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지방 사정 천차만별인데
- 동일한 정책으로 묶여 획일 규제
- 부산에선 수요·공급 동시에 타격
- 건실했던 지역 7위 신태양건설
- 금융 막히니 적은 금액에 부도나
- 작년 부산협회, 제도개선위 설립
- 새해 조금이나마 침체 벗어나길
전국적으로 건설업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지역의 주택건설업계도 더없이 힘든 상황을 보내고 있다. 불안정한 국가 안팎의 경제 환경, 급변하는 국내 정치,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에 고금리까지 각종 악재가 첩첩산중으로 쌓였지만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지역 인구마저 줄고 있어 중장기 전망도 불투명한 지역 건설업계는 새로운 한 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부산의 종합건설기업인 지원건설 등 11개 계열사를 이끄는 지원그룹 대표이자 대한주택건설협회 부산광역시회장을 맡고 있는 박재복(68) 회장으로부터 지역 주택건설업계의 현실과 전망, 앞으로의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지역 건설업계 상황이 많이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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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복 부산 주택건설협회장은 지역 주택건설업계의 어려운 상황을 전하며 “수요자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 기업의 노력, 시대 요구를 수용한 알맞은 정부 및 지자체의 도시 계획, 수도권과 지방 간 정부 규제 차등 적용 조치 등이 어우러진다면 위기 상황도 극복 가능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
▶한마디로 지역 주택건설업계는 고사 직전의 위기 상황이다. 2022년부터 시작된 실물경기 침체와 고금리 기조로 주택시장 수요가 감소해 미분양이 늘면서 주택건설 업체들의 경영 여건도 악화됐다. 하루하루 숨죽이고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며 버티고 있다.
얼마 전 부도를 맞은 신태양건설을 보면 이 같은 상황을 알 수 있다. 우수한 시공 역량으로 부산에서는 7위에 꼽히는 회사였다. 관급 공사와 민영 공사 모두 탁월했고 건실하게 운영을 해왔지만 금융이 막히니까 얼마 되지 않은 금액 때문에 부도가 났다.
주택시장 수요자는 가계부채 관리에 따른 대출총량제로 묶여 있다. 업계는 얼어붙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로 출구가 막혀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사정은 완전히 다른데도 동일한 정책으로 묶여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지역 경제에 치명타를 안겼다.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타격을 받아 업계가 주택 공급을 위한 사업계획을 세울 수 없고, 존립 문제에까지 직면한 상태다. 주택 공급이 무너지면 향후 또다시 공급 부족으로 이어져 주택가격 상승이 일어나며 이는 또 실수요자에게 큰 어려움을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과거 부산 건설업이 활기를 띨 때도 있었는데.
▶수도권을 제외하면 부산 건설업이 호황이었던 적이 있었나. 솔직히 모르겠다. 지역 기업은 늘 쉽지 않았다. 부산은 대기업이 재건축과 재개발을 통해 대규모로 주택을 공급해 온 특이성이 있다. 지역 업체가 공급하는 주택은 주로 주상복합이었다. 상업지구나 역세권 등 도심 내에서 작지만 알찬 주택을 실수요자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주택가격이 안정적인 수준에서 꾸준히 상향할 때 안정적인 수요와 공급이 유지돼 왔다. 지금은 원가 상승과 금융 조달의 어려움으로 시장이 차갑게 식어 정상적인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이지만 대기업 중심의 환경이었다는 뜻인가. 지원건설과 지원그룹은 어떻게 성장했나.
