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남석의 연극이야기 <40> 흥분과 불안이 공존했던 국민연극경연대회 ④

만주 이주정책 동조하는 유치진 친일작품 '대추나무'…한편으론 극작술에 놀라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23 20:30:24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944년 연극 '낙화암'공연 무대에서 출연진들의 기념촬영 모습.
1941년 3월 16일 창단된 현대극장은 창립작으로 '흑룡강'을 무대에 올렸다. 두 번째 작품이 극작가 마르셀 파뇰의 원작 '화니'를 함세덕이 개명·번안·각색 한 '흑경정'이었고, 세 번째 작품이 유치진의 '북진대'였다. 이렇게 공연 연보를 채워가던 현대극장은 1942년 9월 제 1회 국민연극경연대회에 참가했다. 참가작은 유치진 작 '대추나무'로, 희곡상에 해당하는 작품상(총독부 정보과장상)을 받았다.

무대는 한 그루의 우람한 대추나무를 사이에 둔 두 농가이다. 한 집은 경주 최씨 세영의 집이다('경주세영'으로 창씨개명). 다른 한 집은 정태근의 집이다('정촌태근'으로 창씨개명). 두 사람은 어려서 친구였으나, 대추나무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다가, 극중 현재에서는 서로를 원수로 여기는 사이가 되었다.

두 집은 울타리를 끊임없이 바꾸어가면서, 대추나무를 자신의 집에 귀속시키려 하고 있고, 이로 인해 분란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두 집안의 아들과 딸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세영의 아들 동욱은 착실하고 근면하며 리더십이 강한 청년으로, 이웃집 태근의 딸인 유희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유희는 동욱을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으며, 아들이 없는 자신의 집에 동욱이 든든한 사위가 되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과는 달리 대추나무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격화되다가, 결국에는 순사가 출동하여 대추나무를 세영의 소유로 판결하고 만다. 이로 인해 태근은 세영(집)에 대한 원한을 격화시키고, 딸과 동욱의 만남도 결사반대하게 된다. 이 무렵 마을(도화동) 지주의 아들인 기손이 평소 유희를 짝사랑하다가 청혼하게 된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유희도 결국에는 마음을 접고 기손에게 시집가기로 한다.

이러한 두 집안의 소유권 갈등과 두 남녀의 애정 혼선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분촌운동(分村運動)이다. 이 시기 일제는 만주 이주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었고, 이 작품은 이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작품의 도입부부터 도화동 주민 50호를 단체로 만주로 이주시키는 정책이 선전되고 있다.

면서기는 이주 대상자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청년 동욱은 친구들과 함께 '비좁고 낙후된' 조선을 떠나 새로운 활동지를 찾겠다는 의욕에 불타는 인물로 설정된다. 한편 이웃에게 대추나무를 빼앗긴 태근도 역시 좁은 마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비좁게 살고 있다고 단정하고 분촌을 자원하게 된다. 동욱의 부친 역시 처음에는 만주 이주를 반대하다가 만주 농산물이 견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난 후, 마음을 바꿔 만주 이주를 적극 지지하게 된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의 이주 결정을 통해 만주 이주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으며, 이러한 당위성은 대추나무를 사이에 둔 조선 민중의 다툼을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 좁은 땅에서 서로 남의 것(농토나 대추나무)을 빼앗아가면서 아옹다옹 사느니, 차라리 드넓은 황야를 개간하며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어떠냐고 유혹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작품은 의심할 바 없이 친일·목적·국책연극으로 이른바 국민연극이다. 작품의 어떤 일부만 친일정책에 동조하는 인상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기조와 작가의 생각까지 만주 이주에 대한 신념으로 무장된 인상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극작술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소를 둘러싼 농촌의 소동과 비슷하면서도, 두 집안의 은원과 해소 그리고 인물들의 성격 창조에서는 더욱 뛰어난 점을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결론은 후대의 학자들을 난감하게 만든다. 당시 유치진의 극작술이 기능적으로는 진보하고 정신적으로는 후퇴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희곡이 지닌 아이러니한 모순이 아닐 수 없었다.

