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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부산 갈맷길 2.0 <5> 슬로시티로 가는 길

닿는 곳 어디든 환상의 걷기 코스…잘 엮어 꿰어야 보배

  • 박창희 기자 chpark@kookje.co.kr
  •  |   입력 : 2011-10-31 20:12:06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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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슬로시티 협력도시인 부산은 타지역에서 부러워하는 걷기 좋은 코스를 많이 갖고 있다. 부산 금정구 회동수원지 둘레길을 도보꾼들이 유유자적 걷고 있다. 가운데 산봉우리가 오륜대다.
- 조선통신사가 들고 나던 부산포, 경부선과 부관연락선의 사연
- 1797년 신선대에 온 영국해군…곳곳 명소에 이야깃거리 넘쳐
- 세계 첫 슬로시티 협력도시 장점, 테마 걷기로 승화시켜 발전시켜야

"부산만큼 걷기 좋은 환경이 있나요? 이것을 슬로 트래블(slow travel)로 연결시켜 보세요.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을 겁니다."

"'부산을 즐기는 12가지 방법' 식의 안내 리플렛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해운대 주요 호텔 로비에 비치해 두면 관광객들이 좋아할 겁니다."

"주제가 있는 길, 즉 테마코스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모녀(母女)의 1박 2일 부산투어, 달빛 걷기, 남항 묘박지의 은파(銀波) 즐기기, 낙조와 철새들과의 동행, 걸어서 만나는 영화도시 등 좋은 테마는 널려 있어요. 주제가 있으면 기억에 오래 남고 다시 찾게 됩니다."

지난달 24일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부산의 생태관광도시 가능성과 방향'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제기된 이야기들이다. 부산시와 신라대 부산학센터가 주최하고 한국슬로시티본부가 주관한 행사였다. 이날 행사의 핵심 키워드는 '걷기'였다. 세계 최초의 슬로시티 협력도시인 부산이 가야할 길도 거기서 찾을 수 있었다.

■느린 삶의 행복

토론회 말미에 손대현 한국슬로시티본부 이사장(한양대 명예교수)이 의미심장한 말을 추가했다.

"슬로시티는 철학적 개념입니다. 성장이 아니라 성숙, 속도가 아니라 방향, 경쟁이 아닌 조화, 외면보다는 내면을 지향합니다. 궁극적으로 삶 자체를 즐기자는 운동이고, 사람답게 살자는 운동이지요. 그런 면에서 부산은 슬로시티로 발전할 좋은 조건들을 두루 갖췄습니다. 부산의 슬로건부터 바꿔 보세요. 해양수도나 다이내믹도 좋지만, '푸른 부산'이 어떨까요. 그렇게 시격(市格)을 높여가야 시민들이 행복해집니다."

함께 자리한 한국관광공사 영남권협력단 박철범 차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부산은 국내 대표적 슬로시티인 신안 증도, 전남 청산도, 순천만 등의 장점을 모두 갖춘 도시입니다. 가진 게 많아 정리(체계화)만 하면 됩니다. 부산에서는 일상 자체가 관광이 될 수 있어요. 해운대, 광안리, 남포동, 자갈치 어디를 가도 좋지 않습니까. 코스와 주제, 볼거리를 엮어 홍보만 제대로 하면 될 겁니다."

■부산은 테마 걷기의 보고

영도 절영해안산책로.
부산은 길의 도시다. 평화의 사신인 조선통신사가 영남대로를 거쳐 부산포에서 한일해협을 건넜다. 경부선의 첫 경적과 부관연락선의 첫 뱃고동이 1905년 부산에서 울려 퍼졌다. 경부고속도로와 KTX의 시·종착지도 부산이다. 게다가 산과 바다, 강, 골목 곳곳에 갈맷길이 근·현대사의 걸걸한 이야기를 품고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다.

현장을 더듬어보면 부산에는 재미와 의미(스토리텔링)를 골고루 갖춘 길들이 의외로 많다. 길 전문가 또는 트래블 리더들이 소개하는 코스만도 수십 곳에 이른다. 남구 이기대 길과 영도 절영해안산책로, 회동수원지 길, 해운대 문탠로드와 청사포 길, 송도 볼레길, 수영강 산책로 등은 누가 선정하든 인기 순위에 들어가는 길들이다.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스토리를 가진 곳도 적지 않다. 그 중 한 곳이 남구 오륙도~자성대 중간쯤에 있는 신선대 둘레길이다. 코스는 불과 1.9㎞로 짧지만, 솔깃한 이야깃거리가 많다. 운치있는 산책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입이 쩍 벌어진다. 망망대해에서 풍경으로 잦아든 오륙도와 조도, 그 사이의 부산항 입구, 신선대·감만·자성대 부두의 웅장함과 그곳에 펼쳐진 컨테이너 바다는 놀라움을 넘어 벅찬 감회를 안겨준다. "여기가 부산이로군!"하는 탄성이 절로 터진다.

