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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박철홍기자 |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경상도 시골 할머니가 서울 아들집에 갔다. 서울 역에 도착했다. 길을 모르는 할머니는 택시를 탔다. 그러자 운전수는 친절하게 "할머니, 어디 가시나요?"하고 물었다.
원래 서울사람들은 싸가지가 없고 불친절하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서울 택시 운전사도 어른한테 출신을 이렇게 묻는가 싶어 화가 났다. 그래서 "부산 가시나다 와"하고 쏘아댔다.
여하간 할머니는 아들네 집에 도착했다. 문이 잠겨 있자 집안을 향하여 "야야 새때 끼라라. 어이"하고 소리쳤지만 무슨 소린지 알아 듣지 못해 그날 할머니는 많은 시간을 밖에서 떨어야 했다.
할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집안에 들어가 서울 출신 며느리에게 저녁상을 받았다. 그날 저녁은 젊은 며느리가 신경을 썼지만 밥은 질고, 된장국은 식은 상태로 밥상을 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며느리를 "이기 밥가 죽가?"하고 타박했지만 며느리가 무엇을 바꿔준다는 뜻이지 난처해하자 할머니는 속이 탔다.
그리고 식은 국을 보이며 "야야 이거 데파 주라"했더니 며느리는 부엌으로 달려가 대파를 숭숭 썰어 국에 넣어드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음날 할머니는 목욕탕에 가서 묵은 피로를 칼컷게 씻어내려 목욕탕을 가려고 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야야 가근방에 개죽은 모욕탕이 어데고?"하고 물었다. 그러자 며느리는 "어머니 개가 죽은 목욕탕은 여기 없어요"하고 말했다고 한다.
또 이 집에 할머니의 손자 '안 득기'가 있었는데 처음에 서울로 전학 가서 학교생활이 낯설고 힘들었다. 득기가 피곤해서 수업시간에 맨 뒤에 앉아 졸고 있었다. 경상도 출신 선생님이 이를 보고 "어이 너 이름 뭐꼬?"하고 물었다. 그러자 덕기가 "안 덕깁니다"했다. 안 듣긴다는 말에 화가 난 선생님이 "뭐라? 안 듣기나? 내말 들리나?"하자 득기가 "덕깁니더"하자 다시 선생님이 물었다. "이름이 머꼬?"하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득기는 "안 덕깁니다"라고 했다. 선생이 화가 나서 득기에게 청소를 시켰다.
친구와 같이 유리창 청소를 하던 득기는 친구가 유리창에 낀 때를 지우지 못하자 친구를 위해 이렇게 충고 했다. "신문지에 춤 바르고 매매 문떼바라" 그러자 친구가 "문을 떼면 선생님께 혼난다"라고 했다. 득기는 이에 "글나?"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다시 "긁지는 않고 혼만 나"라고 했다. 그러자 우리의 득기가 이렇게 말했다. "맞나?"그 친구는 다시 "맞지는 않고 야단만 쳐"라고 말했단다.
나중에 득기는 할머니를 만나 이러한 사실을 가지고 "글마가 그쿠니 내가 그카지"하면서 말하니까 옆에 있던 서울 아이들이 "봐라. 일본사람이지"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우스갯소리는 서울 사람과 경상도 사람의 의사 소통 부재를 과장해서 만든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웃다가도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경상도 사람이 표준어를 배워서 원활한 소통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새떼 끼라라'는 '열쇠로 열어라', '밥가 죽가'는 '밥이냐 죽이냐'로, '데파'는 '데워'로, '칼컷게'는 '깨끗하게'로, '개죽다'는 '가깝다'로, '가근방'은 '근처'로, '매매'는 '힘껏'으로 '문떼바라'는 '문질러라'로 바꾸고 '글나'는 '그것이 사실이냐?'로 '맞나'는 '(그 말이) 옳으냐?'는 뜻으로 바꿔야할 판이다.
그러나 표준어로 바꾼다면 의사 소통을 수월하게 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경상도의 말맛을 잃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보통 사람들은 특정한 사투리가 그에 대응되는 표준어가 있어서 그에 따라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실상은 다르다.
우선 '칼컷다'의 경우, '깨끗하다'로 바꾸면 될 것 같지만 그 환경과 의미가 다르다. '깨끗하다'의 경우는 표준어에서는 '① 맑다, 끼끗하다, 칠칠하다, 정결(淨潔)하다, 정(淨)하다, 결정(潔淨)하다, 식정(拭淨)하다, 식청(拭淸)하다, 청결(淸潔)하다, 청정(淸淨)하다, 청절(淸絶)하다, 건정(乾淨)하다, 간정(幹淨)하다, 간정(簡淨)하다, 소쇄(瀟灑)하다 ② 단정하다, 정갈하다, 정갈스럽다, 말끔하다, 청허(淸虛)하다, 청징(淸澄)하다, 징청(澄淸)하다, 정결(淨潔)하다, 인결하다 ③정정당당하다 ④ 텅비다, 비다 ⑤ 조촐하다, 선명하다, 아름답다, 산뜻하다, 작작(嚼嚼)하다 ⑥ 개결(介潔)하다, 개정(介淨)하다, 결백(潔白)하다, 청정무구(淸淨無垢)하다, 충담(沖澹)하다 ⑦ 말짱하다, 감쪽같다, 완전하다 ⑧ 청순(淸純)하다, 청초(淸楚)하다, 청신(淸新)하다 ⑨ 구김살없다, 티없다, 경결(耿潔)하다, 아(雅)하다'와 같이 많은 경우에 쓰일 수 있는 단어이다(전문적으로는 기능 부담량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기능 부담이 많은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통합되어 쓰이기 때문에 그 환경과 의미가 자세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상도 양산이나 밀양, 창녕 말에서는 '칼클타'와 '깨끗하다'가 있고, 합천 묘산말에서도 '깔컬타'와 '깨끗다'가 함께 쓰이고 있다는 점은 두 단어의 기능 부담이 다르다는 증거가 된다. '칼컷다'의 경우는 '시원하다, 깔끔하다'와 같은 환경에 쓰이는 단어이고 '깨끗하다'는 '청결하다, 맑다'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만약에 이것이 같은 의미와 환경을 가진다면 구분되어 쓰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새첩다'의 대응 표준어가 '예쁘다'로 인식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새첩다'와 '예쁘다'는 그 환경이 다르다. '새첩다'는 '귀엽고 앙증맞다'는 뜻으로 물건이나 사물에 주로 많이 쓰이고, '예쁘다'는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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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열 |
래 '어여쁘다'에서 변한 말로 얼굴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사람에 자주 쓰이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의자가 예쁘다'보다는 '의자가 새첩다'가 더 적절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만약에 경상도 말 '새첩다'를 모두 '예쁘다'로 대응 시키면 다양한 말맛이 모두 사라진다. 언어의 표현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인식이 세분화되었다는 것이고 인식이 세분화된다는 것은 그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다양하고 정확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지시하는 대상이 같은 말이라도 그 말맛은 다르다. 경상도 말에서 '꿀밤나무'나 '도토리나무', '상수리나무'는 다 같은 나무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노래에 나오듯이 '커다란 꿀밤나무 아래서…'부분을 '커다란 상수리 나무 아래서…'라고 표현한다면 어릴 적 친구와의 정담도 반감될 것이다. 우리에겐 '꿀밤나무'도 필요하고 '상수리나무', '도토리나무'도 필요하다. 우린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논 적이 없고 '꿀밤나무' 아래에서 논 적이 있을 뿐이다.
/ 이근열 부경대 국문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