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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명품 <44> 하동 섬진강 재첩

"누가 중국산이래… 재첩 생산 제2 부흥기 맞은 지 오래됐어요"

우리나라 국내 재첩 생산의 마지막 보루

최근 강 유량 늘리고 종패 살포 서식지 확대

65억 들여 섬진강 재첩 특화마을 조성

재첩 팩 생산 연간 1억 소득 어민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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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첩국 사이소."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1970년대만 해도 먼동이 희붐하게 터오는 신새벽이면 양철 양동이에 재첩국을 담아 머리에 이고 골목 골목 누비며 재첩국 사라고 목청껏 외쳐대는 아낙네를 만나는 것은 일상적 풍경이었다. 어머니는 행여 재첩국 장수를 놓칠까봐 얼른 냄비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와 재첩국을 사곤 했다. 부추와 풋고추를 잘게 썰어 넣고 끓인 뽀얀 재첩국은 전날 술을 마신 남편의 해장국으로, 자녀들의 든든한 아침식사 메뉴로 그만이었다.

아련한 유년의 추억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어머니의 진한 정성이 깃든 담백하고 시원한 재첩국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추억의 끝자락은 언제나 고즈넉한 섬진강으로 이어진다. 재첩은 한강 이남의 강에 서식하고 있지만 섬진강에서 나는 것을 최고로 쳤기 때문이다. 섬진강은 모래톱이 많아 자연 정수가 잘 되는 까닭에 물이 맑은 데다, 바다와 접한 기수지역이 있어 재첩 서식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각종 개발과 오폐수 유입으로 하천 수질이 크게 오염된 요즘은 섬진강이 전국 재첩 생산의 대부분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 재첩 생산의 보루인 셈이다.

■강에서 자라 '강조개'…하동방언 '갱조개'

경남 하동지역 주민들이 섬진강에서 재첩을 채취하고 있다.
모래가 많은 진흙 바닥에서 서식하는 재첩은 민물조개다. 국내에서는 참재첩,콩재첩, 엷은 재첩, 공주재첩, 점박이재첩 등 6종이 서식하고 있다. 재첩은 강에서 자라 '강조개'라고 부르는데, 하동방언으로는 '갱조개'라고 한다. 성장선이 뚜렷하며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의 껍데기 표면에서 광택이 나는 게 특색이다. 산란기는 6~8월이며, 유생기에는 물 속을 떠다니다 뻘이 섞인 모래 속에 들어가 자란다.

서식지로 가장 알맞은 곳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 모래톱이다. 기수지역에서 잡은 재첩이 맛이 가장 좋아 판매가격도 다른 곳에서 재취한 것에 비해 월등하다. 번식력이 강해 하룻밤 사이에 3대를 본다 해서, 첩을 많이 거느린다는 뜻으로 재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섬진강에 재첩 종패를 살포하고 있는 모습.
재첩만큼 술꾼들의 사랑을 받는 음식도 드물다. 단백질, 칼슘, 지방, 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돼 있는 재첩국이 숙취 해소에 좋기 때문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재첩은 위장을 보호해 주고 간 기능 향상,황달과 당뇨에도 효험이 있다고 소개돼 있다.

1960~70년대만 해도 섬진강에는 물 반 재첩 반이라 할 정도로 재첩이 많았다. 그러나 섬진강 상류에 주암댐과 섬진강댐이 건설되면서 유량이 줄어든 데다, 광양제철소와 여수공단으로 공업용수를 빼내가면서 강바닥이 드러나고 삼각주가 형성되는 등 샛강과 같은 현상을 보이면서 재첩 서식지가 현저하게 감소됐다.

그러다 영산강지방국토관리청이 섬진강에 물을 흘려보내면서 하동군이 상류에 다량의 종패를 살포했고, 그 영향으로 지난 봄부터 악양면 평사리 개치마을 앞까지 서식지가 확대돼 재첩 생산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500리를 흘러내리지만, 재첩이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하동읍 목도리에서 해량동까지이며 전체 서식지는 249.6㏊에 이른다.

■특화마을 조성…재첩팩도 생산

경남 하동군 하동읍에 조성된 섬진강 재첩 특화마을 전경.
재첩의 고장답게 하동군은 재첩 판매를 통한 소득 증대에 전력을 쏟고 있다. '그집에 가면 섬진강 재첩을 맛볼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군내에 모범 음식점 20곳을 지정, 지원하고 있다. 현재 군내에는 72개 업소에서 재첩 음식을 취급하고 있다.

