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사벨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6월 2일 모의 수능시험을 치르고 있다. 국제신문 DB

- 일반계고 학생·학부모 반발, 고교등급제 허용 여부 논란
- "등급제 적법 의미 아니다" 교과부 확대 해석 경계
- 원고측 "대입 공정성 무시" 대법원에 상고 검토

고려대가 2009년 수시모집에서 '고교등급제'를 적용해 지원자들의 내신 등급을 보정한 것은 위법이 아니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오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2009학년도 고려대 수시 2-2 일반전형에서 외고 등 특수목적고 학생들이 내신이 더 좋은 일반고 학생을 제치고 무더기 합격하자 떨어진 수험생 24명의 학부모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항소심에서 1심은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으나 2심은 이를 뒤집었다. 이를 두고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이른바 '3不'(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정책 중 하나인 고교등급제를 사실상 허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분분하다.

■논란의 발단

2008년 10월 당시 2009학년도 고려대 수시 2-2학기 전형에서 외고 등 특목고 학생들이 내신이 더 좋은 일반고 학생들을 제치고 대거 합격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수시 2-2학기 1단계 전형은 학교생활기록부 성적으로만 뽑게 돼 있는데 내신등급이 좋은 일반고 학생들은 떨어지고 등급이 나쁜 특목고 학생들이 합격한 경우가 속출했던 것이다. 부산지역의 한 진학담당 교사는 "당시 일반고 1등급은 떨어지고 특목고 5, 6등급은 대거 합격하는 비합리적인 일이 일어났지만 대학 측은 진학교사조차 이해할 수 없는 '상수'를 내세워 점수를 보정했다고만 설명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심지어 일부 외고의 경우 한 학교에서 무려 100명이 넘는 합격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는 고교등급제에 대한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결국 2009년 3월 탈락 학생 19명이 창원지법에 민사소송을 냈고, 이후 원고에 5명이 가세했다.

소송을 낸 수험생들은 고려대가 '평균이 높고 표준편차가 작은 소위 명문고를 우대해 출신 지원자들의 내신 등급을 큰 폭으로 상향 조정했다'고 주장했다.

고려대가 지원자들의 내신 성적을 그대로 활용하지 않고 자체 개발한 계산방식에 따라 2단계에 걸쳐 성적을 보정해 합격자를 뽑은 것은 사실이었다. 고려대 측은 "당시 보정으로 특목고 학생들의 내신등급이 상향조정되기도 했지만 일반고 학생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등급 상향의 효과를 봤다"며 "성적 보정은 고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과목에 대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고교등급제 인정?

1심은 "고려대가 고교등급제를 적용해 특목고 출신을 우대한 것이 맞다"고 판결했지만 2심은 "고교 간 등급제를 적용한 것이 아니라 같은 고교 내 여러 과목 지원자 간 유불리를 보정한 것"이라며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부산고법 창원 민사2부는 이날 판결에서 "이 사건과 관련 있는 전형 1단계는 입학전형에 관련된 학교의 재량이고, 고등교육법령 등 취지에 비춰 현저하게 불합리하거나 부당해 재량권을 일탈 내지 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특목고 출신을 우대하는 점수 보정 방식이 "고교등급제가 아니다"라는 요지의 이번 법원 판결은 3불 정책 중 하나인 고교등급제를 허용한다는 의미일 수 있어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소위 명문대를 중심으로 고교별 학력 차를 점수에 반영하는 '고교등급제' 적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 대학진학지원센터 권혁제 교육연구사는 "입학사정관 전형 등 대학의 재량권이 계속 커지는 추세에서 고교별 학력 차를 점수에 반영하는 사례가 더욱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수험생과 학부모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선발 기준 제시를 원하는데 대학 자율이라는 명목 하에 이 같은 요구가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상고심이 남아 있어 섣부른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 "이번 판결은 고교등급제가 적법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반발 확산… 고려대는 환영

원고 측은 반발하고 나섰다. 소송을 주도했던 원고 측 박종훈 경남교육포럼 대표는 "이번 판결은 대학 입시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라는 국민적 여망을 무시한 판결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변호사와 의논해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지역의 한 진학 담당 교사도 "문제가 없었다면 고려대가 이 점수 보정 방식을 계속 사용했을 텐데 이후 폐지한 것을 보면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 꼴인데도 법원은 도리어 대학 편을 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고려대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 대학 서태열 당시 입학처장은 "지난 2월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에서 상수값도 다 공개하고 논리적 통계를 가지고 고교등급제를 적용해 특목고 우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 채택된 것 같다"며 "대학이 과학적으로 잘 해보려고 했던 것인데 오해가 생겼다. 앞으로 많이 오해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