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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은·허헌선 부부의
'색동저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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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주의 그림책 '설빔' |
"명절날 나는 어머니 아버지 따라 /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큰집으로 가면"
백석 시인의 시 '여우난골족'을 현대어로 풀어 쓰고 홍성찬 화백의 그림으로 꾸민 그림책 '여우난골족'(창비 펴냄) 첫 구절이다. 평안도가 고향인 백석 시인이 일가친척이 모여 풍성하고 떠들썩한 설날 풍경을 어린이 시점에서 자연스럽고 진실하게 담아낸 시 '여우난골족'은, 한 편의 옛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마음이 푸근하게 한다. 설을 앞둔 즈음에는 이 책이 저절로 생각난다.
우리 민족 최대명절, 민족의 대이동 등 설을 수식하는 말들은 거창하지만 실상 그 의미는 세월이 갈수록 퇴색돼 간다. 황금연휴로 여행을 가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아이들에게는 다른 공휴일과 별다를 바 없는 날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대로라면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와 풍습이 사라져 먼 훗날 민속박물관에 '명절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박제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림책 '여우난골족'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세대와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우리의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배현주 씨의 그림책 '설빔'(사계절 펴냄)은 '여자아이 고운 옷' '남자아이 고운 옷' 두 권으로,어린이들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책 속 아이들은 새해 첫날 아침 혼자 힘으로 설빔을 입는다. 남자아이의 방을 열어보자. "의걸이장 문을 열고 설빔을 꺼내어요. 엄마가 지어주신 새 옷 이에요. 버선, 바지, 저고리, 배자, 까치두루마기, 전복, 흠흠! 옷에서 엄마 냄새가 나요. 언제 맡아도 기분 좋은 우리 엄마 냄새!" 아이를 위해 설빔을 지은 어머니의 정성과 한복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아이가 옷을 입는 장면 설명도 재미있다. "우와 크다! 한 사람 더 들어와도 되겠어. 훌렁~ 으앗!(한복 바지가 흘러내렸다. 아이는 다시 바지를 차근차근 입는다.) 허리폭을 잡아서 절쪽으로 접은 다음, 흘러내리지 않게 허리띠를 묶어요. 바짓부리는 모아 잡고 바깥으로 돌려서 안쪽 복사뼈에 끝을 대 놓고 대님을 두 번 감아 매듭짓지요. 누구야 누구? 이렇게 혼자서도 바지 잘 입는 사람이!"
아이들은 책에서 버선의 오른쪽 왼쪽을 살펴보다가 수눅(버선 따위의 꿰맨 솔기)을 보며 구별한 뒤 신다가 뒤로 꽈당 넘어지기도 하고, 저고리를 거꾸로 입었다가 바로 입고, 끙끙대며 고름을 매기도 하고, 머리 단장도 혼자서 해낸다. 한복은 우리 고유 의상이니까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없지만, 이렇게 아이들에게 한복을 친근하게 설명하는 책도 없을 것이다.
어린이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따분하고 어렵게 느끼는 것이 안타까워 해학적인 발상으로 전통문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무돌 씨의 '비밀스런 한복나라'(노란돼지 펴냄)도 있다. 쌍둥이인 남녀 아이가 옷장 속 한복나라에 가서 우리 옷의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내용이다. 인형 전시회 '엄마 어렸을 적엔'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이승은·허헌선 부부의 인형으로 만든 따뜻한 사진 그림책 '색동저고리'(파랑새 펴냄)도 감동적이다. 삯바느질을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가난한 어머니는 남은 자투리 천을 곱게 이어 색동저고리를 만들어주는데, 작가의 상상이 아름답다.
명절과 한복 등 우리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그림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한복과 방안 풍경까지 그린 그림을 보면 '이건 중노동이야!'라는 생각이 들만큼 세밀하고 아름답다. 이 책들을 함께 살펴보던 화가이자 그림책 작가 박경효 씨는 "사진은 보여주지만 그림은 읽어주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아이들에게 전통문화를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전해주는 이 책들이 고맙다. 고향 가는 길 도로가 막히는 차 안에서 보아도 좋고, 일가친척끼리 함께 보아도 좋을 책들이다.
부작용도 미리 밝힌다. 아이가 책 속의 한복을 당장 사달라고 조를 수가 있다. 수년간 조카와 지인의 아이들에게 이 책들을 선물해온 필자가 겪은 일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전통의 세계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