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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서리마을의 이주학 할아버지댁에서 이 할아버지 내외와 막내 아들 부부가 별식으로 '황해 만두'를 빚고 있다.
김성효 기자 ksh@kookje.co.kr |
가족은 항상 즐거울 수 없다. 가족들끼리는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짜증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가족들은 항상 행복하기를 꿈꾼다. 풍부한 대화를 통해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 밝고 귀 밝아 바로 동네 한바퀴 뛰고 오면 즐겁지. 세상에 좋은 일만 기억해도 뭣할텐데 안 좋은 일만 되씹어서 뭣하겠어요. 하루 하루 감사하게 생각하고 사는 거지요."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서리마을에 사는 이주학(83) 김영애(73) 노부부 댁에서는 '노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허리 정도 올라오는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스러운 개 2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손님을 맞는다. 자그마한 슬래브집은 담쟁이덩굴이 외벽을 감싸고 마당에 세워놓은 크리스마스 트리엔 전구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주학 할아버지는 전직 목사, 부인 김 할머니는 전직 유치원장이다. 이들 부부는 자식들을 다 내보내고 노년의 삶을 '즐기고' 있다. 마치 미국의 생태주의자인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을 보는 듯했다.
황해도 출신인 이 할아버지는 해방후 월남해 신학교를 나와 감리교단에서 40년간 목회일을 했다. 할아버지는 지난 82년 부산의 한 교회에서 은퇴식을 하면서 '자연인 복귀 선언'을 했다고 한다.
"저는 이제부터 성경이나 기도는 물론 모든 종교의 형식에서 벗어나 자연인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정직하게 하루 하루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이 곧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할아버지는 기자가 "이 목사님"이라고 부르자 아예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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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목회일을 끝내고 난 뒤 '자연인 복귀'를 선언한 이주학 할아버지가 운동 소일삼아 대자귀질을 하며 환히 웃고 있다. 김성효 기자 |
이렇듯 이 할아버지 가정의 보이지 않는 가훈은 '자유와 자율 그리고 자족'이었다.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7시쯤에 아침 운동에 나서 주변마을 약 6㎞를 달린다. 30여 년간의 습관이다. 그리곤 한 두 세숫대야분의 물을 데워 샤워를 마친다. 낮에는 주로 독서를 하는 데 역사책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집 한구석에 있는 작업실에서 목공일을 한다. 집안의 의자며, 높낮이 조절용 목침, 팔걸이 같은 것은 대부분 할아버지가 만든 것이다.
"대자귀로 나무를 패보면 골프하는 것보다 더 운동이 되고 재미도 있어요." 백발의 팔순 노인이 마치 아이들처럼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부인 김 할머니는 동네 아이들 7명에게 피아노 교습을 하고 있다. 할머니의 부친 고 김석원 목사는 6·25때 북한에서 희생돼 순교자 명부에 올라있다고 한다. '사리원고녀' 출신인 김 할머니는 지난 64년 '유치원장 자격 67호'로 서울에서 오랫동안 유치원장 일을 했다.
김 할머니는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러 와서는 할아버지 방을 더 찾아요. 연이나 활같은 것을 만들어 주니까 아이들이 피아노보다 할아버지와 노는 걸 더 좋아해 큰일이에요"라며 할아버지를 시샘한다.
이들 부부는 세 아들을 두고 있다. 장남 요섭(54) 씨는 현재 경북 구미에서 감리교 교회 목사로 일하고 있다. 차남 만섭(51) 씨는 부산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고, 막내인 희섭(49) 씨는 사진작가다. 희섭 씨 부부는 부모님 집에서 30m쯤 떨어진 바로 이웃에 살고 있다.
이 할아버지 부부의 가정은 '민주적 가정'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는 저녁으로 가족 모두가 '황해 만두'를 빚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커다란 왕만두 피를 기계에서 짜내고, 할머니와 희섭 씨 부부는 만두속을 만두피에 담았다. 부엌일에도 이 집은 남녀가 따로 없었다.
희섭 씨의 부인 안춘희(교사) 씨는 "처음에 결혼해서 놀랐던 것이 밥을 담아 아버님께 먼저 바치는데 당신께서 어른이라고 무조건 먼저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부터 먼저 퍼주라고 말씀하셔서 놀랬어요. 아버님은 지금까지 자식이나 손자에 대해서도 '장유유서'보다는 인생의 친구 같이 대해주신다"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황해도의 판소리인 '서도창'을 아주 잘 한다. 어릴 적 자신의 집에 살았던 머슴에게서 직접 배웠는데 '수심가' '난봉가' '공명가' '배따라기' 등을 두루 익혔다고 한다. "아~~예~~ 두둥 떠나가는 에~" 배따라기의 앞 소절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 할아버지는 가족은 물론 동네 아이들 머리도 잘 깎아준다. 지금도 아들 내외 손자들 모두 할아버지한테 와서 머리를 깎는다. 할아버지는 손주 손녀들에게 어릴 적부터 칼을 다룰 줄 알아야 베이지 않는다며 연장을 겁내지 않고 만지게 했다고 한다.
지원 대학을 놓고 요즘 고심중인 고3인 손자 한범 군은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한테서 연 만들기, 썰매 만들기 등을 배웠고, 할머니한테서는 피아노를 배웠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친구같은 느낌이 들고 늘 감사해요. 두분이 정말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40대 후반 즈음엔 내가 75살까지만 살아도 감사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와서는 건강하게 100살까지 살아야겠다고 목표를 수정했어요. 진실하고 늘 감사하며 사는 것 그 자체가 축복이라 생각해요." 이 할아버지의 말 속에는 감사와 사랑이 녹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