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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몽골 초원의 관리자 흰가젤

수컷은 '오노' 암컷은 '샤르가친' 새끼는 '얀자가' 로 불려

떼 지어 대이동 장관 연출… 씨앗 퍼뜨리고 해충도 죽여

무분별한 개발로 서식지 좁아지고 밀렵으로 개체수 급감

  • 김애나(애리덴) 시민기자
  •  |   입력 : 2025-12-04 11: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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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흰가델들이 초원 위로 이동하고 있다. WWF제공
몽골에는 ‘여자와 흰가젤은 고향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여성은 결혼하면 남편의 집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몽골 흰가젤은 끝없는 초원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기 때문에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속담에는 몽골인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지혜가 담겨 있다. 그리고 동시에 흰가젤이 ‘이동’과 ‘자유’를 상징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자유의 상징이 위태하다.

●초원의 심장, 흰가젤

몽골 흰가젤(Procapra gutturosa·Mongolian Gazelle)은 몽골 남·동부의 광활한 평원에서 서식하는 대표적인 야생동물이다. 세계 개체수의 95~98%가 몽골에 서식할 정도로 이곳의 자연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존재다. 1970년대 첫 조사 당시 약 500만 마리로 추산되던 개체수는 2010년 300만 마리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밀렵과 서식지 축소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한다. 이들은 보통 20~30마리씩 무리를 이루지만, 때로는 5000마리, 많을 때는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움직이며 초원을 흔드는 장관을 만든다. 수컷은 ‘오노(Oono)’, 암컷은 ‘샤르가친(Sharhachin)’, 새끼는 ‘얀자가(Yanzaga)’라 부르며 매년 6월이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황갈색 털빛, 짧은 꼬리, 뿔이 없는 암컷과 뒤로 휘어져 안쪽으로 말린 수컷의 뿔은 비슷한 서식지에 사는 ‘검은꼬리사슴’과 구분되는 특징이다. 그리고 이들은 시속 70km까지 달릴 수 있는 놀라운 민첩함을 지녔다.

●초원을 살리는 ‘보이지 않는 손’

흰가젤은 단순히 초원에서 사는 야생동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들을 ‘초원의 관리자’라고 부른다. 발굽으로 땅을 부드럽게 만들어 식물 생장을 돕고 몸에 붙은 씨앗을 넓은 지역으로 퍼뜨린다. 흰가젤이 이동할 때 생기는 작은 움푹한 곳에 떨어진 씨앗은 초원의 강풍에도 뿌리를 내리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떼 지어 이동 때 떨어지는 이슬은 최대 50mm의 강수 효과를 낸다. 해충과 곤충을 밟아 초원의 건강성을 유지한다. 또한 암컷은 자기 새끼뿐만 아니라 길에서 만난 다른 새끼도 젖을 먹이는 드문 ‘타종(他種) 돌봄’ 습성을 보이기도 한다. 초원이 흰가젤을 살리는 동시에, 흰가젤 역시 초원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첫 서리가 내리는 시기가 되면 흰가젤의 대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수천, 수만 마리가 대지를 흔들며 이동하는 장관은 몽골 자연의 상징적 풍경이다. 과거 어르신들은 “1만 마리 무리는 작은 규모”라고 회상할 정도다. 수컷만 따로 모여 움직이는 ‘오노 무리’도 존재하며, 서로 경쟁하며 이동하는 모습은 야생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가을철 털빛이 윤기나고, 거대한 무리가 물결처럼 달리는 모습은 초원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꼽힌다.

●위성추적이 들려준 흰가젤의 비밀

몽골 동부 초원에 철도 건설이 추진되면서 야생동물 이동 경로 보전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세계자연기금(WWF) 몽골 프로그램팀은 2017~2018년 흰가젤 24마리에 위성추적 목걸이를 부착해 실제 이동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는 철도 건설 과정에서 생태통로를 과학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기초 연구였다. 3년 반 동안 축적된 자료 분석 결과, 흰가젤은 몽골 동부 4개 지역을 아우르며 총 24만7380㎢라는 광대한 영역을 이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한반도 면적을 넘는 규모다.

그러나 최근 몽골 초원 흰가젤의 서식지가 갈수록 황폐화되고 있다. WWF의 보고에 따르면, 몽골 초원은 잦은 가뭄과 혹독한 겨울이 반복되어 흰가젤의 대규모 폐사가 일어나고 있다. 2017년 약 5000마리가 기근으로 죽은 것으로 보고됐다. 기후변동으로 황폐화 된 초원의 회복력이 떨어지고, 7000만 마리가 넘는 방목 가축이 흰가젤의 서식지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여기에 석유 개발, 도로, 송전탑 등 대규모 인프라가 초원 곳곳에 생기면서, 흰가젤의 오랜 이동 경로가 곳곳에서 끊기고 있다. 무분별한 사회간접시설 조성이 야생동물 서식지 훼손한 것이다. 몽골 농가에서 흔히 키우는 개들 역시 의도치 않게 갓 태어난 흰가젤을 위협하는 존재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밀렵이다. 2018년 한 해에만 최소 수만 마리가 불법으로 포획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개체수 감소를 넘어 무리 구조 자체를 붕괴시키는 심각한 타격을 준다. 최근 증가하는 초원 산불도 서식지 파괴를 가속한다. 이는 생태계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초원의 생명줄, 보호가 시급하다

흰가젤 감소는 한 종의 문제를 넘어 몽골 초원 생태계 전체의 균형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초원의 관리자인 흰가젤이 사라지면 생태계 연쇄 파괴는 불가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적 보호 강화, 지속적 감시, 개발과 보전의 균형, 국제 협력이다. 몽골 초원의 상징이자, 끝없이 흐르는 생명의 순환을 보여주는 흰가젤을 지키는 일은 곧 초원을 지키는 일이다. 흰가젤의 자유로운 달리기가 사라진 초원은 분명, 더 쓸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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