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진위, 부산 이전 확정된 이후
- 비전 제시 없이 17년 시간끌기
- 최근 ‘규모 축소 착공’ 市에 제안
- 수도권 제작사는 인센티브 받고
- 市는 홍보에만 활용하는 악순환
- 지역 영상산업 발전 도움 안 돼
- 후반작업시설도 부산 옮겨와야
- 亞 영화제작 수요까지 흡수 가능
부산촬영소 건립은 공공기관 부산 이전이 확정된 2005년 이후 한 발도 진척되지 못했다. 부산촬영소는 영화진흥위원회 부산 이전의 한 축으로서 남양주종합촬영소 매각 후 이전 작업이 진행 중이다. 수도권 영화 제작사의 부산 촬영뿐 아니라 지역 영화제작사 이용, 지역 영화인력 육성 등 영화진흥위원회 부산 이전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부산에는 2019년 기준으로 77개의 영화·영상 제작사가 있고 이들도 중요한 촬영소 수요처다. 기장과 가까운 울산에서도 국제영화제가 열리는데 울산에서도 부산촬영소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  |
|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에 위치한 부산촬영소 부지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
■영진위 17년간 종합촬영소 지연
영화진흥위원장이 바뀔 때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서울 영화계 반대를 이유로 남양주종합촬영소 부산 이전에 소극적이었다. “전북에도 촬영소 건립을 고려할 만하다”(2005년 9월 안정숙 영진위원장) “김해공항 근처에 촬영소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2019년 영진위 직원)는 등의 발언으로 부산촬영소 건립은 혼선에 혼선을 거듭했다.
기장군이 부산촬영소 건립 부지를 영진위에 무상 임대하기로 했지만 영진위는 “5년마다 무상 임대 여부를 군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해 불편하다”고 버티자 기장군은 “영진위 요구가 있으면 부지를 매각한다”는 내용으로 협약을 바꿨다. 한때 폐쇄됐던 남양주촬영소는 지난해 1월 재개장했다. 이런 흐름대로 간다면 부산촬영소는 ‘빈껍데기 개장 → 시장의 외면 → 남양주촬영소 계속 운영’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남양주종합촬영소는 민간이 매입했지만 촬영 및 관람시설 목적의 관광휴양형 지구단위계획으로 지정돼 개발이 제한돼 있다.
또한, 영진위의 부산촬영소 건립 의지는 약하다는 평가가 많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예산 효율화 및 지역 사회와의 협조를 통해 충분히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지역 사회 목소리다. 부산시 관계자는 “영진위 측에 몇 차례 ‘도울 것이 없느냐’고 물어도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박인호 부산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는 “공공기관장 모임이나 행사에서 다른 이전 기관과 달리 영진위원장을 본 적이 없다. 지역 사회와 더 소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종합’ 빠진 부산촬영소
부산촬영소는 공식 명칭에서 ‘종합’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다. 영진위가 부산시에 보낸 공문서를 보면 2015년부터 부산종합촬영소 대신 부산촬영소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부산촬영소는 영진위가 사용하는 명칭대로 종합촬영소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영진위는 부산촬영소를 수도권 영화 제작사가 주로 이용하는 단순 촬영 스튜디오로 설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변경안에 후반 작업 시설이 제외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부산촬영소에 핵심 시설이 빠진 채 개장하면 수도권과 멀어 경쟁력이 떨어진다. 남양주종합촬영소가 성공했던 것은 과감한 투자로 대규모 시설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부산촬영소는 국내에서만 경쟁할 것이 아니라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지역 영화 제작 수요를 흡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진위는 지난 17년간 부산촬영소 건립 비전 등 마스터 플랜을 지역 사회에 내놓은 적이 없다. 촬영소 건립을 통한 지역 영상산업 발전에 관해 관심이 부족했다는 의미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전수일(경성대 교수) 감독은 “영진위로부터 부산촬영소 건립 계획이나 비전 발표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후반 작업 시설 왜 중요한가
영화 촬영과 편집은 영화 제작에서 하나의 큰 축이다. 촬영과 후반 작업(편집)이 분리되면 제작사 불편은 커질 수밖에 없다. 부산으로 이전한 영화제작사조차 부산의 인프라와 인력이 부족해 후반 작업은 서울에서 진행한다. 영화맞춤제작소 영화공장 박지영 대표는 “부산촬영소에서 촬영과 후반 작업이 원스톱으로 이뤄지면 서울과 부산을 오갈 필요가 적어진다”고 말했다. 영화맞춤제작소는 현재 서울에서 후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작사 눈 김예솔 대표는 “지속 가능성을 보고 부산촬영소가 건립돼야 한다. 영화 제작은 촬영과 후반 작업이 원스톱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과 경남에서는 경성대 동서대 부산대 영산대에서 해마다 수백 명의 영화 인력을 배출한다. 부산촬영소에 후반 시설이 들어서면 이런 인력이 흡수될 수 있다. 전수일 감독은 “후반 작업 시설에는 별도의 전문 인력이 있어야 하고 지역에서 이런 인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촬영소 후반 작업 시설(영상지원시설)에는 음향 디자인, 사운드 복원, 생효과 녹음, 디지털 합성편집, 색 보정, 비품창고, 작가집필실, 작품토의실, 편의시설 등이 담겼다.
