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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책과 세상 <29> 돌킨의 크리스마스 편지

24년간 북극에서 온 카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22 20:29:3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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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경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상상의 인물이 산타클로스라고 한다. 불경기라 하더라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사람들이 지갑을 열기 때문일 것이다. 남몰래 선행을 베풀었던 성 니콜라스의 행위에서 유래한 산타클로스는 19세기 크리스마스가 세계에 알려지면서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상상의 인물이 되었다. 스웨덴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해돈 선드블롬이 1931년 코카콜라 광고에 그린 산타클로스 복장은 이제 지구촌 어디서나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현실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산타클로스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으로 크리스마스 카드가 온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무려 24년 동안 자녀들에게 산타클로스의 이름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낸 사람이 있다. 바로 20세기 영미문학의 10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반지의 제왕'의 작가 존 로날드 로웰 톨킨(사진)이다.

'반지의 제왕'은 방대한 이야기를 엮어 나가면서도 세부 사항들에도 정확성을 부여해 독창적 세계의 묘미를 선사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무훈으로 이름을 떨쳤던 영국의 한 부대에 근무했던 톨킨은 가혹한 20세기의 전쟁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판타지를 택했다. 그의 작품 속 가상세계가 얼마나 구체적인지 연대기, 가계도, 언어, 지도까지 있을 정도다. 정말 이 세상 어딘가 호빗족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톨킨에게는 3남 1녀의 자녀가 있었다. '반지의 제왕'도 애초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쓴 작품이었을 만큼 가족을 사랑한 그는, 큰아들 존이 세 살 때(1920년)부터 막내 프리실라가 열네 살이 될 때(1943년)까지 24년간 매년 카드를 보냈다.

존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 중 하나를 읽어보자. "네가 아빠에게 이 할아버지(산타클로스)가 어떻게 생겼고 어디 사는지 물어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널 위해 내 모습과 내가 사는 집을 그려봤단다. 이 그림을 잘 간직해 주렴. 난 이제 옥스퍼드로 떠나려고 한단다. 장난감 꾸러미와 함께 말이야. 이 중에는 네게 줄 선물도 있단다. 북극에는 오늘 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걱정이 된다만, 아무쪼록 제시간에 맞춰 도착하길 기도해야겠구나." 톨킨은 산타와 산타의 집도 직접 그렸다. 추운 북극에 사는 산타 할아버지가 직접 쓴 글과 그림은 손이 시려워 약간 떨면서 그린 것처럼 보이도록. 이 정도라면 어찌 산타를 믿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처음에는 단순히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내용이었으나 아이가 나이가 들면서 카드는 길어져 편지가 되고, 내용은 점점 복잡해져갔다. 게다가 톨킨이 누구인가. 세계 최고 이야기꾼 아닌가. 1925년의 카드에는 산타클로스의 친구인 북극곰이 등장한다. 뭉툭한 글씨로 카드 여백에 자신의 메시지를 쓰고 산타의 흉도 본다. 그 후 눈의 요정, 동굴 속의 곰, 세계 어린이들을 살피느라 너무 바쁜 산타의 비서인 요정 일베레스도 나타났다.

해마다 보내는 카드 봉투에 주소를 적는 일을 맡은 이는 산타의 정원사인 눈사람이었다. 산타가 사는 '북극 크리스마스 집'은 북극곰이 어느 날 실종되거나, 온 집안이 꽁꽁 얼어버리거나, 도깨비들과 전쟁을 벌이기도 하는 등 언제나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진다는 소식을 들으며 톨킨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북극 우표와 소인까지 만들어 카드를 보내며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놀랍고 부럽다.

요즘 아이들은 산타클로스가 실제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일찍 알게 되고, 크리스마스 역시 선물을 주고받거나 신나게 노는 날로 변질돼 간다. 진짜로 산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난하고 힘들어도 굳은 마음으로 견뎌내며 바르게 살아가는 어린이에게 어느 날 산타가 나타나 희망과 용기를 주는 날이, 일 년에 딱 한 번이라도 그런 날이 와준다면 정말 좋겠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책 중 '진짜' 크리스마스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 톨킨이 24년간 아이들에게 보낸 카드를 모아 펴낸 책이다. 한국에는 '북극에서 온 편지(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펴냄)'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그 책을 보고 싶은 때이다.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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