신선대 발 아래엔 해군작전사령부 부두가 있어 운 좋으면 미 항모까지 구경한다. 이곳에서 신선처럼 살았다는 최치원 전설과 몇년 전 영국 앤드류 왕자가 왔다 간 사실까지 알게 되면 발걸음이 신통방통해진다. 1797년 영국 해군 소속 브로우턴 함장이 한국에 첫 발을 디딘 곳이 신선대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큰 코에 푸른 눈을 가진 '외계인'같은 영국인들한테 한나라, 청나라, 왜국, 몽고어로 이런 저런 질문을 해 보았으나 모두 알아듣지 못했다'는 구절이 나와 있다.

이런 코스와 이야기들이 바로 '부산을 즐기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눈길 끄는 에코 도시락

부산시도 서서히 슬로 트래블에 대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한국슬로시티본부 후원으로 '다시 보는 부산! 에코 도시락(Eco 都市樂)' 상품을 선보여 외지 관광객 310명을 모았고, 올들어서도 500여 명을 불러들였다. '에코 도시락'은 서울에서 출발하는 1박 2일 상품으로 가격은 6만9000원이다. 첫날 일정은 사하구 감천동 태극도 마을→낙동강하구 에코센터→다대포 아미산 전망대→자갈치시장→ 문탠로드(자유)이며, 둘째날은 누리마루 APEC 하우스→동래파전 만들기→범어사 구경이다. 전체적으로는 점(點) 관광의 성격이 강하다. 이를 선(線) 관광으로 바꾸어 상설화 하는 게 과제다.

부산시가 지난 연말 외지 여행객 284명을 대상으로 벌인 장소별 만족도 설문조사에서는 누리마루가 59명(21.4%), 감천동 태극도 마을이 53명(19.2%)으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두 곳 모두 약간의 '걷는 재미'가 있는 장소라는 사실이 주목된다.

부산시 관광진흥과 최나리 씨는 "연령별 타깃을 20~40대로 잡아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갈맷길 슬로 코스를 개발해 공정여행, 오감여행이 되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 부스럭 테마걷기 8곳 확정

- 기차소리길·포구길·둘레길·역사로… 부스럭~이야기 길

해운대 청사포 오솔길에서 바라본 청사포.
부산에 '부스럭~ 이야기 길'이 탄생한다. 운치있는 길을 걸으면서 보고 듣고 추억을 가슴에 새기는 걷기 관광상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부산시 지원으로 '남해안 관광활성화 사업'을 진행해 온 부산관광컨벤션뷰로는 2년 간 연구조사와 답사 끝에 부산의 걷기 명소 8곳을 확정, 리플렛과 안내책자 제작에 들어갔다고 31일 밝혔다.

코스는 모두 8곳. △해운대 4포- 기차소리길 △아름다운 기장1- 등대길 △아름다운 기장2- 포구길 △영도 남항길- 개항마루길 △봉래산 둘레길- 하늘마루길 △영도 갈맷길 △동래 역사로(路) △허왕후 신행길이 포함됐다. 코스별 길이가 8~12㎞이며 3~5시간이면 걷는다.

각 코스에는 다양한 '로드 스토리(Road story)'가 담긴다. 신화나 전설에서부터 문학, 영화, 음식, 등대, 기차소리까지 하나 하나가 흥미롭다.

미포~청사포~구덕포~송정포를 잇는 '해운대 4포길'에선 기차소리를 테마로 잡아냈다. 탁 트인 바다와 철길을 벗하며 걷다 기차소리를 들으면 추억이 되살아난다. 미포오거리를 걷게 되면 바다로 이어진 미포삼거리 쪽으로 슬쩍 들어가 본다. 철도 건널목이 있다. "땡~땡~땡~" 소리와 함께 차단막이 내려오고 안내원의 흰 깃발을 펄럭인다. 하지원과 설경구 주연의 영화 '해운대'를 여기서 찍었다. 거대한 해일이 밀어닥치는 장면이 그것이다.

기장 등대길로 들어서면, 젖병등대~닭벼슬등대~월드컵등대~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등대(마징가젯) 등 갖가지 조형 등대를 만난다. 바닷가 등대 전시장이 따로 없다. 기장 연화리 앞바다의 젖병등대(5.6m) 외벽에는 어린이와 아기 144명의 손과 발 도장이 찍힌 타일을 붙여놓았다. 출산 장려 메시지다.

영도 남항길의 숨은 이야기는 '역사적'이다. 전국 유일의 수리 조선소 길이 있고, 일본에서 들어온 오뎅(어묵)이 이곳에서 전파돼 한국 오뎅의 시발지기도 하다. 박정희 소장과 육영수 여사가 맞선을 본 곳도 남항 근처다. 한국전쟁 때 육 여사는 남항동 세관장 집 2층에 세들어 살다 영도다리 옆 다방에서 박정희 소장과 맞선을 보았다. 영도다리 옆 커피숍에는 당시 두 사람의 처지와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사진과 유물이 남아 있다. 길에 감춰진 이야기가 끝도 없이 흐른다.

이번 사업의 실무 책임자인 도보여행가 홍성권 씨는 "길과 이야기, 체험거리를 엮어 새로운 형태의 슬로 트래블을 모색했다"면서 "잘 개척하면 부산 관광의 블루오션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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