■영진위 왜 이러나
이전 대상 공공기관들은 이전을 거부하거나 핵심 시설 이전을 제외하거나 최대한 이전을 지연하는 경향이 강하다. 비수도권 거주에 대한 거부감이 크기 때문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초기 공공기관 이전 사업이 휘청한 적 있었고, 지금도 그때와 비슷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어려워졌고 게다가 지금은 지방자치단체장과 대통령 임기 말이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이건희 컬렉션’의 비수도권 건립 요구를 묵살하고 청와대 인근에 건립하기로 하는 등 정부의 국토 균형 발전 의지가 옅어진 상태다. 공공기관들은 ‘이번 정부도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관심이 적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영진위가 예산 부족을 들어 ‘규모 축소 후 착공’을 지자체에 제안한 것이다. 게다가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자체는 ‘삽을 뜨는 장면’이 절실할 수도 있다.
영진위의 변경안은 확정된 이전안을 중대하게 변경하는 것이어서 혁신도시법에 따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국토부가 부산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의견 조회를 하고 국토부 의견을 달아 국가균형발전위에 보내는 절차를 거친다. 축소안이 확정되면 영진위와 남양주종합촬영소의 부산 이전 작업은 마무리된다.
영진위는 지난 29일 국제신문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서를 보내 “이번 설계에 반영되지 못한 시설은 향후 재원 조달 확보 등을 고려해 영화계 의견 수렴과 부산시 및 기장군과 추진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영화계는 부산촬영소 건립 자체에 부정적이고 영진위는 부산촬영소 추가 건립에 대한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추가 논의에 들어갈 가능성은 작다. 시 관계자는 “추후에 후반 작업 시설을 넣을 수 있느냐고 질의했지만 영진위는 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영화인은 “영진위는 부지를 무상 임대했고 추후에 매입할 수 있게 됐다. 촬영소를 만든다는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추후에 후반 작업 시설을 만들 이유도 없다”며 “수도권 제작사는 촬영만 하고 부산시 인센티브를 받아 가고 시는 부산에서 영화가 제작됐다고 홍보하기 좋은 것이고 지역 영화 산업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인 최형두 의원은 “영화 산업의 기술과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서 촬영소 후반 작업 시설은 꼭 필요하다”며 “형식적인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으로 지역 상생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어떤 것이 진정으로 지역을 위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인지 영진위는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옥재 이승륜 기자 littleprince@kookje.co.kr.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획취재지원사업으로 작성됐습니다.
◇ 영진위 부산촬영소 건립 일지 |
일시 |
내용 |
2005년 8월 |
영진위, 남양주종합촬영소 매각대금 940억 원으로 부산촬영소 건립 계획 |
9월 |
안정숙 영진위원장 “전북촬영소 타당성 조사…남양주촬영소 매각 어렵다” |
2009년 10월 |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에 따라 남양주촬영소 부산 이전 |
2012년 2월 |
영진위-부산시 협약, “남양주촬영소 조속히 매각…글로벌 스튜디오 건립” |
3월 |
영진위-시, 부산촬영소 부지 77만6863㎡, 건축 연면적 8265㎡(2015년 12월 준공) |
2013년 10월 |
영진위, 지방 이전 사업 집행금 일부(228만 원) 전용…국정감사 지적 |
11월 |
김의석 영진위원장 국제신문 인터뷰 “부산촬영소는 한국 영화 세계화에 기여” |
2016년 6월 |
기장군-영진위, 기장도예관광힐링촌에 부산촬영소 건립 협약(부지 무상 임대) |
11월 |
영진위, 남양주촬영소 민간에 매각 |
2019년 1월 |
영진위, 부산 강서에 촬영소 추진…“공항과 가까운 곳에 짓자는 배우들 요구 있다” |
12월 |
시-기장군-문화체육관광부-영진위, 부산촬영소 실시협약 변경 |
2020년 1월 |
영진위, 남양주촬영소 폐쇄 1년 만에 운영 재개(민간과 업무협약) |
7월 |
영진위, 부산촬영소 설계 착수 |
2021년 9월 |
영진위, 국토교통부에 부산촬영소 축소를 위한 구체적 질의문 발송 |
※자료 : 영화진흥위원회, 부산시, 기장군 종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