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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27> 안창마을

마을 전체가 공적 공간, 그 속엔 진한 삶의 냄새가 …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1-17 19:28:50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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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로같은 골목길
- 외지인 눈에는 무질서로 보이지만 현지인에게는 불편함 없는 질서

- 담도 지붕도 화장실도 너의 것 나의 것 아닌 우리 모두의 것 인식
- 함께 하고 나눠 쓰고 공유문화의 '둥지'

- 최근 떠나는 사람들, 외지인 유입 늘면서 주고 받는 마음 퇴색
- 경계성 확산 안타까움

해방 전 소수의 토굴이 도시외곽에 있었다. 그러다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혼란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부산 서울 등의 대도시로 유입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해방촌 판자촌 등이 생겨났다.

어디인지 경계는 알 수 없지만 부산 동구 범일6동 및 부산진구 범천2동이 안창마을 일원 속으로 들어간다. 수정산 북측 160~250m 고지대에 입지한 자연발생 밀집취락이다. 수정산(315m), 엄광산(503m) 등에 의해 둘러싸여 외곽지역과는 구분이 된다. 서쪽으로 동의대, 동쪽 아랫부분은 동구 기성 시가지가 있다. 동구청으로부터 약1.7㎞ 이격되어 있으며 기존 주택지와는 약 750m 떨어져 있다.

깜짝 놀랐다. 부산 시내에 이렇게 열악한 곳이 있는 줄은. 그런데다 벽면 곳곳에 그린 벽화의 색깔은 퇴색돼 가고 있었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바닥면이 고르지 않았다. 게다가 길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불허다. 갑자기 막다른 골목이 되기도 하고 없었던 길이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완전히 미로게임이다. 집을 찾기 위해 예민한 본능이 필요하다. 그곳에 사는 주민은 단번에 자기 집을 찾지만 외지인은 단숨에 길찾기가 어렵다. 그에게는 미로와 같다. 외지인에게는 전체가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현지인은 무질서가 질서, 질서가 무질서로 바뀌는 지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안다.

■마을의 평상이 하는 역할

하늘에서 본 안창마을. 마을은 미로처럼 얽혀있지만 무질서 속에 질서, 질서 속에 무질서가 공존하는 독특한 모양새가 있다. 건축사진가 조명환 제공
우리가 이야기하는 질서는 다음과 같다. 외부→반외부(半外部)→반내부(半內部)→내부, 공적 공간→반공적(半公的) 공간→반사적(半私的) 공간→사적 공간, 큰 규모 그룹→중간규모 그룹→소규모 그룹, 시끄러운 공간→완충 공간→조용한 공간 등의 순으로 위계적 배열이다. 외부와 내부, 공적과 사적, 큰 규모와 소규모 등에서는 반드시 완충공간이 있다. 건축물에 있어서 로비가 완충공간이 되어 안쪽으로 내부→사적→조용한 공간 등이, 바깥쪽으로 외부→공적 공간→시끄러운 공간 등이 배열된다.

안창마을은 이러한 위계질서에 따르는가? 따르지 않는다. 마을 전체가 공유(公有), 유동(流動)의 공간이므로 별도의 공적, 사적, 완충공간이라는 건축적 장치가 없었다. 평상(平床)의 역할이 지대했다. 평상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이것이 사적인 공간이 되기도, 공적인 공간이 되기도 했다. 평상을 마당과 마당에 걸쳐 두기도하고 뒷마당의 은밀한 곳에 두기도 했다. 지극히 공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과연 사적 공간, 공적 공간, 반사적 공간, 반공적 공간이 우리나라 전통적 마을에서 있는가? 시인 문태준은 그의 시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서 이러한 질서관계를 단번에 허물어트린다. 이 시는 단숨에 공적이니 사적이니 하는 시비를 잠재운다.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 갔다/ 붐비는 국숫집은 삼거리 슈퍼 같다/ 평상에 마주 앉은 사람들/세월 넘어온 친정 오빠를 서로 만난 것 같다/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쯧쯧쯧 쯧쯧쯧쯧./손이 손을 잡는 말/눈이 눈을 쓸어주는 말/병실에서 온 사람도 있다/식당일 손 놓고 온 사람도 있다/마주 앉은 사람보다 먼저 더 서럽다/세상에 이런 짧은 말이 있어서/세상에 이런 깊은 말이 있어서/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쯧쯧쯧쯧 쯧쯧쯧쯧…'

■마을에 스며 있는 공유의 문화

높낮이가 서로 다른 집들이 들어서 있는 전경.
저 집들이 과연 형태, 기능, 일조, 통풍, 채광을 고려하고 지었을까. 집들이 워낙 다닥다닥 붙어 있어 일조, 통풍, 채광이 제대로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런 배열이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거의 높낮이가 전부 달라 일조, 통풍, 채광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담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위상기하학방식(도형의 위상적 성질을 연구하는 기하학: 근접 분리 질서 폐합 연속 관계를 다룸)의 배치가 중요 역할을 한다. 특히 지붕, 마당 등을 공유하는 경우도 많았다. 기물도 서로 빌려 주곤 하였다. 심지어 환갑, 김장을 담그는 날, 제사, 혼인날은 온동네 잔치였다. 여기에 무슨 공적, 반공적, 반사적, 사적의 위계구분이 존재하였겠는가? 특히 장례식 날은 당사자의 집, 앞집, 옆집, 뒷집 등등이 참여하는 마을 공동의 행사였다.

