이 있고 필로티광장이 있다. 여긴 점포 앞의 테라스와 유사한 공간이다. 이 테라스에 마주하여 왼쪽부터 에스컬레이터, 지하 1층으로 올라가는 출입구, 피자전문점, 커피전문점, 푸드코드 등 순으로 배열되어있다. 지하 1층 평면은 입시처 사무실, 처장실, 다목적회의실, 기자재창고, 종합홍보실…주차장으로부터 오는 출입구 순이다.
지상 1층 평면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있다. 서쪽 출입구의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면 오른쪽은 학생플라자다. 그것은 카페테리아, 당구장, 북카페, 시네마존, PC존, 미용실, 편의점을 가지고 가운데 오픈 스테이지가 있다. 왼쪽은 강의실, 동아리실(40개), 처장실,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 총학생회사무실, 동아리연합회사무실, 취업지원실 등이다. 지상 1층 옥상에는 운동장이 있다. 여기에는 샤워실, 선수대기실 등이 있다. 여전히 내부는 채움으로 되어 있고 비움이 거의 일어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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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
종합운동장 서쪽에 설치한 에스컬레이터는 이용객을 실어 나르는 데 긴요한 것이다. 이에 비해 건축물의 정면은 150.6m로 무척이나 긴 길이임에도 똑같은 원형기둥이 열주로 15개가 되풀이해서 나타남으로 비움의 경향이 강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열주의 채움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 둥근 지붕모양의 주두 부분의 처리에 세심한 배려를 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습관적으로 남은 채움만을 위한 채움에 경도된 경향의 일부인 것처럼 보인다. 평면에서 이벤트를 수용할 별다른 비움의 공간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군데는 다르다. 오픈 스테이지다. 그러나 기(氣)가 돌 정도는 아니다. 형태 등에서는 채움의 상태다.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비움과 채움, 움직임과 막힘이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우리는 새삼스레 확인한다.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