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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책과 세상 <39> 원작을 다시 생각한다

명작 소설 뛰어넘는 드라마, 망치는 드라마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3-09 21:06:00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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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 '오만과 편견'이 국내에 상영되었을 때다. 영국인들이 세익스피어만큼이나 사랑한다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1813년 발표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국내에서 다시 한 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국내 출판사 20여 곳에서 출간된 그 소설이 줄지어 서점에 진열되고, 그 중 판매 1위가 수년에 걸쳐 오역을 바로잡은 책보다 영화 포스터를 책표지로 쓴 책이었던 것도 화제가 되었다. 동기가 어찌 되었거나 영화를 보고 난 뒤, 원작소설을 읽는 것도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다.

필자는 긴 작품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영화나 드라마의 흐름에 맞추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한국인이라면 문학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그 제목을 아는 고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과연 읽어낼 수 있을까 망설이는 지인에게 TV드라마를 보면서 책을 같이 읽어보라고 권해본 적이 있다.

나 역시 '토지'를 다시 읽으면서 얄궂게도 KBS에서 1987년 방영했던 드라마 '토지'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작품 속 용이 역을 말은 배우 임동진의 대사가 귀에 쟁쟁했고, 월선의 슬픔은 배우 선우은숙의 눈빛으로, 서희의 품위와 기상은 최수지의 모습으로 살아났다.

원작을 생생히 보여주는 명품 드라마들이 있다. KBS 역사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을 방영할 때, 원작인 월탄 박종화의 '세종대왕'을 마음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원작의 품격을 잃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에 감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김탁환의 소설 '불멸의 이순신'과 김훈의 '칼의 노래'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도 그랬다.

이런 작업은 원작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최초의 창작 뒤에 이어지는 2차 작업은 최소한 원작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1954년 발표되었던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2002년에 이르러서야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로 볼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스필버그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명감독들이 '반지의 제왕'를 수 십년 동안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작품이 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감독들이 원작을 스크린에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제작기법이 발전하길 기다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작품을 이야기하는 건 최근 방영중인 SBS 드라마 '신기생뎐'을 보면서 느낀 허탈감 때문이다. 그 동안 높은 시청률을 보여주었으나 작품마다 막장드라마라는 비판을 받던 임성한 작가의 이 드라마는 이현수 씨의 소설 '신기생뎐'(문학동네·2005년)을 원작으로 한다. 부용각에서 오마담과 부엌어멈 타박네, 그리고 춤기생 노래기생 꽃기생이 각자 삶을 씻김굿하듯 풀어내는 이 소설은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힌 뒤 우리 삶의 변방으로 밀려난 채 사라진 세계를 문학으로 복원해내고 있다.

기생의 사랑의 형식과 비원이 서린 가무를 통해 그들의 삶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이현수의 '신기생뎐'은 2005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이 드라마를 보면서 불편함과 허탈감으로 더럽혀지는 것 같아 우울하다. 제목이 다르든지, 부용각이 아니든지, 오마담이 나오지 말든지 했더라면 그냥 드라마려니 하겠다. 드라마가 막장이든 아니든 그게 뭐 그다지 큰일이겠는가. 다만 좋은 소설에 뒤늦게 황칠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문학 작품은 작가가 홀로 긴 시간을 견디어내며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글에 담아내는 것이다. 오죽하면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한 생명이 태어나는 산고에 비유할까. 절대고독의 시공간을 온 몸과 마음으로 밀고 헤쳐나가 만들어낸 처음의 그 작품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아쉽다.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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