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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강서구 금수현 음악의 거리 조형물의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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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이자 교육자인 금수현을 기리는 음악의 거리 조형물의 관리 부실로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부산 강서구 대저로에 금수현을 테마로 한 음악의 거리가 있다. 강서구는 부산과 경남의 음악문화 발전 등에 공헌한 금수현을 기리기 위해 2014년 대상초등학교와 옛 구포다리 사이 길이 570m, 폭 4m의 도로를 단장해 음악의 거리를 만들었다. 거리 양 끝에는 ‘그네’ 가사와 금수현 사진과 거리 설명을 넣은 조형물이 있다. 바이올린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세워 한눈에 음악의 거리임을 알 수 있게 했다. 금수현의 대표작은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로 시작하는 가곡 ‘그네’다. 교과서에도 실렸었다. 이 가곡은 부산의 대표 여류 소설가 김말봉이 시를 쓰고 사위인 금수현(1919~1992)이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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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줄이 쳐져 있고 때가 낀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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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현 음악의 거리에 있는 각종 조형물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것 같다. 금수현 이름을 새긴 조형물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찌그러진 상태로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 있고 때가 끼어 있다. 시설을 조성한 구청이 수시로 조형물 등을 점검하고 가꿔야 한다. 훼손된 시설물을 방치하는 것은 위대한 음악가에 대한 모독이자 명예 훼손이나 마찬가지다. 금수현 음악의 거리가 강서를 찾은 사람들에게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각별한 신경을 썼으면 한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금수현 음악의 거리 사업이 오래전에 중단됐다. 조형물 페인트가 벗겨진 것 등을 인지하고 있다”며 “조형물 정비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강서구 대저동 사덕마을(당시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금수현은 성악가이자 작사·작곡가, 지휘자, 음악 교육가로 활동했다. 부산 제2공립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와 일본 동경음악학교(현 동경음악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쇼치쿠가극단(松竹歌劇團)에서 근무했으며, 귀국 후 동래고등여학교 교사, 경남여자중학교 교감 등을 역임했다. 1947년 경남 도립극장장 재임시 경가극 형태의 오페라 ‘피리와 칼’을 발표했다. 1957년 문교부 편수관 재직시절 음악용어를 한글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1968년 영필하모니를 창단해 젊은이들을 위한 교향악운동을 전개했다. 국정교과서 편찬위원, 숙명여자대학교와 건국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여러 음악 관련 단체에서 활동했다. 한국 작곡가협회 명예회장을 지냈다. 그런 공적을 인정받아 1992년 작고한 후에 옥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다. 저서로는 가곡집 I·II, 표준음악사전, 음악·멋·말 등이 있으며 음악 수필들을 남겼다. 그의 성은 원래 김(金) 씨인데 광복 이후 금 씨로 바꾸었다. 자녀들의 한글 이름 짓기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5형제의 이름을 나라, 난새, 내리, 누리, 노상으로 지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휘자 중 한 명인 금난새가 그의 둘째 아들이다. ‘하늘을 나는 새’라는 뜻의 난새는 우리나라 최초 한글 이름으로 주민등록상에 올려졌다. 그로 인해 제10회 외솔상을 받았다. 중구 대청동 산복도로에는 ‘금수현의 음악살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