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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의 연극이야기 <29> 눈물의 '아리랑 고개'

석금성·김무삼 사건 등 슬픔과 저항의 용기 담은 1920년대 인기 대중극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9-23 19:15:31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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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대중극 중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아리랑 고개'의 여주인공 석금성.
1930년대 대중극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면, 1920년대 대중극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작품은 '아리랑 고개'였다. '아리랑 고개'는 1929년 11월 21일부터 11월 28일까지 박승희 작, 박진 연출, 원우전 장치로 조선극장 무대에 올랐다. 주인공 길용 역은 이백수가 맡았고, 상대 여주인공 봉이 역은 석금성이 맡았다. 그 밖의 역할로 길용의 부친 역은 윤성묘, 농부 역은 이소연, 작품을 진행시키는 '서사' 역은 심영이 맡았다.

비록 대본은 없지만, 이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자. 주인공 길용과 봉이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으로 수양버들 아래에서 자신들의 장래를 약속하며,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을 땀 흘려 가꾸며 보람되게 살자고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처녀 총각의 사랑에는 방해자가 반드시 등장하는 법. 이 작품에서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는 이는 일인(日人) 악덕 고리대금업자였다. 실제 공연에서 일인 복장으로 등장했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과감한 설정이 아닐 수 없었다(당시 공연은 사전에 대본 검열을 받아야 했고, 공연장에도 임석 순사가 대본과 공연을 비교하며 상시 감찰하곤 했다).

일인 고리대금업자는 돈을 갚으라고 길용을 핍박하고, 이 핍박에 못 이겨 길용 부자는 집과 땅을 빼앗긴 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이때 동네 사람들과 봉이가 길용 부자를 전송하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무대에는 전송 나온 동네 사람들이 가득 도열했고, 그 앞에서 길용 부친은 아버지, 할아버지 산소의 흙을 움켜쥐며 통곡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봉이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녀는 멀어지는 길용을 그리며 노래 한 곡을 불렀다. 민요 '아리랑'. "나를 두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이 작품은 민요 '아리랑'에서 착안되어 집필되었다고 하니, 메인 테마이자 이별의 노래로 '아리랑'이 제격이었을 것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떠나는 길용 일가를 지켜보던 관객들은 울음바다에 빠졌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건과도 결부되었다. 두 가지만 소개할까 한다. 하나는 이 작품의 공연이 인기를 얻어갈 무렵, 주연 여배우 석금성은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서산에 두고 온 아이가 그만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석금성은 식음을 전폐한 상태로 자리보전해야 했고, 간신히 일어는 났지만 이미 탈진한 상태로 무대에 올라야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연기는 무척 실감났던 모양이다. 석금성이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쓰러질 때, 객석의 관객들은 연인을 잃는 슬픔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연기해내는 석금성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이 작품의 대사회적 이미지를 제고시킨 사건이었다. 신간회의 간부였던 김무삼이라는 청년이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운집한 관중들을 대상으로 정치선전물을 뿌리고 시위를 도모하려다가 붙잡힌 사건이었다. 김무삼이 상기시킨 것은 '광주학생사건'이었다. 가뜩이나 조선 민중의 감정을 하나로 묶고 있던 이 작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일본 경찰은, 이 사건을 기화로 공연을 중지시키고 노래 아리랑도 금지시켰다.

저항하지 못하는 자들의 입을 대신하고, 떨치고 일어설 수 없는 자들의 손을 대신하여, 이 작품은 대신 말하고 대신 행동하는 어떤 용기를 보여주었다. 또 이 작품이 공연되는 풍경 안에는, 어려운 삶을 살아가야 했던 슬픈 기억과, 미래를 향한 용기 있는 도전도 함께 들어 있었다. 석금성과 김무삼 사건은 비록 우연이겠지만, 그만큼 이 작품이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바가 컸음을 확인시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연극평론가·부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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