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대변리 서암마을의 젖병등대가 '출산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사진 명소로 부각되면서 관광객들이 2차 스토리텔링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 기장지역 해안가 따라 각양각색 등대 늘어서
- 다산 상징된 젖병등대, 1년새 명물된 야구등대…인근 마을 효자 노릇

- 역사적 의미 담긴 등대, 부산 곳곳 산재돼있어 스토리텔링 소재 풍성
- 용두산 정상 부산타워, 등대화 프로젝트 진행

"아기 갖기 원하시는 분, 젖병등대에 가서 기도해 보세요.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부산 기장군 대변리 서암마을 방파제에 세워진 젖병등대가 화제를 낳고 있다. 등대 표면에 예쁘게 조각된 아이의 손과 발에 손발을 맞추고 기도하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거다. 실제 '효험'을 봤다는 사람도 있다. 부산 해운대에 사는 회사원 윤보한(37) 씨 부부는 "젖병등대에서 기도한 뒤 1년만에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고 전했다. 윤 씨는 이 사실을 부산관광컨벤션뷰로(이하 컨벤션뷰로) 측에 알려 득남을 자축했다고 한다.

■'신통한' 젖병등대

컨벤션뷰로와 부산해양청이 젖병등대를 세운 건 2009년 9월. 젖병 이미지를 살려 높이 5.6m의 등대 상단부에 젖꼭지 모양을 만들고, 몸통 부분엔 어린아이 114명의 손과 발을 핸드 프린팅하여 도자기로 구워 붙였다. 하단엔 참가자들의 실명도 새겼다. 출산율 국내 최저 도시인 부산의 고민을 반영해 다산과 풍요의 메시지를 담은 조형 등대였다.

이 젖병등대가 서서히 효자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세계인구총회 2013년 행사를 부산으로 유치하는 데 한몫을 했고, 사진동호인들에겐 촬영 명소로 부각됐다. 무엇보다 아기를 원하는 부부들에게 '기도발'이 먹힌다는 소문이 돌면서 젖병등대를 찾는 젊은 부부들의 발길이 크게 늘었다.

컨벤션뷰로 최부림 홍보실장은 "처음엔 우리도 긴가민가 했는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런 게 방문객이 만드는 2차 스토리텔링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최근엔 아빠와 엄마가 각각 기장의 특산물인 붕장어와 미역을 먹고 젖병등대를 다녀가면 순산(順産)한다는 이야기도 퍼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야구등대도 '클린 히트'

기장 칠암의 야구등대.

기장 칠암 방파제에 세워진 야구등대도 클린 히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을 기념해 세운 야구등대는 방망이 형태의 등대 옆에 글러브와 야구공을 배치해 이색 볼거리를 제공한다. 글러브 안에는 이대호, 고영민, 정근우 등 베이징 올림픽 당시 우승 주역들의 사인이 전시돼 있다.

지난해 11월 야구등대가 들어선 후 칠암마을에는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함보용(66) 칠암어촌계장은 "요즘 주말이면 외지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200~300명씩 찾아온다"면서 "이들 상당수가 회를 먹거나 건어물을 사 가기 때문에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바람이 있다면 이곳에 부산 출신인 추신수 선수의 동상을 세우거나, 방파제 이쪽 저쪽을 잇는 구름다리를 놓아 볼거리를 확충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야구등대가 들어선 후, 어민들은 선착장과 방파제 주변을 수시로 청소해 어촌환경도 개선됐다. 컨벤션뷰로 측은 어민들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내년 초엔 야구등대에서 '롯데 우승 기원 고사'를 지내는 등 몇가지 이벤트를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효자 노릇하는 등대

기장지역 해안가를 걷다 보면, 기기묘묘한 등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2000년 이후 로봇 마징가제트, 장승, 연꽃, 거북, 고래, 차전놀이, 거대한 파도, 상어 이빨 박제, 바람에 펄럭이는 돛, 심지어 젖병, 야구 방망이까지 다양한 형태의 등대들이 속속 들어섰다. 모양도 모양이지만 색깔 역시 흰색 일색에서 빨강, 노랑, 파랑, 주황, 검정 등으로 변주되고 있다. 행색이 달라지면 행동, 인상도 바뀌는 법. 등대들의 변신 퍼레이드가 화제를 낳으면서, 자연스럽게 '부산=등대도시'란 이미지가 형성되고 있다.

부산에 있는 등대는 총 700여 개. 감만동의 제뢰등대(1905년 건립, 부산 최초), 태종대 등대(1906년, 최초 유인등대), 오륙도 등대(1937년, 부산항 수호신), 가덕도 등대(1909년, 러일전쟁 현장)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은 등대가 널려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스토리텔링은 약한 실정이다.

