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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18> 고가풍 주택에서 아파트 풍경을 다시 생각하다

채움 - 비움의 균형, 자연과 조화 '이입재'에선 넉넉한 여유로움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1-08 20:23:1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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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러운 멋 살린 주택, 넓은 마당과 나무들
- 천장에는 유리창문, 푸른 하늘과의 교감
- 비어있으나 꽉 찬 공간반복되는 일상에서 매일 새로운 체험
- 상상을 잉태시키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

- 규격화·개량화된 현대식 아파트
- 유일 비움의 공간, 발코니마저 없애 외부와 내부 소통
- 내부 공간들 사이 관계조절에 실패
- 인간관계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아파트 11층에 사는 나는 김기택의 시, '그는 새보다도 땅을 적게 밟는다'를 읽고 정말 의아했다. 사람이 새보다 적게 땅을 밟을 수 있을까? 가만히 따져보니 인간이 확실히 새보다 적게 땅을 밟는다. 그 사실에 크게 공감한 바 있다. 그것은 정말 예리한 관찰력과 통찰력의 소산이다. '날개 없이도 그는 항상 하늘에 떠 있고/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엘리베이터에 내려 아파트를 나설 때/ 잠시 땅을 밟을 기회가 있었으나/ 서너 걸음 밟기도 전에 자가용 문이 열리자/ 그는 고층에서 떨어진 공처럼 튀어 들어간다./ 휠체어에 탄 사람처럼 그는 다리 대신 엉덩이로 다닌다./ 발 대신 바퀴가 땅을 밟는다./ 그의 몸무게는 고무타이어를 통해 땅으로 전달된다./ 몸무게는 빠르게 구르다 먼지처럼 흩어진다./ 차에서 내려 사무실에 가기 전에/ 잠시 땅을 밟을 시간이 있었으나/ 서너 걸음 떼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파트에서 땅에 접촉하기란 크게 마음먹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일터에서도 한 가지다. 지금 나의 연구실은 9층에 있다. 학교에 와서 땅을 상대할 일은 거의 없다. 통상 한번 9층에 올라오면 퇴근 때를 제외하고 밖의 땅을 밟을 일이 거의 없다. 시인의 말이 맞음을 또 한 번 확인한다.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이입재라고 이름붙인 주택에 온 순간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오랜만에 땅을 밟고 대문을 거쳐 현관으로 바로 들어가다가 보면 양쪽으로 수공간(水空間)들이 있다. 아파트와는 전혀 다르다.

■'비움의 공간'이 하는 역할

'마당 있는 집'이 보여주는 채움과 비움의 균형은 비움의 공간을 상실한 아파트의 구조와 대비된다. 건축사진가 조명환 제공
이입재에서 인상적인 것은 집 전면에 대응하여 큰 마당이 있고 뒷면에 중정(中庭)형식의 안마당이 있는 것이댜. 건축가 김정관(도반건축사사무소)에 따르면 주택의 전면은 정장의 형태이고 뒷면은 캐주얼복 형태란다. 정장이든 캐주얼복이든 간에 옷이 좀 큰 듯하다. 전면의 형태를 격을 둔 것은 주위의 연립주택이나 빌라에 뒤지지 않도록 건물을 H자형으로 만들어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있는 모양새를 만든 것이라 한다. 특히 거실을 반층 높여 주위가 한눈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H자형 오른쪽 날개를 살펴보면, 1층에서 아래로 반층 내려가면 체력단련실, 주차장, 현관 창고 등이 있다. 1층에서 반층 올라가면 거실, 주방, 식당, 다용도실, 발코니, 데크 등이 있다. H자형 왼쪽날개에 시점을 맞추면. 1층에는 안방이 있다. 2층에 가족실, 방1, 방2가 있다. 가운데 가족실 및 계단실은 양날개 소통구의 역할을 한다. 이 비움의 공간으로 인해 양날개 사이에 상호관입 및 단절이 융통성있게 조절된다.

거실이 높기 때문인지 양기가 돈다. 안방은 반층 아래에 있어서 인지 음기가 돈다. 음양의 조화다. 거실쪽 마당은 왠지 공적 공간인 것 같다. 뒷마당은 사적 공간이다. 뒷마당의 사철나무는 침묵으로 일관하는데 반해 앞마당의 소나무는 조잘거리기 바쁘다. 이것도 음양일까?

각 실마다 독립된 외부공간을 갖고 있는 것이 이 주택의 특징이다. 거실은 데크라는 외부공간을, 방1은 발코니라는 외부공간을, 방2은 옥상마당이라는 외부공간을, 주방/식당, 다용도실은 발코니라는 외부공간을, 현관은 수공간이라는 외부공간을, 안방은 뒤뜰이라는 외부공간을 지니고 있다. 이런 장점이 있음에도 거실/식당과 마당의 연결이 원활하지 못 한 단점이 있다.

