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그룹의 정관계 로비의혹이 서서히 베일을 벗으면서 수면 위로 등장한 박(朴)씨 3명의 행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2대주주인 박형선(59.구속) 해동건설 회장, 부산저축은행과 고문변호사 계약을 맺었던 박종록(59.사법연수원 10기) 법무법인 청림대표변호사, 전문 로비스트 박태규(70대 초반.해외체류 중)씨가 그들이다.
이들 세 명에게는 부산저축은행그룹이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부동산 개발사업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며 사세를 확장하던 2000년대 초중반 은행 측과 처음 인연을 맺었으며, 부실을 떠안고 퇴출위기에 몰린 지난해 발벗고 나서 구명활동을 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셋 중 유일하게 구속된 박형선씨는 호남지역 마당발로 참여정부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해왔고 부산저축은행측 SPC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 관여했으며,박종록 변호사는 청와대와 금융감독원에 탄원서를 내고 관련 인사들을 직접 접촉하는 등 퇴출저지 로비에 매달렸다.
수사초기 해외로 빠져나가 실체가 덜 알려진 박태규씨는 상당한 재력과 인맥을 과시해온 데다 지난해 부산저축은행의 유상증자를 성사시키는 로비력을 발휘했으며 정관계 고위층과 두루 접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호남 마당발' 박형선 회장 = 김양(59.구속기소) 부산저축은행그룹 부회장의 광주일고 동창으로 2003년 부산저축은행그룹 주식 130억원어치를 매수하면서 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은 2003년 7월 박연호(61.구속기소) 회장의 주가조작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적발되자 검찰에 고발되기 전에 차명주식을 매각하기로 하고 김 부회장을 통해 박형선 회장에게 "사례금 44억5천만원을 따로 줄테니 주식 98만주를 장외매수해 달라"고 제의했다.
박 회장은 이에 제의를 받아들였고 단숨에 부산저축은행의 지분 10% 안팎을 보유한 2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박 회장은 부산저축은행이 경기 시흥 영각사 납골당 사업과 전남 신안군 리조트 개발사업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법대출에 관여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건설사를 시공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검찰은 박 회장의 역할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박형선 회장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지난해 재심을통해 면소판결을 받았으며 5.18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는 등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인사들과 교분이 두텁다.
아울러 현 정권 인사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해온 광주지역 실력자로 알려져 그를통해 광범위하게 정관계 로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은 2008년 하반기 광주지방국세청 서광주세무서가 벌인 부산저축은행의 특수목적법인(SPC)에 대한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며 박 회장에게 1억5천만원을 건넨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청와대에 전화' 박종록 변호사 = 박 변호사는 김양 부회장이 지난 2005년 업무상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받을 당시 변호인으로 활동하면서 부산저축은행그룹과 관계를 맺게 됐다.
서울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 등을 지내고 2004년 개업한 박 변호사는 `논문조작사건'의 황우석 박사와 `학력위조사건' 신정아씨의 변호를 맡아 세간에 이름을 알렸으며 지난해 3월까지 우리은행 사외이사를 지냈다.
박 변호사는 지난해 7월 부산저축은행그룹과 고문변호사계약을 맺은 뒤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초 상당한 분량의 탄원서를 금감원과 감사원에 제출하는 등 구명활동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사법연수원 동기인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전화를 하고, 청와대에 직접 찾아가 행정관 등을 만나기도 했으며 삼화저축은행에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김장호 금감원 부원장보와도 접촉한 사실이 알려졌다.
박 변호사는 5~6개월간 월 200만원에 고문변호사 계약을 맺은 데 따른 통상 업무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검찰은 박 변호사를 통해 정치권과 금융당국에 로비가 이뤄졌는지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변호사는 통상적인 자문료 외에 부산저축은행 측으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의혹도 있어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의문의 거물급 로비스트 박태규씨 = 부산저축은행그룹의 정관계 로비의 뇌관으로 불리며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인물로 알려졌으나 해외체류 중이라 지금까지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70대 초반으로 평소 건설회사 회장 명함을 들고 다녔으며 여야 정치권을 막론하고 전방위로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씨는 저축은행 비리가 불거지자 아들이 있는 캐나다로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박씨가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에서 500억원씩1천억원을 부산저축은행에 증자하도록 했고 그 대신 (부산저축은행은) 박씨 소개로 포항에 있는 건설회사에 대출해 줬는데 여기에 여권의 유력정치인이 개입돼 있다"고주장하기도 했다.
박씨는 증자 성공 대가로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6억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정관계 로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박씨의 신병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박씨를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캐나다 수사당국과 공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