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세부터 6개 건설 기업서 CEO
- IMF때 실직자 되며 산막 들어가
- 젊은 날 교만 깨닫고 호텔업 도전
- 원주서 자연 속 열린 배움터 운영
- 청춘합창단은 UN무대 오르는 등
- 현역 활동 계속하며 일·삶 하나로
◇ 권대욱의 인생이모작 귀띔
- 사는 일과 일하는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10월의 비 내리는 강원도 원주. 나전칠기의 대가 김영준 선생과 함께 숲길을 따라 들어선 계곡에는 산막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곳은 한 자유인의 거처이자, 사람들이 ‘월든’이라 부르는 곳이다. 자연 속에 머물면서도 도시에서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는 사람, 그와의 만남에 마음이 설랬다. 산막스쿨, 청춘합창단, 그리고 최근 티쿤글로벌 회장 취임까지, 그의 행보는 여전히 거침이 없다. 어떻게 그는 이렇게 ‘영원한 현역’으로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을까.
-이 산막은 어떤 곳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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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대욱 회장이 10년간 사장으로 재직한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에서 퇴임한 2018년 9월 청춘합창단 단원들이 퇴임을 축하하고 있다. |
▶기공운동을 하는 아내가 28년 전 도반들과 함께 찾아낸 곳입니다. 기를 수련하던 분들이 가꾼 터전이라 그런지, 서기가 가득하지요. 우리 부부는 서울에 살지만 일주일에 세 번은 이곳에 와 밭을 일굽니다. 저에게는 ‘4도3촌’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곳이지요. 요즘은 산막스쿨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산막스쿨은 어떤 곳입니까?
▶선생과 학생이 따로 없는 열린 배움터입니다. 인생의 즐거움을 아는 인생이모작 세대가 모여 자연을 느끼며 대화하고 노래하고 작은 공연도 엽니다. 지금까지 기업인 예술가 은퇴자 국회의원 등 2000명 정도 다녀갔습니다. 최근에는 ‘밥포럼’의 김인식 대표가 합류해 더 활기가 넘칩니다.
이번에 만난 이는 최근 티쿤글로벌 회장으로 취임한 권대욱(74) 청춘합창단 명예단장. 그는 35세에 한보건설 사장으로 출발해 유원종합건설 등 6개의 건설사를 이끌었고, 두 개의 호텔과 휴넷 등 유수 기업의 CEO를 지냈다. 직업이 ‘사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CEO로 살아오셨군요.
▶1986년 35세에 시작해 지금까지 35년간 사장으로 살았습니다. 성공도 실패도 많았죠. 한보에너지 극동건설 효명건설, 그리고 호텔까지 말 그대로 워크홀릭이었습니다.
-실패가 많았다는 건 어떤 뜻인가요?
▶IMF 외환위기로 회사를 잃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쫓겨나다시피 실직자가 되었죠.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시작한 창업도 실패했습니다. 47세, 한창 혈기 넘칠 때였기에 그 좌절은 뼈아팠습니다. 분하고 괴로운 나머지 불면의 밤이 지속되었습니다.
-어떻게 다시 일어나셨나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이 산막으로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인연을 끊고 싶었죠. 하지만 3년쯤 지나니 제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젊은 날의 교만을 깨달았고, 경쟁에서 무조건 이기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날들, 치열했다지만 알고 보면 옹졸했던 젊은 날을 반성하게 되더군요. 깊은 산중에서 비로소 세상의 이치를 보게 된 겁니다.
빌 게이츠가 ‘생각의 속도’에서 “성공은 형편없는 스승이다. 인간은 오히려 실패를 통해 단련된다”고 했듯, 그도 실패 속에서 스스로 단련됐다. 고요한 산막은 그를 더욱 성숙한 인간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이었다. 그러던 중 오랜 친구였던 아주그룹 문규영 회장으로부터‘호텔서교 하얏트 리젠시 제주’의 사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다 한다.
-회장님의 ‘열사의 땅’ 중동지역에서의 활약은 건설업계의 알려진 이야기라지만, 호텔업으로의 전환은 의외의 행보입니다.
▶맞습니다. 건설업은 역동적이지만 호텔업은 섬세하고 조용한 가운데 약간의 떨림이 있는 곳이죠. 오시는 고객들은 계절 따라 달라요. 그러나 저는 두 세계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호텔을 알기 위해 매우 노력한 뒤에는 건설에서 배운 조직관리와 실행력을 호텔 경영에 접목했죠. 그 덕분에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호텔 사장으로 경력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자기관리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요즘 직장인들이 사표를 품고 산다지만, 전문경영인의 중압감은 차원이 다릅니다. 성과와 주주의 기대 사이에서 오는 압박은 상상 이상이에요. 저는 ‘큰 생각으로 작은 걱정을 덮는 법’을 배웠습니다. 늘 더 큰 화두를 세워 잔파도를 넘는 것이죠. 그리고 꿈을 꾸되, 이룬 꿈에 머물지 않는 것. 이것이 저의 방식이었습니다.
