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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15> 동남권 원자력의학원

해송숲, 이 병원 건축의 핵심이자 시작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04 20:33:1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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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은 마음을 치유하고 몸을 되살린다
- 기존 해송숲을 디자인의 핵심으로 활용한 이 병원 건축은 그래서 훌륭하다
- 숲으로 걸어들어가 즐길 수 없다는 것, 주위의 자연과 더 완벽하게 섞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부산 기장군에 위치해 동쪽과 북쪽은 100m 이내의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과 서쪽은 트여있는 곳이다. 이 대지에 병원을 계획하며 예상되는 어려운 점은 첫 번째로 주진입도로가 서측에 위치해 서향을 피해 정면성을 얻는 것. 두 번째로 대지 중심부에 들어서 있어 대지를 특징짓는 해송 숲을 보존하면서 경관요소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많은 부산, 경남권 암환자들이 서울로 이동하여 치료받는 불편을 해소하고자 했다.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부산 기장 지역주민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과학기술부에서 암전문병원과 원자력사고 관련 비상진료센터를 한곳에 묶어 건립한 프로젝트이다. 환자의 심리적 불안감 해소를 위해 건축가는 무엇을 하여야하나? 건축가 이관표(엄&이종합건축사사무소) 씨는 설계를 통해 환자와 자연과의 교감을 주고받는 데 최대한의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시도했다.

■ 자연이 전해주는 것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들어선 동남권 원자력의학원. 주 건물이 휘어지게 설계했고 그 앞에 기단부 성격의 낮은 건물(포디움)을 배치했다. 건축사진가 조명환
다음의 두 글은 시인과 건축가로부터 나온 글들이다. 그들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함에도 자연에 대해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 '자연은 마음을 일으키고 몸을 되살린다'는 생각이다.

정현종은 그의 시 '자연에 대하여'에서 읊조린다. '자연은 왜 위대한가./ 왜나면/그건 우리를 죽여주니까./ 마음을 일으키고/몸을 되살리며/ 하여간 우리를/ 죽여주니까.' 이글의 핵심은 '죽여주니까'이다. 이것은 많은 함축적 의미를 띠고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우나 정의를 내려야한다면 다음과 같다. '죽여주니까'는 '마음을 일으키고 몸을 되살릴' 정도로 "끝내준다"는 의미이다.

'병원기능을 충족시키면서도 병동과 전면 건강검진센터 매스를 해송 숲을 중심으로 바깥쪽으로 휘게 구성해 해송이 보존되면서도 건물의 중심에 놓이게 해 외부에서 병원을 볼 때 해송과 건물이 어우러져 있는 것으로 보이게, 내부 아트리움(현대식 건물 중앙 높은 곳에 보통 유리로 지붕을 한 넓은 공간)과 로비에서도 아름답고 건강한 해송의 모습이 이용객들에게 보이도록 하였다.'

'…암과 투병하며 인내의 세월을 견디어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거친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해송의 늠름한 모습이 위안이 되어 조금이라도 암 치유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시에서는 자연의 위대함을 '죽여주니까'라는 대중적 어법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고 그 위대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단지 '죽여주니까'라고 외칠 뿐이다. '죽여주니까'의 건축적 대응이 '병동과 전면 건강검진센터 매스를 해송 숲을 중심으로 바깥으로 휘게 구성'함이다. 이러한 대응을 중심에 놓이게 해 환자가 내·외부에서 해송 숲을 바라볼 때 자연은 '끝내주니까'와 같은 위대함이 해송 속에 숨어있음을 눈치 챌 때 환자들의 '마음을 일으키고/ 몸을 되살릴' 수가 있다.

자연의 위대함을 알수록 그것이 마음을 일으키고 몸을 되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왜 우리의 선조들은 졸박미(拙樸美)와 함께 살아갔는가? 자연은 '마음을 일으키고/몸을 되살리며/ 하여간 우리를 죽여주니까'. 우리 선조들은 휨이 있는 혹은 흠집이 있는 목재도 과감하게 기둥이나 보로 사용했다. 공사도중에 큰 바위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그대로 활용했다. 그들은 대지에 있는 장애물을 없애야 할 것으로 보지 않고 더불어 살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 있었다. '그건 죽여주니까'

