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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의 연극이야기 <42> 새로운 시작

식민시대 극단 음력 설에 새작품 발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1-06 19:38:2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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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전 최고 배우로 이름을 날린 황철의 월북 후 중년의 모습.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때면, 남다른 계획을 세우곤 한다. '올해는 무엇을 하겠다!'로 시작되는 신년 계획을 수립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정리하기 위해서 골똘히 자신과 주변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물론 용두사미나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새해의 시작을 인생의 또 다른 시작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다분하다.

연극계는 어떠했을까. 식민지 시대의 연극계도 새로운 시작을 중시했다. 다만 지금과 차이를 보이는 것은, 그 시작을 태양력 1월 1일이 아닌 음력 1월 1일로 삼는 경우가 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흔히 '구정'으로 불리던 음력 1월 1일에는 다양한 행사(공연)가 마련되곤 했다. 특히 유명 극단들은 이 날을 기해 대작, 신작, 야심작, 기획작 등을 무대에 발표했다.

1936년 1월 24일(구정) 동양극장은 대대적인 야심작을 발표했다. '춘향전'. 일제 강점기의 대중극단은 극단 운영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 작품에 도전하곤 했다. 대중극단치고 이 작품을 꿈꾸지 않은 극단이 없었으며, 그중에서도 인기 극단이라면 이 작품에 한 번씩 도전했다.

당시 캐스팅은 호화 캐스팅이었다. 춘향 역에 차홍녀. 비록 그녀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서 '홍도' 역을 맡기 이전이었지만, 이미 그 가능성을 높게 드리우던 시절이었다. 상대역 몽룡 역은 해방 이전 최고의 배우로 꼽히는 황철. 향단 역은 1940년대 최고의 여배우였다가 월북하여 인민배우의 호칭을 받은 김선영. 방자 역은 황철의 라이벌이었던 심영이었다. 그들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까지 조선의 대중극을 대표하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청춘좌는 이러한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춘향전'을 기획했는데, 이는 지금으로 하면 '설맞이 특집 공연' 내지는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34년 신무대는 구정 기념 공연이라는 광고를 내보낸 바 있다. 1934년 구정은 2월 14일이었는데, 당시 신무대는 이 시점부터 '춘기(春期)'라고 명명하고 새로운 시즌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자체 홍보하고 있다. 공연 작품은 가정대비극 이운방 작 '한만흔날'(전2막), 홍개화 작 '못오시는 아버지'(전1막), 포복졸도의 대희극 나동기 작 '엉터리 딱터'(전 1막) 였다. 희극류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유쾌하게 계획한 행사였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1932년에 창단된 태양극장은 아예 음력 설에 맞추어 개막 공연을 올리기로 예정하고 있었다. 당시 신문기사를 참조하면 "박승희 씨 이하 전 토월회 회원을 중심으로 태양극장이라는 극단이 새로 조직되어서 오는 음력 정월 초하루(2월6일)부터 시내 종로사정목 미나도좌에서 상설적으로 정기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보도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창단일은 2월 9일이었으므로, 다소 차이를 보인다. 주목해야 할 점은 태양극장이 일부로 음력 설에 맞추어 창단을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음력 설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시작 기점으로 유용한 날이었다.

현재는 어떠할까. 1월에 접어들면 회사는 시무식을 하고, 학교는 신년교례회를 연다. 어떤 집은 이 날 세배를 하고 차례를 지내고 덕담을 듣는다. 음력 설을 지내는 사람들도 해맞이를 하거나 새로운 결심을 하거나 무언가를 정리한다. 과거부터 우리의 연극 역시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왔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날인만큼, 광고 효과로서의 시작뿐만 아니라, 콘텐츠로서의 시작도 함께 전달해주는 공연이 없었다는 점이다. 연극이 곧 삶이라고 누군가 말했고, 또 그 말을 대체로 신봉한다면, 우리는 연극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가상 체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러면 한결 수월하게 우리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연극평론가·부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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