급히 화장실 갈 일이 생겼다. 예상 외로 공중 화장실은 근처에 있었다. 재래식 변소다. 어린 시절 많이 보던 장면임에도 눈길이 그것으로 가질 않는다. 그럼에도 마을은 '거시기'한 것조차도 공유하고 있었던 게다.

무척 좁아 보이는 방에서 3~5명이 너끈히 먹고 잔다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공유성 문화 덕이다. 개인의 이불, 화장실, 평상 등의 공유, 마을의 대부분 것들이 공유되어 있는 상태다.

■공유의 문화 속에 살아있는 차이

시인 최서림은 '둥지'를 통해 우리 마을의 공유문화를 전한다.'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집에는 나름의 역사가 꼬물거리고 있듯/ 그 집만의 냄새가 우물처럼 고여 있다/ 집의 냄새는 사람의 냄새다, 아니 삶이 응축된 냄새다…'.

마을의 각 집에는 삶이 응축된 냄새가 배어있다. 안창마을에서는 각 집 삶의 냄새가 혼합되어 단일의 냄새가 난다. 마을 전체의 냄새다. 이런 것들이 마을이 갖는 공유성의 기본이 된다. 말이 마을이지 한 집과 같이 움직인다. 옆집과 같이 쓰는 담, 지붕, 화장실, 평상 등. 마을이 하나의 조각보처럼 얼기설기 섞여 있다. 오늘날 불통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안창마을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나누어 씀으로 인해 생겨나는 소통의(유동의) 정신이다. 온 마을의 냄새가 뒤섞여 하나의 냄새를 이루는 것처럼 집도 사람도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그럼에도 시인 최서림의 말처럼 집끼리 차이가 있다. 그러나 달을 공유하는 것처럼 마을전체가 공유하는 것이 있다 '모든 집에는/제 각각의 역사가 있다/ 나무들처럼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겨우 보이는 사람들의 역사가 숨어있다// …/지하방까지 따라 들어온 저 달은 누구에게나 둥글다'

온 마을의 냄새가 뒤섞여 하나의 냄새를 이루나 모든 집에는 제 각각 역사가 있다. 그러나 그 역사란 것이 숨어있어 나무들처럼 자세히 들여다봐야지만 겨우 보인다. 숨은 역사는 혼자만의 역사가 아니다. 마을의 모든 집들이 각각의 집의 역사를 공유한다. 그래서 지하방까지 따라들어 온 저 달은 누구에게나 둥글지만 각각의 집의 역사를 얼기설기 나누어 가진다.

■불통의 도시공간이 여기서 배워야 할 것

안창마을은 우리나라의 일반적 마을처럼 위계와 질서가 잡혀 있는 일종의 고정화된 마을이 아니다. 안창마을은 거주하는 사람들 중 태반이 돈을 벌면 마을을 떠나려고 한다. 이 사실에 주목할 때, 마을 자체에 대한 애착이 상실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처에 있는 동의대 구성원들에게 생계유지를 위해 오리고기를 요리하여 파는 집이 많아 주민들의 대학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에 따라 상당히 개방적이다. 또한 동의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와 커뮤니케이션이 잦아 현실에 대한 의문이나 정치판의 이야기를 학생들을 통해 쉽게 들을 수 있다.

안창마을은 수평적 세계관을 갖는다. 마을을 지배할 지배계급이 없다. 주민들은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 대학생들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안창마을은 현실적이기 때문에 원인-결과를 일회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물고기가 필요하니 잡는다는 식의 현실성을 띤다. 안창마을은 형이상학적인 것이 확실해지면 마을의 질서, 구조가 명확해질 것이다.

현재 안창마을은 외지의 영세인들이 자꾸 유입해 오고 돈을 번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고 있다. 평상에서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점차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은 공유성, 유동성이 있던 집들 사이의 너와 나의 경계선이 고정화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린다. 고정화는 우리 전통마을의 입장에서 보면 치명적이다. 마을의 전통재활성화에 있어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건축적 측면에서 공유성, 유동성만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공적 영역에서 반공적 영역으로, 사적 영역에서 반사적 영역으로 유동성 있게 전환하는 점, 즉 공유성, 유동성을 통해 무질서가 질서가 되고 질서가 무질서가 되는 지점 찾기는 반드시 배워야 할 사항이다.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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