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들어서면 커다란 황소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그림도 있고 동화나 만화 속 캐릭터도 곳곳에 숨어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즐기던 딱지치기, 말타기 놀이, 팽이치기 놀이도 재연됐다.

경남 하동군 횡천면 애치마을이 아름다운 벽화마을로 거듭났다. 하동군 제공

경남 하동군 횡천면 애치마을이 아름다운 벽화마을로 거듭났다. 한때 50여 농가에 400여 명이 살던 마을은 이촌향도 현상에 의해 작은 마을로 변모해 현재 40여 세대 91명이 산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속 추억은 많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없고 눈에 보이는 건 공허하고 정이 넘치는 고향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길 뿐이다.

1950∼1970년대 이 마을에 살던 출향인들이 의기투합해 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진주에 사는 남기두(53) 씨가 주축이 돼 애치마을벽화만들기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남 씨는 “7년 전 자신의 부모님이 거주하던 집에 벽화를 그렸던 것이 호응이 있어 이를 마을 전체로 확대하기 위해 추진했다”고 회고했다.

남점우(76) 이장 등 마을 주민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마을 안팎에 소문을 냈다. 출향인으로 애틋한 마음을 간직한 이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보내왔다. 출향인 80여 명이 모은 기금은 1700여만 원에 달했다. 하지만 마음먹은 만큼 쉽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담장을 보수하는 데 큰돈이 필요했다. 하동군이 2500만 원을 지원했다.

게다가 직접 그림을 그려줄 사람도 섭외해야 했다. 봉사활동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어서 보수나 수당 같은 건 엄두를 낼 처지가 아니었다.

마을 주민이 직접 담장을 세척하고 밑바탕 색을 칠했다. 이어 지난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한 달 동안 마을 곳곳에서 동시에 벽화작업이 진행됐다.

지난달 13·14일 이틀 동안 경상국립대 벽화 동아리 해피빌더스에서 연인원 80명이 동원됐다. 이상빈(82) 화백은 대형 벽화에 매달려 구슬땀을 흘렸다. 라빠레뜨 화실과 하나회 봉사단원들도 자기가 가진 재주를 최대한 활용했다.

하동군 횡천면 애치마을 내 벽화가 한 폭을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하동군 제공

애치마을 담벼락에는 남의 집 담벼락 안 단감을 따 먹던 아슬아슬한 장면도 볼 수 있고 함께 뛰놀던 강아지, 하늘을 날던 두루미도 등장한다. 어느 집 높고 큰 담벼락엔 실물 같은 산수화가 그려져 있어 오랫동안 발길을 붙든다. 놀랍고 신기하고 반갑고 즐거운 풍경이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입구 수로를 이용해 ‘애치 벽화마을’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도 만들었다.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도 세웠다.

기념비에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애향심을 높이기 위하여 추억 어린 벽화마을로 꾸미는 데 뜻을 모았다’고 썼다. 도움을 준 사람들 이름을 모두 새겼다.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애치마을벽화만들기추진위원회는 다음 달 2일 오전 11시 애치마을 골목에서 마을 벽화 준공식을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