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소설 ‘버젓한 아버지에게’
- 부산대 이재봉 교수 번역본 출간
- 일본 속 한인모녀 삶 담담히 그려
- 20일 백년어서원서 작가와 대화

여성 작가 후카자와 우시오의 장편소설 ‘버젓한 아버지에게’(이재봉 옮김·전망 펴냄)는 세심하고 촘촘한 구성과 질감 위에 섬세한 정서·감성을 풀어낸다. 일본 소설 문학 특유의 느낌이라 해도 좋을 그 무엇이 전달되어 온다. 그렇게 재일한국(조선)인 문학의 새로운 결을 만져볼 수 있게 해준다. 부산대 이재봉(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번역한 이 장편소설은 주목할 작품, 새로운 발견이다.

‘버젓한 아버지에게’ 작가 후카자와 우시오와 장편소설 표지(작은 사진). ⓒ Taisei Ueda/Asahi Shimbun Publications Inc.

‘버젓한 아버지에게’는 2015년 일본 아사히신문출판에서 출간됐다. 이재봉 교수는 “서경식 교수의 호의로 2018년 2월부터 1년간 일본 도쿄게이자이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낼 때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를 일컫는 일본말) 여성사학자인 송연옥 교수의 추천으로 이 작품을 접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이내 이렇게 읽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1966년 재일한국인으로 태어난) 후카자와 우시오의 작품은 가볍지 않고 무겁지 않으면서도 만만찮은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고 ‘옮긴이의 말’에서 밝혔다.

도모미(朋美)는 한국과 한류에 관한 기사를 일본 매체에 기고하는 여성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중학교 3학년인 외동딸 유메나(夢奈)는 한류에 푹 빠져 있다. 어머니 기요코(淸子)는 미용업으로 시작해 연 매출을 100억 엔 가까이 올리는 하마다 코퍼레이션의 사장이다. 세 사람이 함께 서울로 여행와 경복궁 근처 웨스틴조선호텔 이그제큐티브 플로어에 묵는 ‘마음 편안한’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이 가족이 이렇게 마음 편한 경지에 오기까지, 폭풍·혼란·미로의 긴 세월이 있었다. 그 이야기는 도모미와 기요코, 두 사람의 삶 모두에 걸친다. 이야기 얼개는 이렇다. 도모미가 어릴 때 아빠는 사라져 버린다. 소녀 시절 도모미는 아빠를 그리워하고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며 착하게 살아간다. 엄마 기요코는 성공을 거머쥐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느라 딸 도모미를 세심하게 돌볼 수 없다. 도모미는 단짝 사치코를 통해 세상을 만난다.

아빠에 관한 비밀을 풀 실마리를 도모미는 잡는다. 엄마 기요코가 젊었던 시절 불같은 사랑을 나눈 그 남자, 즉 도모미의 아빠는 1970년대 한국에서 일본으로 밀항해 와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돕던 한국인이었다. 소설은 젊은 시절 기요코와 도모미의 삶을 나란히 놓고 촘촘·생생하게 전개된다. 이 모녀는 티격태격하지만, 어떤 마음을 공유한다. 기요코가 손녀 유메나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해.”

‘버젓한 아버지에게’는 소리 높여 ‘이것이 차별이다, 차별을 철폐하라’는 식으로 외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감정·대화·생활을 통해 보여준다. 이런 ‘잔잔한 선명함’을 독자는 알아챌 것이다. 기요코가 젊었던 날, ‘밀항해 온 한국인 민주 인사’라는 불안한 인물인 줄 알면서도 남편(도모미의 아버지)에게 빠지고, 딸 도모미는 아버지뻘 중진 언론인 구로사와를 흠모하게 된다. 기요코와 도모미 모두 상대 남성에게서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 모녀는 일본인/조선인 구별 등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어떤 사람’인지 중시하는 공통점이 있다. 도모미(朋美)의 朋(붕)은 ‘벗’이라는 뜻이다. 도모미가 갓 태어나고 기요코가 곤경에 빠졌을 때, 재일조선인 가정의 식구들은 일본인인 기요코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두 함께 키우면 좋잖아.”(222쪽) 도모미는 줄곧 ‘평범한 삶’을 그리워한다. 아빠가 있고, 차별당하거나 왕따당하지 않고, 핏줄이 아니어도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그런 평범함을 원한다. 결국, 차별 없는 세상이란 특별한 게 아니라 ‘평범한’ 사회임을 소설은 말한다.

오는 20일 오후 6시30분 부산 중구 동광동 백년어서원에서 후카자와 우시오 작가가 직접 참가하는 제79회 사람을 꿈꾸는 책(문의 051-465-1915) 행사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