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수사권 조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30일 두 기관이 처한 상황과 입장을 반영이라도 하듯 세계검찰총장회의에 참석한 김준규(왼쪽) 검찰총장과 제45회 청룡봉사상 시상식에서 밝은 표정으로 웃는 조현오 경찰청장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연합뉴스

- 검찰 수뇌부 잇단 대책회의
- 대검차장 "동요하지 말라"…부산지검 "경찰 통제 안될 것"
- 일부 평검사도 사의 표명

- 경찰 "대등한 수사기관으로"

- 법조계 "양측 충분히 협의를"

- 시민단체 "국민에 신뢰 주길"

검찰은 검사의 수사지휘권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준규 총장은 30일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로 출근하지 않고 오전 10시부터 열린 제4차 유엔 검찰총장회의 개회식장인 삼성동 코엑스로 직행해 예정대로 개회사를 하고 회의를 주재했다. 김 총장은 이날 수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데 대해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며 사퇴 의향을 시사했다. 김 총장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 대검과 일선 검사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현재는 국가를 대표해서 세계검찰총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다음 주 월요일(7월 4일) 구체적인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총장 사퇴 기정 사실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찬성 175명, 반대 10명, 기권 15명으로 가결됐다. 연합뉴스

법무부는 이날 대변인 명의의 입장 표명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면서 "앞으로 대통령령 제정 과정에서 애초 합의정신이 충실히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며 검찰도 동요 없이 본연의 업무에 더욱 매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사의를 표명했던 대검 참모진 중 김홍일 중앙수사부장과 신종대 공안부장은 오전 9시 박용석 대검차장 주재로 평소대로 조간회의를 열었으며, 조영곤 형사·강력부장과 정병두 공판송무부장은 회의장에서 김 총장을 수행했다. 박용석 대검차장은 오전 10시 과장급 이상 부장검사들이 참가하는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해 "동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김 중수부장 등 대검 참모진은 뒤이어 서울 시내 모처에서 이귀남 법무장관과 긴급 회동을 갖고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을 협의했으며, 이 장관은 전날 표명한 집단 사의를 거둘 것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지검을 비롯해 이날 대부분의 일선 검찰청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며 청사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검사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부산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경찰에게 수사권을 부여하게 되면 나중에는 통제가 안 된다. 결국 국민만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평검사는 검사장들의 줄사퇴에 동조해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공주지청 평검사 2명은 이날 옷을 벗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의를 표명한 공주 지청의 최모 검사는 검찰 내부전산망인 '이프로스(e-pros)'에 "풍전등화의 위기입니다. 죽기를 각오할 용기 없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집단사의에 청와대 여론 냉담

하지만 검찰은 정치권을 비롯해 여론이 자신들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데 크게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대검 간부들이 수사권 조정에 항의해 줄사의를 표명했지만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조직 이기주의' '검찰이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자 크게 낙담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이처럼 검찰에 대한 국민의 차가운 시선은 이번 줄사의 표명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격앙된 검찰과는 달리 경찰은 다소 느긋한 입장이었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를 검찰의 반격에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경찰청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통과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대통령령 제정과정에서 검찰과 상호 존중하며 바람직한 수사구조를 만들고자 원만하게 협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양 기관이 머리를 맞대 논의할 것을 주문했다. 부산변호사회 장준동 회장은 "검찰에 아쉬운 점이 있지만 향후 국무회의에서 수사지휘권과 관련된 사항을 충분히 협의해 결정하면 된다"며 "집단행동보다는 국민에게 필요한 제도가 무엇인지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역시 양측의 내부 개혁을 촉구하며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랐다. 부산경실련 차진구 사무처장은 "불만이 있더라도 검찰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입법권을 받아들이고 내부 자정을 통해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