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행위를 위해 함께 모은 돈은 누군가가 빼돌려도 횡령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국제신문 DB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A 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 시는 부산 해운대구에서 의료기기 판매업체를 운영한다. 그는 노인요양병원 운영을 계획하고 있던 중 골프 동호회에서 만난 B 씨 등과 함께 ‘사무장 병원’을 동업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A 씨는 2013년 3월 투자금 명목으로 2억5000만 원을 받아 보관했다. 그런데 사업 진행 과정에 동업자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요양병원 설립도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 중 한 명이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A 씨는 2014년 2월 개인 채무 변제 목적으로 투자금 가운데 2억3000만 원을 써버렸다. 이 때문에 A 씨는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급심은 A 씨 횡령 혐의를 인정했다. 이들이 맺은 동업 약정 자체는 자격 없는 이들이 병원을 세우려는 시도로 의료법 위반이라 무효지만, B 씨 등이 낸 돈을 그가 사적 용도로 소비한 행위는 횡령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A 씨의 횡령 혐의가 성립될 수 없다고 봤다. 이들은 범죄를 목적으로 돈을 모은 사이기 때문에 형사법이 지켜줘야 할 보호가치 있는 위탁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범죄 실현을 위해 교부된 돈이라 이들 사이 ‘보호할 만한 신임에 의한 위탁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원심 판결은 횡령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의미에 관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