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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책과 세상 <26> 둘리와 하니는 왜 주민등록증을 받았나

논문·전문서적보다 뛰어난 `만화` 숱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01 20:00:40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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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주인공 '둘리'의 주민등록증.
830422-1185600. 1983년 4월 22일 태어난 이 남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여 뭔가 해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다. 인터넷에는 "이 번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는 장난스러운 투정을 담은 글들이 올라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출생과 동시에 부여받는 주민등록번호 중 하나가 분명한 이 번호의 주인공은 '아기공룡 둘리'다.

만화가 김수정이 창조한 만화 캐릭터인 둘리는 만화잡지 '보물섬'에 첫 등장한 날짜를 주민등록번호로 부여받았다. 주소는 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1동 412의 3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힘이 솟아 하늘 끝까지 달리는 하니(만화 '달려라 하니'의 주인공)는 850101-2079518의 주민번호를 갖고 있으며 주소지는 서울 강동구 성내동 562이다.

2008년 4월 1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석간 12면에 얼굴 사진까지 넣은 인사 특종 기사를 실었다. "전자 대기업 하쓰시바전산은, 고요전기와 합병에 의해 곧 탄생할 '하쓰시바·고요 홀딩스'의 초대 사장에 시마 고사쿠(60) 전무를 기용키로 방침을 굳혔다"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25년 간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샐러리맨'이었던 인물이 드디어 사장으로 승진했음을 알렸다. 다음날 마이니치·요미우리·니혼게이자이 등 주요 신문이 시마 사장 내정자 기사를 약력까지 넣어 일제히 후속 보도했다.

히로카네 겐시 작가의 만화 '시마 시리즈'는 첫 등장 이후 3000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다. 시마가 시련을 돌파하며 과장·부장·이사·상무·전무로 승진할 때마다 일본 샐러리맨들은 열광했고, 만화 속에서 사장 자리에 오르며 "사장이 되려면 파벌보다 대의에 따르고 일에 충성"해야 한다는 시마에게서 강의실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실전 처세학을 배웠다고 말한다.

얼마 전 이 지면에서 대하소설을 읽어보길 권한다는 글을 쓴 후 지인들과 자신이 읽은 대하소설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중 한사람이 말했다. "만화로 그 작품들을 읽었죠. '토지'는 오세영의 만화로, '장길산'은 백성민의 만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로 봤어요."

만화 '토지'는 원작의 수많은 인물을 성격에 맞는 모습으로 그려내고 원작을 잘 살렸 고 박경리 선생도 만족해 한 작품이다. 길고 방대한 이야기를 따라가기 벅찬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작품이지만, 어른이 접해도 훌륭한 작품이다. 만화 '장길산'에서 백성민 작가가 그렸던 강산 모습은 수묵화를 보는 듯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와 '삼국지'도 이희재 작가의 만화로 보면 다른 감동이 있다.

만화로 표현하지 못할 게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그 표현 형식은 자유롭다. 우주전쟁이 벌어지는 장면을 영화로 만들려면 제작기법이 발전해야 하고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만화는 무한한 내용을 저렴하게 담을 수 있는 순발력 있는 매체다. 또한 자유로운 상상력과 핵심을 살린 압축적 표현이 강점이다. 잘 만든 좋은 만화는 '대중과의 소통'은 물론 교육에도 효과적이다.

충실한 조사가 뒷받침된 만화는 현학적이고 학문적인 용어로 쓰인 어려운 논문이나 책보다 나을 때가 적지 않다. 허영만 작가의 만화 '식객'은 우리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많은 전문서보다 더 큰 주목을 받으며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자연스레 전해준다.

그러나 편견은 아직도 남아있다. 청와대 자료실에서 만화를 구입한 것을 두고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거나 대학생들이 만화를 본다고 비판하고, 도서관에서 만화를 구입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주장하면서도 아직은 지적 허영의 포로인 것이다. 제작과 유통 환경도 일본 등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미흡하다. 만화에 편견이 있는 사람들조차 오늘도 보고 있을 드라마 '대물', 영화 '이끼', 인기 한류 드라마 '궁'의 원작도 만화다. 만화를 먼저 봤던 이들은 말한다. "원작(만화)의 감동을 제대로 살리지는 못했으나 그런대로 볼만하다"고.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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