-많은 조직의 리더로서 활동해오셨는데 리더십의 본질은 무엇이던가요?
▶리더십은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입니다. 리더는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사람인데, 이때 사람들의 마음을 살 줄 알아야 하죠. 마음이 통하면 100만 원도 흔쾌히 내놓지만, 통하지 않으면 1원도 아깝죠. 상대의 절실함을 읽고 그에 부응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 이것이 진짜 리더십입니다.
-지난날을 회고할 때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단연 청춘합창단 활동입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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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6월 청춘합창단이 뉴욕 유엔본부에서 공연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
▶청춘합창단 활동은 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은 사건입니다. 저는 2011년 KBS ‘남자의 자격’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3개월의 방송이 끝난 뒤에도 계속하자고 최규용 박사와 의기투합했죠. 그리고는 신나게 활동했는데, 그러던 중 저는 단순한 취미활동으로 그치지 않고, ‘UN에서 노래하자’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2015년 6월 15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공식 행사에서 노인학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주제로 합창을 했습니다.
-한 나라의 조그만 합창 동호회가 UN 공식 이사회에 가서 합창을 하다니 정말 놀랍군요.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죠. 유엔과의 협의, 8일간의 여행비, 평균 65세 단원들의 의견 조율까지. 하지만 오준 유엔대사님도 도와주셨고, 결국 멋있게 해냈습니다. 언론에서 인터뷰도 쇄도했고 그 후 세계합창대회 우승, 카네기홀 공연까지 이어졌죠. 이번 달 22일 그리스와 터키 순회공연도 앞두고 있습니다.
-기업 경영인으로서 엄청난 외도를 하셨군요.
▶처음에 KBS 청춘합창단에 나가기를 생각했을 때 저는 더 이상 직진하는 인생은 곤란하니, 삶을 향유하면서 일할 것을 결심했죠. 저는 일과 삶의 균형이란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 두 개가 통합되는 생활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그러면 일과 삶이 더 의미 있게 되는 거죠.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호텔 측에 합창단 활동이 호텔 홍보에 도움된다고 설득해서 실행했던 겁니다. 그러니 결국 호텔 측이나 저에게 다 도움이 되었지요. 그러니 ‘외도’가 아니라 ‘확장’이었죠.
-티쿤글로벌은 어떤 회사입니까?
▶소상공인의 해외 직판을 돕는 플랫폼 기업입니다. 쿠팡이나 네이버와 달리, 개별 소상공인이 주인공이 되도록 설계했습니다. 현재 10만 개의 업체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창업가 정신을 키우는 아카데미도 준비 중입니다.
-부산에도 소상공인이 많습니다.
▶청춘합창단은 평균 연령 69세의 인생 2막 세대입니다. 기업의 초청 공연에 가면 거마비를 받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연은 봉사로 진행합니다. 부산에서 소상공인 행사를 여신다면 언제든 돕겠습니다. 저는 티쿤에서도 무보수 명예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산막생활, 합창단, 사업경영 이 세 가지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제 인생의 세 축입니다.
그의 삶은 성공보다 의미를 좇은 여정이었다. 기업 경영의 치열한 전선에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 일과 삶의 조화로운 통합을 깨달았다. 일과 음악, 경영과 봉사, 개인과 사회의 경계가 녹아든 그의 삶은 음악 동호회를 넘어 삶의 질서를 다시 짜는 예술 행위였던 것 같다.
-풍요로운 70대를 사시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70대는 닫지 말고 열어야 합니다. 적게 바라고 많이 기여하는 삶이 오래갑니다. 세상에 따뜻한 손을 내밀 줄 아는 은퇴자가 많아질수록 사회는 더 단단해집니다. 삶이 무거울수록 젊은이들은 가슴에 꿈을 품어야 한다면, 70대는 세월이 깊어질수록 세상에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요즘 중·장년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행복이 최우선입니다. 그런데 행복하려면 죽을 때까지 일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아무 일이 아닌 ‘좋아하는 일’ ‘사회적으로 보람 있는 일’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겹치는 교차점이 바로 인생의 다음 경지입니다.
가을비 내리는 원주의 숲속에서 만난 그는, 물러남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사람이었다. 기업의 전선에서 승패를 거듭하고, 산막에서 교만을 비우며, 다시 세상으로 나와 사람을 노래한 그의 여정은 성공의 서사가 아닌 성숙의 서사였다. 그는 일과 삶, 경영과 예술, 성취와 봉사의 경계를 허물며 ‘사는 일과 일하는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그의 인생은 마치 한 편의 합창곡 같다. 산막의 고요가 저음이라면, 청춘합창단의 노래는 고음이고, 티쿤글로벌의 도전은 화음이다. 그리고 그 모든 울림은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진정한 현역은 나이를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의미를 계속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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