■ 해송 숲과 병원 기능의 밀접한 관계

이 병원의 디자인에서 핵심 구실을 하는 해송 숲과 건축물이 어우러진 모습.
원인·결과의 법칙에 따라 불필요한 것, 유용하지 않는 것, 삐뚤어진 것, 당장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지 않는다. '하여간 자연은 우리를 죽여주니까.' 이 말에는 자연이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범위를 포괄하고 있음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인간의 머리로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범위를 자연은 알고 있다. 그래서 '죽여주니까'라는 말에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 한 부분을 자연은 알고 있는지 모른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해송 숲을 중심으로 매스(덩어리)들을 바깥으로 휘게 구성한 것도 역시 '죽여주니까'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한 구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죽여주니까' 해송 숲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해송 숲의 가치를 '죽여주니까'와 동일하게 본다면 암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살릴 수도 있다. 따라서 해송 숲이 디자인의 핵심이다. 이것을 건축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생각한 건축가의 뛰어난 혜안에도 불구하고, 이를 건축물의 배치와 형태에 시각적 요소로만 소극적으로 활용한 점이 아쉽다. 해송 숲을 전경으로 건축물을 배경으로 했으면 어떠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건축물과 주위와의 관계에서 '섞임'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점이 아쉽다. 다양한 공간구성과 입면상의 변화, 재질의 단순화 등은 이 건축물에서 뛰어난 점이다.

또한 뒷산과의 관계 맺기, 주변과의 관계 맺기 등에서는 특별한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답답한 1층 공간의 구성을 타파하기 위해 필로티(건물 일부 또는 전부를 기둥을 이용해 지면에서 띄워서 생긴 공간) 등을 설치하여 해송 숲을 볼 수 있는 범위를 넓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해송 숲에도 무언가를 설치했어야 했다. 하나의 장소로서 말이다.

정현종은 '장소에 대하여' 이렇게 외친다. '모든 장소들은/ 생생한 걸 준비해야한다./ 생생한 게 준비된다면/ 거기가 곧 머물 만한 곳이다./ 물건이든 마음이든 그 무엇이든/ 풍경이든 귀신이든 그 무엇이든/ 생생한 걸 만나지 못하면 그건 장소가 아니다…'

'생생한 걸 만나지 못하면 그건 장소가 아니다.' 이 병원은 건축적으로 해송 숲과의 관계 맺기에는 혜안이 반짝해 생생한 걸 준비했다. 그러나 뒷산과의 관계 맺기, 주변과의 관계 맺기에서는 그렇게 생생한 것을 준비하지 못했다. 배치와 평면에서 두드러진 점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체험'이 배제된 점 등 아쉬움도

멀리서 본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건물과 보존된 해송 숲이 상호작용한다.
주출입구와 건강진단센터의 출입구를 해송 숲을 바라만볼 수 있는 곳에 두었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이면서 유감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체험 없이, 즉 해송 숲과 더불어 함께함 없이 그저 바라만볼 뿐이다.

장례식장입구를 주출입구에서 멀리한 것과 비상진료센터 역시 멀리한 것은 교과서적인 배치고 두고 두고 지켜야 할 규칙이다. 연구실 또한 동일한 맥락이다. 1층에는 주로 암센터가 위치해있다. 갑상선두경부암센터, 흉부암센터, 유방암센터, 자궁암센터, 2층에는 비뇨기과, 혈액종양내과, 순환기 내과, 정신과, 대장암센터 등이 있다. 수술실은 3층에 주로 배열되어있다. 4, 5, 7, 8층은 환자실이다. 4층에서는 심리/언어/음악치료실, 가마실, 미술/도예 치료실, 옥상정원 등이 있으나 공조실의 소음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5, 6, 7, 8층의 병동에 가운데쯤 오픈된 공간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8층에 설치된 외부공간 역시다. 5, 6, 7, 8층에 좀 더 소통할 수 있는 오픈된 공간이 있었으면 좋을 뻔했다.

병원 건축도 이 기회에 일신해야 한다. 습관화된 건축공간 내에 환자 및 보호자만 북적대는 곳에서 병을 어떻게 치료하나? 더 나아가 어떻게 생생한 걸 만날 수 있을까? 생생한 것을 만나기 위해서는 의술로서의, 기술로서의 병원건축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고 창조의 길을 나서야 한다. 창조란 무엇인가? 기존의 질서를 넘어서는 것이 창조다. 기존의 질서를 넘어서나 결코 무질서로 볼 수 없는 것, 새로운 질서를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생생한 것이다. 창조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이 세상과의 나쁜 습관적 관계 맺기로 인해 몸에 해로운 반복이 되풀이될 경우, 흔히 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창조적 삶은 습관적 관계 맺기와의 이별이다.

이동언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해송 숲을 중심으로 건물을 휘게 하는 것과 건강진단센터가 해송 숲을 감싸 안은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이다. 그러나 건강진단센터는 타원형으로 배열되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포디움(연속적인 낮은 벽 형태의 기단부 시설물) 부분이 전면을 향해 좀 더 휘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형태 면에서 환자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이끄는 밝은 색상이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되나 주위의 자연과 마을에 어울리는 색깔을 사용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형태 자체도 색상과 마찬가지로 맥락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자세였으면 좀 더 나은 건축물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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