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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있다, 부산문화의 길 <5> 공연예술, 해양문화의 물그릇론

바닷가로 나가 보라, 마르지 않는 문화의 샘터가 그곳에…

해운대 광안리 등 바다와 도심 해변은 타 도시 견줄 수 없는 창작·펼침 최고 공간

푸른바다 배경 무대서 문화예술공연 잦으면 부산의 매력 높아질 것

무용계는 다소 성공적, 연극 · 음악계 등도 바다무대 활용 늘려야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0-10-05 19:42:3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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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작곡을 마친 뒤 부인 석은애 여사와 곡을 검토해 보는 변훈 선생. 국제신문 DB
'대양에 물이 많아도 자기가 들고 있는 그릇의 양 이상의 물을 담을 순 없다'.(소설가 이병주, '문학을 위한 변명' 중)

#장면1: 분야-음악: 음악계에서는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작곡가 변훈(1926~2000) 선생이 지어 온 국민의 가곡 반열에 오른 '명태'(양명문 작시)와 '떠나가는 배'(양중해 작시)가 최초로 발표된 곳, 다시 말해 한국인에게 처음 알려진 장소는 지금의 부산 중구 남포동 부산극장 자리에 있던 부산시민극장이었다. 한국전쟁 시기였던 1952년 이 극장에서 열린 '한국 가곡의 밤' 공연에서 초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면2: 분야-과학: 야외레스토랑이나 야외카페에 적합한 지역은 최대 순간풍속이 10m 이상인 날이 1년에 37일 이하여야 하는데 2002~2005년 관측한 풍속자료를 보면 영도(연평균 43.6일)를 제외하고 대연동(9.4일) 해운대(27.4일) 수영만(29.0일) 등 바닷가 지역 대부분이 야외카페에 적합함을 알 수 있다. 또 해운대의 4~10월 적풍환경(강풍에 의한 환경장해가 없거나 사람이 불쾌하다고 느끼지 않는 환경)을 보면 대부분(62%)이 적풍환경이며 강풍에 의한 비적풍환경이 나타나는 것은 13% 이하이다.(한국해양대 도근영 교수, 국제신문 2009년 4월 6일 자)

#장면3: 분야-발레: "세계에서 열리는 많은 무용축제에 참가했지만, '바닷가 야외무대'는 정말 드물거든요. 2008년 처음 왔을 때 무대 뒤로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황홀했죠. 부산국제무용제(BIDF)는 그런 점에서 봐도 무척 잠재력이 큰 무용제라고 생각합니다."(월드스타 발레리나 강수진, 지난 4월 제6회 BIDF 홍보대사로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이번이 생애 첫 홍보대사 수락이었다.)

'공연예술'이라 하면, 음악 연극 춤 등이 있다. 해양문화와 음악·연극·춤을 결합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작품의 내용과 관점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해양음악' '해양연극' '해양춤'을 찾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런 작품을 찾아낸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고 모은다 해도 의미 있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해양문학의 개념을 논할 때, 해양희곡 정도가 한 영역으로 포함되기는 하지만(최영호, 조규익 공저 '해양문학을 찾아서'), '해양음악' '해양연극' '해양춤'이란 조어는 낯설기만 하다.

■작품 창작과 함께 연행공간도 중요

지난 2008년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에서 열린 제5회 부산바다마당극제에서 배우와 악사들이 마당극을 펼치고 있다. 부산마당극잔치추진위원회 제공
그런데 이 막다른 지점에서 살짝 뒤집어 생각하면, '해양도시의 해양문화'와 공연예술을 확연하게 엮어주는 끈 하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장소'다. 공연예술은 무대 위에서 실제로 펼치는 행위를 부동의 전제조건으로 한다. 이 때, 그것을 '어디에서' 행하는가 문제가 지역문화의 정체성 및 가능성과 직결되면서 해양문화 콘텐츠 축적과 확산에 기여할 수 있는 지렛대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부산은 지하철이나 버스만 타도 곧장 닿을 수 있는 '도심해변'으로 해운대 광안리 송도 다대포 등이 있다. 부산 말고 국내 어떤 도시도 갖추지 못한 요건이다. 이 장소들에서는 꾸준히 문화예술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그 시도의 대부분은 공연예술이다. 기장군에도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바닷가공간이 있다. 이 장소들과 공연예술의 콘텐츠를 의식적으로 조합하고 연계해 그 성과물을 부산을 표상하는 문화·예술적 상징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치자. '부산에 어떤 해양문화의 콘텐츠가 있는가'하고 누가 묻는다면, "바닷가로 나가보라"라고 답해주면 그만이다. 바다와 바닷가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연예술을 해양문화를 담는 그릇으로 삼자는, '해양문화 물그릇론(論)'이다.