현대식 아파트 주거공간들은 최소한의 외부공간마저도 없애고 있는 실정이다. '비움의 공간'들이 아무 역할을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인·결과 식 대응이므로 비움의 공간이 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아파트에는 비움의 공간이 사라진다. 오로지 채움의 공간들만 등장할 뿐이다. 이젠 아파트 유일의 비움의 공간인 발코니도 없앤다. 아파트에서는 채움의 공간들만 인간의 욕망을 은밀히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이 주택에서는 채움과 비움이 어느 정도의 균형을 이루면서 조화를 꾀하고 있다.

■하늘을 접할 통로가 있다는 것

이입재의 내부 전경. 지붕에 난 천창이 '수직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다.
아파트인 경우 비움의 공간을 상실함으로 인해 외부와 내부 사이의 그리고 내부공간들 사이의 관계조절에 실패했다. 새 만큼도 외부공간을 종종거릴 수 없게 되었다. 아니 내부로 들어가면 외부공간과의 신체적 접촉은 정말 어렵게 되었다. 이입재에서는 양날개의 상호관입 및 단절에 융통성이 있다. 거실과 안방 사이의 비움으로 인해 그것으로 두 실 사이의 관계를 조절할 수 있다. 아파트의 경우 거실과 침실들 사이에 빈공간의 상실로 인해 문에 의해서만 오로지 실 간의 관계 조절할 수 있다.

상기 주택의 경우 비움의 공간으로 간접적으로 실 간의 관계를 조절할 수 있으나 아파트의 경우 직접적 관계 조절만 가능하다. 비움의 공간의 상실은 인간관계의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파트에서 손님이 올 경우 거실로 들어온다. 이때 손님이 바깥사람만 친분이 있을 경우, 다른 식구들은 문을 닫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다른 식구들은 내부와의 완전단절을 의미하므로 정말 '방콕'이다. 그러나 상기의 주택의 경우 양날개 가운데 비움의 공간이 있어 구태여 방문을 닫을 필요가 없다. 아파트는 방 하나와 같다. 아무리 방음장치가 잘되어도 한 방처럼 작동한다. 프라이버시 조절은 방문 하나에 의존한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프라이버시가 완벽하지 못함에 대한 불신이 결국 거주자의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상존한다. 상기의 주택은 다르다. 극단적 단절을 피하고 파국적 상황은 멀리한다. 이것은 결국 비움의 공간이 '중간조절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고급아파트 내부인 경우에도 하늘과의 수직커뮤니케이션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택인 경우, 그것이 가능하다. 이입재를 예로 들면 중앙홀의 천창은 그런 역할을 한다. 신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 필요한 건축적 장치이다. 옛날 대청마루에는 그것을 주관하는 성주신이 있었다. 그런 흔적 때문인지 중앙홀은 왠지 성스러워 보였다. 아마 그 흔적과 상부에 설치된 천창 때문이리라. 둘의 시너지 효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거실천정에 있는 LED광선 별자리인 은하수는 하늘의 의미를 신비하게 만들었다. 현관 전면의 양쪽 수공간들과 뒷마당의 바닥분수도 일조한다. 물, 별, 빛 신(神)이 거주하는 곳. 이곳은 우리의 상상이 존재하는 신비스러운 곳이다.

아파트는 성스러운 데가 없다. 규격화, 표준화, 계량화, 채움화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비움의 공간이 없어 신(神)과 신비함이 거주할 공간이 없다. 즉 여유가 없는 곳에서는 상상의 공간이 없고 강퍅한 현실적 공간만 존재할 뿐이다. 여유가 없음에 신도, 신비함도 사라진다.

■'마당 있는 집'은 이제 꿈일까

이 주택이 아직도 성스럽고 신비한 흔적을 간직한 이유는 물론 주택 내부에 거주하는 각종 장소신(場所神)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주택외부의 입지에 거주하는 각종 성스러운 우화 및 동물들에 기인한다. 좌청룡, 우백호, 안산에 얽힌 이야기, 주산에 얽힌 이야기, 조산에 얽힌 이야기, 온통 성스러운 이야기로 주택내외 공간이 가득 차 있다. 주택내외공간에 가득 차있는 이야기들에다 각 개인의 체험과 상상이 덧붙여져 환상성이 있는 공간을 창출했다.

이리하여 주택내외부 공간은 이야기, 체험, 상상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협주곡이었다. 신, 인간, 자연이 만들어 낸 시각적 소리는 집을 둘러싼 풍수형국을 꽉 채운 기운이었다. 누가 우리나라 마을이 마당이 비어 있다했는가. 비어있으나 꽉 차있는 이 공간을 어떻게 표현할까?

때론 호랑이 이야기가 마을에 비움의 공간을 꽉 채우고 때론 마당의 빈 공간을 꽉 채웠다. 마을의 비움을 채우는 이야기는 일 년 내내 달랐다. 비움의 공간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과 24절기에 따라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우화(寓話)로 인해 '반복과 차이'의 공간이었다. 일 년 내내 우화 하나 없는 아파트의 내외부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까? 매일 '반복과 차이'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우리의 옛 모습을 어디서 다시 찾아낼까? 고가(古家)들이 자기네들끼리 은밀하게 '새보다도 땅을 적게 밟는 현대인은 과연 반복과 차이의 새로움을 알까?'라고 수군거리고 있음을 나는 비밀스럽게 들었다.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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