연극평론가·부경대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유치 굳게 믿었는데” 시민 실망감…정부 PT 내용 혹평도
  2. 2서울에 걸으러 갑니다
  3. 3바이든 한국 대통령은 文?…韓 기업 방문해 말실수
  4. 4‘엑스포 쓴 잔’ 尹 대통령…새해 국정동력 확보 험로
  5. 5산은 이전법 외면하는 민주 지도부…“부산 숙원사업 앞장서겠다” 발언 왜?
  6. 6[근교산&그너머] <1358> 전남 영암 월출산
  7. 7부산지역 전세사기 피해 2주 만에 73건 또 늘어
  8. 8새벽 경북 경주서 규모 4.0 지진…흔들림 신고 잇달아
  9. 9뇌물 받고 43억 부실대출…부산 유명 은행 지점장 2심 징역 5년
  10. 10전통시장도 동백플러스 특화거리 만든다
  1. 1‘엑스포 쓴 잔’ 尹 대통령…새해 국정동력 확보 험로
  2. 2산은 이전법 외면하는 민주 지도부…“부산 숙원사업 앞장서겠다” 발언 왜?
  3. 3가덕신공항·북항재개발 흔들림 없다…부산 여야 “지역 현안 차질 없이 추진”(종합)
  4. 4엑스포 불발 불똥 튈라…국힘 지도부, 가덕신공항 등 부산 현안 챙기기
  5. 5민주 “이동관 탄핵안 강행”…30일 본회의 앞두고 여야 전운
  6. 6정치권 ‘이낙연 신당설’에 촉각
  7. 7선거제 개편 갈등 심화에…민주 의원총회 하루 순연
  8. 8부산 여야 ‘엑스포 실패’ 총선 영향 촉각
  9. 9與 공관위, 이르면 내달 중순 출범
  10. 10尹대통령 “균형발전 계속 추진”(종합)
  1. 1부산지역 전세사기 피해 2주 만에 73건 또 늘어
  2. 2전통시장도 동백플러스 특화거리 만든다
  3. 3"HMM 현재 역량으론 세금투입 지속 불가피, 통합으로 경쟁력 키워야"
  4. 4“아쉽지만 부산 브랜드 가치 높여” 마음 다잡는 지역 상공계
  5. 5노후계획도시 재정비 규제 줄인다
  6. 62세 이하 자녀 둔 가구 위해 ‘신생아 특별 공급’ 도입
  7. 7[종합] 한수원·원안위 "경주 지진에 원전·방폐장 모두 안전"
  8. 8'이자 2만%에 나체사진 협박'…악질 사채업자 108명 세무조사
  9. 9삼성전기 박선철·안병기 상무, 부사장으로 승진
  10. 10반토막 홍콩H지수…당국, 은행 ELS 불완전판매 정조준
  1. 1“유치 굳게 믿었는데” 시민 실망감…정부 PT 내용 혹평도
  2. 2새벽 경북 경주서 규모 4.0 지진…흔들림 신고 잇달아
  3. 3뇌물 받고 43억 부실대출…부산 유명 은행 지점장 2심 징역 5년
  4. 4부산 울산 경남 아침 강추위…낮 최고 4~7도
  5. 5유치전서 일군 자산, 부산의 새 성장동력으로
  6. 6박종우 거제시장, '선거법 위반' 1심서 당선무효형…"즉각 항소할 것"
  7. 7공시생 사망 부른 부정청탁…부산시교육청 면접관 항소심도 징역 1년
  8. 8대리송금 부탁하던 총장님, 사실은 카톡피싱범
  9. 93선 박일호 밀양시장 총선 출마…내달 11일 시장 사퇴
  10. 10'1심 무기징역' 정유정, 檢 이어 본인도 항소
  1. 1류현진 연봉 103억원에 캔자스행 유력
  2. 2허재 두 아들 형제매치 & 신·구 연고구단 부산매치
  3. 3정용환 장학회 올해도 축구 꿈나무 14명 후원
  4. 4부산시체육회, 호치민과 스포츠 교류
  5. 5PSG, 음바페 극적인 PK골 무승부
  6. 6울산, '파크골프장계 8학군' 변신 시도
  7. 7손아섭 은퇴선수가 뽑은 올해 최고 선수
  8. 8살아난 허웅, KCC 연패 사슬 끊었다
  9. 9주심 PK 선언에도 “아니다” 실토…골 욕심 많은 호날두의 양심선언
  10. 10세계랭킹 15위 신지애, 파리올림픽 조준
  • 제25회 부산마라톤대회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