남해고속도로 하동 IC에서 국도 19호선을 따라 하동 쪽으로 가다 보면 하동군청 진입로 앞 도로 양쪽에 조성된 '하동 섬진강 재첩 특화마을'을 볼 수 있다. 군은 65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지난해 말 이곳 1만273㎡ 부지에 식당 5곳과 가공공장, 관광휴게실, 전망대, 주차장 등을 갖춘 재첩 모양의 건물을 지었다.

생산자들의 상품 개발 노력도 활발하다. 하동군 하동읍 비파리에서 '섬진강 신비 재첩 영어조합법인'을 경영하고 있는 이기완(63) 씨는 지난 1997년 최초로 재첩팩을 생산해 연간 1억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섬진강이 우리나라 재첩 생산의 본거지가 되면서 원산지 둔갑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중국산 재첩이 삼진강 재첩으로 둔갑돼 시중에 판매된 것이 대표적이다. 하동군은 이후 원산지 표시 위반행위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이는 등 섬진강 재첩 보호에 세심한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섬진강 하구에는 재첩가공 공장이 50여곳 가동 중이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재첩 상품은 팩과 국물을 담은 18ℓ통말이다. 가격은 500g 팩 하나에 4000원, 통말은 15만 원에 거래된다. 가공공장을 운영하면서 직접 재첩을 양식하기도 한다. 양식한다고 해서 먹이감을 넣어준다거나 살균제 등 약품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종패를 섬진강에 뿌리고 각자 구역을 관리하는 데 그친다.

종패는 10월에 뿌리고 이듬해 수확을 하는데, 종패의 규격은 1.5㎝ 이상 되어야 하고 규격에 미달하는 종패는 다시 방사한다. 재첩은 상강을 지나면 모래 속 1m 이상 깊숙히 들어가 겨울을 보낸 뒤 봄이 되면 서서히 기어 올라온다.

강물이 따뜻해지면 재첩 채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작업은 원동기를 장착한 어선이나 거랭이(재첩 손틀방)를 이용한 수작업으로 한다. 재첩 품질은 거랭이로 잡은 것이 더 좋고 값도 비싸다. 원동기로 잡은 것은 채취작업 중에 껍질이 부서지는 등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 김상훈 하동군 환경수산과 과장

- "최근 섬진강 재첩 살아나자 원산지 위반 행위 다시 활개"

"섬진강 재첩의 명성 보존을 위해선 안정적 공급체계 구축과 유통질서 확립, 브랜드 가치 제고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원산지 표시를 위반한 재첩을 색출해 유통질서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하동군 김상훈 환경수산과장(사진)은 요즘 섬진강 재첩으로 둔갑한 타지역 재첩 색출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산 재첩이 섬진강 재첩으로 둔갑해 시중에서 팔리는 바람에 하동지역 재첩 생산자들이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섬진강 재첩을 타지역 재첩과 차별화하기 위해 지리적 표시제 등록을 신청했다고 전했다.

"오랜 세월 섬진강 재첩이 전국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것은 청정한 섬진강의 물과 좋은 서식여건 때문이죠. 특히 섬진강 기수지역에서 잡은 재첩은 맛과 향이 탁월해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재첩 껍데기째 우려낸 국물 맛은 담백하고 시원해 애주가들이 선호하는 해장국입니다."

재첩 서식지 확대와 수질 등 서식환경 개선도 그가 늘상 머리에 담아두고 있는 과제다. 영산강지방국토관리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 섬진강에 재첩이 잘 서식할 수 있는 유량이 공급되도록 애쓰는 것도 그래서다.

하동군은 재첩 진국을 맛볼 수 있는 전문식당도 만들어 운영에 들어갔다. 하동읍 주변에 조성한 '하동 섬진강 재첩 특화마을'이 그곳이다. 또 섬진강 재첩을 취급하는 모범 음식점 20곳을 지정해 특별관리하고 있다.

그는 "저의 직을 걸고 섬진강 재첩의 명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위반업소를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정기관의 지원과 단속만으로는 섬진강 재첩의 명성을 유지할 수 없다며 그는 재첩 생산·판매자와 관련 요식업 종사자들의 인식 전환을 통한 자율적인 품질 관리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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