▶도심 내에서 무주택 서민을 위한 주택을 공급해 왔다. 우리는 큰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기보다 수요자가 꼭 필요로 하는 위치에 실속 있는 주택을 지었다. 초역세권에 소규모 아파트나 원룸을 짓는 식이다. 지역 업계는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대기업 중심의 시장에서 틈새시장을 만들어 가고자 했다. 부채를 최소화하고, 무리해서 물량을 늘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자체 공사와 관급 공사의 비율을 적정하게 유지하면서 사업건전성 확보를 해온 점이 건실한 경영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임대주택 공급에도 적극적이었고, 지금도 추진하고 있다. 건설의 공공성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임대주택이 아니라, 작지만 쾌적한 공간 임대가 필요한 사람들이 찾는 임대주택을 짓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임대 아파트는 고급 아파트를 짓고 남은 자투리땅에 저렴한 자재를 써서 짓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까지 지역 향토기업으로서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주택공급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임대주택 공급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됐나.
▶개인적으로 조경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83년 ‘서울조경건설’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나무를 심고 키워서, 조경이 필요한 현장에 파는 것이다. 송도해수욕장 리모델링 조경, 남구 평화공원, 강서구에 위치한 전국 최초 수목 중앙분리대 등을 맡았다. 조경업을 하면서 도시를 멋지게 만드는 일, 사람이 쾌적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일, 장기적으로 자산이 되는 건축과 환경을 늘 고민하게 됐다. 조경업은 본질적으로 공공성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이 건설업으로 연결됐고 건설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좋은 집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사실 주택공급은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우리나라는 민간이 주택시장에 참여한다.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외면받는 임대주택을 잘 지어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다.
부산시가 청년층 주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공급하는 양질의 저렴한 민간임대주택인 ‘희망더함아파트’도 맡고 있다. 희망더함아파트는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역세권에 건축규제를 완화해 추진한다. 현재 부산 부전역 인근에도 민간임대주택을 짓고 있다. 좋은 건축자재를 써서 최고의 주거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헐값에 지은 저소득층의 주거시설이라는 인식을 싹 바꿔 주거형태의 변화를 선도하려 한다. 현재 남구 대연동에 1500세대 규모로 추진 중인 임대주택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임대아파트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대한주택건설협회 부산시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기억에 남는 성과는.
▶협회 내 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설립했다. 위기에 처한 업계와 기업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사업 중 불합리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대응이 어려운 1인 기업이나 소기업을 지원해 함께 대응한다. 회장 직속기구로 위원회를 구성해 회원사의 목소리를 듣는 열린 공간으로 운영한다.
주택업계의 고질적 어려움으로 꼽히는 감리 제도와 하자소송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만한 방안을 고심 끝에 마련했다. 현행 감리제도에서 모든 감리자는 사업주체가 아닌 사업 승인권자(부산시)가 지정한다. 이때 감리자 지정 기준 및 대금 지급 기준이 일방적으로 감리자에 유리해 문제가 발생한다. 개선안을 통해 승인권자는 감리수행능력만을 평가해 일정 기준 이상 충족된 감리자를 사업주체에 통보한다. 그러면 사업주체가 공개입찰을 통해 선정된 감리자를 승인권자에 통보해 감리자를 최종 선정할 것을 제안했다.
점점 늘고 있는 공동주택 하자소송과 관련해서는 하자보수 비용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법원 판결로 사업주체가 입주자 측에 하자보수 비용을 지급해도, 비용이 실제 하자보수에 투입되지 않고 상당 부분이 법적 ‘성공보수’에 쓰이는 문제가 있었다. 개선안에서는 입주자가 받은 금액을 관할 행정청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하고, 행정청이 하자 보수 관련 비용을 지불하게 했다.
-올해 부산 건설업 전망은 어떤가.
▶수도권과 지방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 양극화가 심화하는 것이다. 전국 상황이 좋아진다는 신호가 일부에서 감지돼도 부산 상황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리가 내려가고 있고, 정부도 시장 활성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새해에는 조금이나마 침체 터널을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상황 극복을 위해 각자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업계는 수요자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차별화된 품질과 설계, 전략적인 마케팅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자체와 정부는 시대 요구에 맞는 도시 계획의 재정립을 통해 개발사업에 대한 수요 창출을 이끌어줄 필요가 있다.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을 구분해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건설은 금융재다. 금융이 묶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부의 전향적인 금융규제 완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