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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의 미학 <27> 드라마의 사투리

빈번한 지방말 대사 희화화 경향

배우들이 내뱉는 말투만 들어도 신분 암시

드라마 역사극 인물이어 언어 고증도 필요

자칫하면 사실 왜곡 따른 고정관념화 우려

  • 이근열 교수
  •  |   입력 : 2005-04-28 15:37:09
  •  |   본지 4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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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때 이율곡 선생이 다음과 같은 강릉 사투리로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선조가 잘 알아 듣지 못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전하! 자들이 움메나(얼마나) 빡신지(억센지) 영깽이(여우) 같애 가지고 하마(벌써) 서구문물을 받아들여가지고요, 쇠꼽 덩거리(쇠 덩어리)를 막 자들고 발쿠고(두드리고 펴고) 이래가지고 뭔 조총이란걸 맹글었는데, 한 쪽 구녕(구멍) 큰 데다가는 화약 덩거리하고 재재한(작은) 쇠꼽 덩거리를 우겨넣고는 이쪽 반대편에는 쪼그마한 구녕을 뚤버서(뚫어서) 거기다 눈까리를 들이대고 저 앞에 있는 사람을 존주어서(겨누어서) 들이 쏘며는 거기에 한번 걷어들리면(걸리면) 대뜨번에(대번에) 쎄싸리가 빠지쟌소(혀가 빠져 죽지 않소).

그리고 자들이 떼가리(무리)로 대뜨번에 덤비기 때문에 만 명, 2만, 5만 갖다가는 택도 안돼요. 10만 이래야 되요. 분명히 얘기하는데 내 말을 똑떼기(똑바로) 들어야 될 끼래요. 그리고 자들이요, 움메나(얼마나) 영악스러운지요, 맹하이 이래가지고는 되지 않아요. 우리도 더 빡시게 나가고, 대포도 잘 맹글고, 훈련을 잘 시켜서 이래야지 되지 안 그러면 우리가 잡아 먹혀요."

위의 이야기는 우스갯소리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다.

왜냐하면 조선조 양반들에게 엄격하게 언어를 사용하게 했으리라는 것은 모두가 짐작할 일이며 임금 앞에서 전달의 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눈까리, 쎄싸리가 빠지다(죽다), 빡시다' 등 어휘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없는 일이다. 원래 율곡 선생은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났지만 원래 고향은 경기도 파주이며 6세 때 지금의 서울 청진동에 올라와 생활하였다. 율곡 선생은 주로 한양에서 생활하였기에 강릉 사투리보다 한양을 중심으로 한 중부 지방의 말을 사용하였을 것이며, 양반 출신이기 때문에 평범한 지역말보다는 격식적이고 공식적인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나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철저하게 고증해야 하며 언어 사용의 측면에서도 왜곡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 사실과 인물이 과장될 가능성이 있어서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하가 임금을 '전하'라고 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신하가 함부로 임금을 부를 수도 없지만 '전하(殿下·누각 밑에)'는 '각하(閣下·문설주 아래), 폐하(陛下·섬돌 아래)'와 같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에 대답말로만 쓸 수 있다.

최근에 역사 드라마나 코미디에서 사투리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토지'나 '불멸의 이순신', '해신' 등의 역사 드라마와 여러 지방의 신하들과 임금이 어전회의를 하는 코미디, 신라의 김유신과 백제의 계백 장군이 서로 자기 지역말로 전쟁을 하는 영화 '황산벌' 등 다양한 장르에 지역말이 자주 등장한다. 지역어의 빈번한 사용은 작품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다양한 언어를 통해 재미있는 개성을 창출하는 등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그러나 흥행만을 생각해 유기체적인 지역말을 단지 흥미 있는 요소만 과장하여 부각하거나 희화화하면서 잘못된 지역말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지역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하거나 고정 관념을 강화하게 된다.

드라마 '토지'의 경우, 주인공 최서희(김현주 분)를 중심으로 비중 있는 인물이나 지체 높은 양반들은 모두 서울말을 쓰고 있는데 반해 최 참판집 하인들과 같은 주변인물이나 조연은 경상도 말이나 북한 말을 쓰고 있다. 그래서 지역말을 쓰는 사람들은 천하고 서울말을 쓰는 사람은 귀하다는 인식을 고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중매체가 사투리를 쓰는 인물이 교양 없고 무식한 이미지만을 줄까봐 여기에 덧씌워 이미지가 순박하고 후덕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것 역시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후덕하다는 것을 고정화하여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주인공을 비롯한 양반 모두 경상도 말을 사용하게 해서 하인들과 비슷한 말투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있다. 특정 지역말은 언어 형성기에 습득이 되고 그 지역에서 생활의 터전을 잡고 오랫동안 생활을 할 경우에 고착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높은 벼슬을 하거나 오랫동안 타지에서 살았거나, 많이 배운 양반들은 엄격한 언어 교육에 의해 양반들의 격식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단순히 그 지역에 사는 양반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그 지역말을 써야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토지'의 최서희 어머니인 별당아씨는 서울에서 하동으로 시집 왔기 때문에 하동말보다는 서울말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하동에 산다는 이유로 지역말을 고집스럽게 쓰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동에서 자란 서희는 말 배우는 시기에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면 서울말을 쓸 수 있다. 이는 여자 아이들은 남자 아이 들보다 언어 감각이 뛰어나서 주변의 언어적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쉽게 서울말을 따라 배울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극은 인물의 철저한 고증을 거쳐 그 인물이 어떠한 언어를 구사할 지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거나 고정관념만 더욱 강화할 뿐이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이러한 면은 발견된다. 드라마속의 김완 장군(박철민 분)은 경북 영천 자항면 노항동에서 출생한 분으로 역사물에는 경주사람으로 기술되어 있다. 김완 장군은 임진왜란 발발 전인 선조 24년(1591년)에 이순신 장군을 보필하는 사도첨사 역으로 전라도 좌수영에 배치되어 옥포와 당포해전을 비롯해 한산대첩 등 7년간의 전쟁에서 300 척의 적함을 수장시킨 명장으로 전쟁이 끝난 후 선조 임금으로부터 '해동소무'라는 어필을 받을 만큼 충절과 절개가 굳은 장군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김완 장군은 게으른 사람으로 심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극 중에서 특정한 인물의 이미지는 한 번 고정되면 바꾸기가 힘들다. 지역주민들이 주장하는 대로 영천 출신의 장군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은 그 고증이 잘못된 것으로 바로 잡아야한다. 그렇지만 특정 지역의 장군들이 반드시 그 출신 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태어난 곳 언어습득 시기에 있던 곳, 관직의 진출 여부, 교육의 여부에 따라 판별되어야할 문제이다.
   
이근열 부경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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