부산 예술·문화인들은 바닷가 공간을 공연예술과 연계시키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아직은 통합된 체계나 관념 없이 산발적이다. 극작가이자 연극평론가 김문홍 씨는 "작품을 중심으로 봐도 부산에서 해양연극 또는 바다를 껴안은 연극은 극히 적다. 황두진 씨가 부산에서 극작·연출했던 '출렁이는 땅'(극단 누리에·1999), 내가 원작을 쓰고 허영길 씨가 연출한 '떠도는 섬'(극단 사계·2000) 정도다." 극단 자갈치의 1992년 작 '내 청춘 파도에 싣고'(황해순 연출)도 포함시킬 수 있다. 범위를 넓게 잡는다 해도 2002년 부산 19개 극단 합동 뮤지컬 '자갈치'나 작고한 극작가 이현대 씨의 '자갈치' '하늘로 간 고래' 등이 바다와 갯가를 무대로 삼은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는 수준이다.

김 씨는 "최근 시도되는 문화예술인의 승선 체험행사 등은 무척 바람직하다"며 "지역 특성으로 보든 향후 가능성으로 보든 부산에서 해양연극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은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연극인들이 바다를 몰라 작품이 안 나온다.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금만 받쳐주면 작품은 얼마든지 나올 것"이라 했다.

■뜻하지 않는 변수에 곤란 겪기도

지난해 광안리해변 특설무대에서 열린 경성대 주최 제22회 부산국제여름무용축제에서 신정희발레단이 바다와 어우러지는 춤을 추고 있다. 국제신문 DB
연극에서 바닷가로 적극 나간 부문은 부산의 마당극이다. 부산민족예술인총연합은 2004년부터 부산바다마당극제전을 광안리해변에서 열었다. 사방이 뚫린 마당에서 해학과 풍자를 펼쳐놓는 마당극이 바다라는 공간과 잘 어울리고, 동시에 이런 행사 자체가 바닷가 공간에 문화적 활력을 더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광안리에서 4회까지 열린 이 행사는 2008년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으로 옮겼다. 광안리에는 원래 행사가 많아, 문화적 혜택은 적되 유서는 깊은 송도해변에서 새 방향을 모색키로 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의 난관이 돌출했다.

한 출품작 공연 도중 빨치산이 잠깐 등장했는데, 한 관객이 현장에서 항의하고 관공서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행사는 성황리에 끝났지만 여러 사정을 살핀 끝에 송도를 떠나기로 했고 그후 2년 동안 민주공원과 대연동 평화장터로 옮겨다니며 행사 명칭도 부산마당극잔치로 바꾸게 됐다"고 이 행사 기획을 맡은 심종석 씨는 밝혔다. 심 씨는 "특히 외지 초청팀들이 바닷가 공연을 좋아하는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변수가 많은 야외 공간의 불안정한 상황의 일단을 보여준다. (사)한국민족극운동협회 최정완 이사장은 "광주마당극제는 거리에서 30분 거리극을 연속진행하고, 제주마당극제는 평화마당극을 내세우는 등 각자 특징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부산도 바다라는 자산을 잘 활용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바닷가 공간을 적극 끌여들여 지역문화의 중요자원으로 성장시킨 선구자이자 강자는 춤이다. 원조는 경성대 무용학과가 매년 7월 해운대 해변 등지에서 여는 부산국제여름무용축제다. 경성대 무용학과의 교수와 학생들이 '야외공연'의 개념조차 희박할 때 광안리 해변으로 뛰쳐나가 춤추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올해 23회 째를 치른 이 행사에는 그간 바다를 주제로 한 춤이 많이 발표되었고, 현재 단일 무용학과가 주관하는 국제행사로는 단연 돋보인다.

■발상을 바꾸면 더 큰 무대 열린다

매년 6월 해운대 백사장 특설무대에서 열리는 부산국제무용제(BIDF) 또한 성장세다. 출범 당시 경성대 부산국제여름무용축제에서 영감을 받은 BIDF는 올해 6회째를 치렀다. 지난 2년 운영위원장을 맡은 부산대 이윤자(무용학과)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사단법인화, 시 지원금 확대, 국비 확보 등 난제를 차례로 풀었다. 단순 공연 위주 페스티벌을 넘어 국제 합작과 신예 육성프로그램 개발, 참가팀 교류강화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올해 참가했던 아일랜드의 댄스씨어터 오브 아일랜드 대표는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Don't look back to the west!(서구를 무작정 좇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잠재력이 충분하니 자신의 길을 가라'는 조언이다. 하지만 난제도 적지 않다. 부산국제여름무용축제는 BIDF와 차별성을 갖기 위해 새로운 방향 설정을 고심해야 하고, BIDF는 최근 이윤자 운영위원장을 이은 신임 김희은(동의대 교수) 운영위원장이 발전방안의 가닥을 잡아야 한다.

만성적 공연 공간 부족을 호소하는 부산 음악계도 바다를 끌어안을 수 없을까. 지금도 해마다 부산 해변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지난 5월에는 국제신문 주최 시민걷기축제에서 뉴프라임오케스트라가 광안대교 위에서 음악회를 여는 전례 없는 체험도 했다. '바닷가에서 공연이 자주 열리는 보기 드문 도시'로 자리매김한다면, 부산의 매력도 달라질 것이다. 물그릇을 키우면 대양도 더 잘 퍼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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