등대 관련 사업을 지원해 온 부산해양청 해양교통시설과 한창수 주무관은 "등대는 해양문화 확산과 관광자원 개발, 도시 이미지 만들기에 안성맞춤인 콘텐츠"라면서 "보다 적극적인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부산해양청은 올해 가덕도 등대 해양학교, 체험교실, 편지공모전, 태종대 등대 see & sea 갤러리 운영 및 야외 음악회등의 사업을 펼쳐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부산타워 희망의 불빛

부산시와 부산해양청, 컨벤션뷰로가 함께 추진 중인 '용두산 등대 희망 프로젝트'도 관심거리다. 용두산 꼭대기의 부산타워에 등명기를 달아 등대 기능을 부여, 등대도시 부산의 브랜드를 확보하고 관광자원화 한다는 게 프로젝트의 골자. 1973년 부산타워 건립 당시 등대로 설계됐고, 등명기를 달 경우 높이 120m의 '매머드 등대'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높이 120m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 중동과 유럽에 등대 기능이 부여된 랜드마크성 초고층 시설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으나, 사업은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등명기는 부산타워 전망대 위 보개탑에 설치키로 했고, 예산도 1억 원이 확보됐다"면서 "빠르면 내년 2월께 등대가 켜질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타워 강석환 대표는 "전망대 위에 설치하기 때문에 관람에 지장이 없고, 오히려 용두산 스토리텔링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용두산 등대가 원도심의 활력을 불어넣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등대도시 상징화 작업

- 문학작품화 · 축제로 상징성 키워야
- 등대 주변에 시비 세우고 기획시집 발간 고려해볼 만
- 등대 이어 걷기·등대 체험 등 특화된 축제 개최 계획

부산관광컨벤션뷰로가 제작한 등대 관련 기념품들.

등대가 부산의 대표적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이 의문을 안고 부산관광컨벤션뷰로(이하 컨벤션뷰로)는 '등대도시 이미지 상징화' 작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2009년 부산해양청과 협약을 맺은 후 젖병등대, 야구등대 같은 히트작을 만들었고, 등대형 관광안내 데스크 제작, 등대 캘린더 제작(이상 2009년), 등대 세미나 개최, 태종대 등대 우체통 설치, 등대 기념품 제작(이상 2010년)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컨벤션뷰로 측은 조만간 젖병등대와 야구등대 주변에 우체통을 겸한 포토존도 설치키로 했다.

일각에선 '부산을 등대와 매치시키는 전략이 타당한가'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컨벤션뷰로 김비태 사무처장은 "등대가 아니라면 어떤 것을 갖고 부산을 외국에 내세우고 팔아먹을 수 있나? 콘텐츠만 가꾸면 등대가 충분한 대안이 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등대가 갖는 속성, 즉 희망, 의리, 믿음, 배려, 무뚝뚝함 같은 것이 부산사람들의 특성과 어울리고, 상징화 사업을 해 보니 효과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풍차 하면 네덜란드, 싱가포르 하면 머라이언이 떠오르듯, 등대 하면 부산이 떠오르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서울시가 해태상(해치)을 대표 상징물로 내세운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나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보다 와닿는, 더 강력한 등대 콘텐츠를 만들 것을 주문한다. 등대 콘텐츠를 키우는 방안으로는 문학적 접근과 이벤트를 통한 홍보 등이 거론된다.

'육지에서 보는 등대는 허수아비 같지만/ 해상에서 보는 등대는 아버지 같다/ 아버지가 왜 이런 데서 나를 맞으실까/ 실은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는 의중(意中)의 말/ 그 말씀은 하시지 않았다'(이생진의 시 '등대와 아버지')

가령 이런 시가 등대 앞에 걸려 있다면, 관광객들은 등대로부터 뜻밖의 감동을 얻는다. 등대 투어 가이드로 활동한 바 있는 동길산 시인은 "등대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만들어지면 다양한 형태의 홍보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면서 "등대 현장에 시판 또는 시비를 세우거나, 부산의 다양한 조형 등대를 소재로 한 기획시집 발간도 검토해 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등대축제 역시 놓칠 수 없는 콘텐츠다. 축제를 연다면 조형 등대가 즐비한 기장군 연화리~칠암 사이의 해안이 적지로 꼽힌다. 프로그램은 등대 이어 걷기, 등대 체험, 사진전, 등대 시 발표회, 문화공연과 함께 지역특산물 판매 및 시식회 등을 마련할 수 있다. 컨벤션뷰로 측은 "우리도 등대축제를 생각하고 있다"면서 "부산해양청과 협의가 되면 아마 내년 봄쯤엔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 끝 -


부산관광컨벤션뷰로·국제신문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