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시내
'그 가시내 참 새첩더래이.'
경상도 사람임을 단번에 알 수 있는 말이다. 가시내는 '가시나, 가스나, 가수나' 등으로 쓰인다.
이 '가시내'에 대한 어원들이 흥미롭다. 첫째는 계집아이가 얌전치 못하여 여기저기 동냥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중한테나 시집보낼 아이란 '가승아(嫁僧兒)' 설이고, 둘째는 옛날에 여자가 길을 갈 때 갓을 쓴 남자의 복장으로 다니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갓쓴애'에서 왔다는 설이며, 셋째는 거짓사내, 곧 '가(假)사내' 설이다.
허황된 풀이지만 '동언고략(東言攷略)'에 실린 내용도 재미있는 또 하나의 설이다. 고려 때에 원나라 사람이 동녀(童女:계집아이)를 데려가 궁녀로 삼아 해마다 큰 폐가 되었는데, 가정(稼亭)이란 별호를 가진 이색(李穡)이 원나라 조정에 들어가 글을 올려 이를 폐지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 은혜를 고맙게 여겨 딸을 낳을 때에는 반드시 '가산아(稼産兒)', 즉 '가정이 낳은 아이'라 했다는 데에서 왔다는 것이다. 그 외에 혼인할 시기에 이른 아이란 '과시아(瓜時兒)'란 설도 있으나 다 믿을 수 없는 풀이들이다.
'가시내'란 말의 기원은 옛글에 보이는 '가스나해'(옛 글자는 발음이 비슷한 글자로 적음)인데 이는 뒤에 '가시나희'를 거쳐 '가시내'로 축약된 것으로 보인다.
어느 국어학자는 '가시내'의 '가시'는 여자나 처의 뜻이고 '내'는 태생의 뜻인 '나해'에서 왔다고 했으나, 많은 학자들은 여자나 처의 뜻인 '갓(가시)'에 아이의 옛말인 '아해'가 붙어 된 말로 보고 있는데, 확실한 어학적 풀이는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가시내'는 표준어인 계집애, 곧 여자아이란 소박한 뜻을 가진 경상도 말이다. '그 계집애 예쁘더라'의 계집애보다는 '그 가시내 이뿌더라'의 '가시내'에서 우리는 더한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 조포
'조포 장수'란 말의 '조포'는 두부를 이르는 경상도 말로 '조푸' 또는 '조피'라고도 한다. 두부는 서기 전 2세기에 중국 한나라의 비운의 지식인이었던 유안(劉安)의 발명품으로, 중국이 원조이긴 하나 요리법이나 맛은 우리나라에 와서 발달했다고 한다.
세종 14년 명나라 황제가 조선에서 보낸 궁녀들의 두부 만드는 솜씨가 절묘하다며 극찬했다는 기록을 보면 우리의 두부 문화를 짐작할 수가 있다.
또,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두부로 고치시(高知市)의 당인두부를 드는데, 그 원조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진해 웅천성을 침공했을 때, 열 살 남짓한 두 자녀를 포함한 30여 명의 일족과 포로로 잡혀간 박호인(朴好仁)인 것으로 미루어 우리의 우월한 두부 문화를 가늠할 수가 있다.
두부(豆腐)는 글자대로라면 '콩 썩은 것' 정도로 해석되나, 두부의 '부'는 '썩은'보다는 '삭은'의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두부는 콩을 갈아 응고시킨 것이므로 콩이 '삭은 것'은 아니지만 '삭다'란 말이 '썩다'와 뿌리를 같이하는 말이기에 '부'를 쓴 이유를 밝혀 보느라 '삭은'으로 해석해 본 것이다. 어쩌면 옛날에는 콩을 삭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부가 우리나라에 언제 전래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문헌상으로는 이색의 목은집에 '나물국 오랫동안 먹어 맛을 못 느껴/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우어 주네/ 이 없는 이 먹기 좋고/ 늙는 몸 양생에 더없이 알맞다'란 시가 있음을 볼 때, 아마도 고려말에 원나라를 통해 제조법이 전래된 것 같다.
한글학회의 '우리 토박이말 사전'에서는 '조포, 조피'는 경상도 전체에서, '조푸'는 경남 지방, '조프'는 경북 지방에서 쓰는 말이라 했다.
두부는 맷돌에 간 콩을 끓일 때의 부글부글하는 모양에서 포(泡:거품)라고도 하는데, '조포'는 '두부를 만들다'란 조포(造泡)에서 온 말이다. 옛날 관가에 두부를 만들어 바치던 곳을 조포소(造泡所)라 했고, 임금의 능이나 왕세자나 세자빈의 산소인 원소(園所)에 속하여 제사에 쓰는 두부를 만들던 절을 조포사(造泡寺)라 했다.
다른 곳에서도 두부를 만들었을 것인데 경상도에서만 '조포'란 말을 쓰게 된 것은 흥미롭고도 특이한 일이라 하겠다.
◇ 뚜벙
"에미야, 밥 뚜벙 잘 덮어 두라이. 일하로 간 너거 아부지 오시몬 따신 밥 드시구로 말이다." 남편에 대한 따뜻한 마음씨를 읽을 수 있는 경상도 말이다.
오늘에 우리는 그릇의 아가리를 덮는 기구를 '뚜껑'이라 한다. 이와 비슷한 말인 '두겁'은 가늘고 긴 물건 끝에 씌우는 물건인데 '붓두껍'에서는 '두겁'이 아닌 '두껍'으로 쓰고 있어 '붓두겁'인지 '붓두껍'인지 의문을 빚어내기도 한다.
사람의 탈이나 겉모양을 말하는 '인두겁'이란 말은, 욕설로 쓰이는 '인두겁을 쓰다'란 말로 볼 때는 '두겁'과 관계가 있을 것 같으나 의미상으로는 딱 그렇다고 하기가 주저스럽다.
솥뚜껑을 경상도에서는 '소두방, 소드방, 소더뱅이, 소두벙'이라고 한다. 물론 표준어는 '소댕'이다.
소두벙의 '두벙'이나 '뚜벙'은 '덮다'의 옛말을 더듬어 보게 하는 말이다. '둡다'는 '덮다'의 옛말이다. '두벙'은 '둡다'의 '둡'에 '엉'이 붙은 '둡엉'에서 온 말이고, '뚜벙'은 된소리로 변한 말이다.
우리는 '뚜벙'이란 말에서 따사로움과 예스러움을 느낀다. '뚜벙'의 '벙'이 주는 느낌과 옛말 '둡다'의 말맛에서다. 밥 그릇을 꼭꼭 덮어두었던 '뚜벙'은 지금은 사라져가는 말이 되었으나 따뜻한 정을 덮어두는 그륵('그릇'의 경상도 말)이었다는 생각이다. 류영남 한글학회 부산지회장·여명중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