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부산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10> 부산의 인물들

그들이 남긴 위대한 정신이 '부산다움'을 규정한다

  • 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
  •  |   입력 : 2012-03-13 19:13:20
  •  |   본지 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3일 부산 금정구 구서나들목 만남의 광장 끝에 있는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 동상이 주차된 차량들에 둘러싸여 있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 저항

- 여성의 몸으로 항일 무장투쟁 참여…독립운동가 박차정

◇ 용서

- 친일파 아들 불구, 한국 농업사에 큰 획…농업학자 우장춘

◇ 화해

- 만취 일본인 구하고 타국서 목숨 잃은 의로운 청년 이수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기억하기 위해 사람들은 상징을 만든다. 그마저도 기억에서 잊혀져 간다.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면 거론되는 안용복이 부산 출신임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누구를 기억하고 있는가,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 동상을 세우고, 도로에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왜 동상이 세워졌는지에 대한 관심은 고사하고 어디에 있고 누구인가에 무관심하다.

그러한 인물 가운데 일본과 밀접한 세 사람이 있다. 일제 강점기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 해방 후 한국과 일본에서 농업학자로 명성을 얻었던 우장춘 박사,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제 목숨을 바친이수현 의사이다. 그들의 삶에서 저항과 화해, 용서의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박차정 우장춘 이수현을 기억하며

   
동래구 온천동의 우장춘 기념관. 국제신문 DB
경부고속도로의 시작이자 끝인 부산 금정구 구서나들목 만남의 광장 끝에 외롭게 서있는 동상을 기억하는가. 도로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작은 표지판만 있는 박차정 의사 동상이다. 13일 본지 취재진이 둘러본 결과, 광장 주차장의 차들이 동상을 에워싸 시민들이 동상에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박 의사는 동래여고의 전신인 일신여학교 출신으로 항일 무장 투쟁을 하다 1939년 중국 장시성 곤륜산 전투에서 다쳐 광복 바로 한 해 전인 1944년 눈을 감았다. 박 의사의 생가는 동래구 칠산동 동래고 맞은편에 있으며 훈장을 비롯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청소년 교육을 위한 '뮤지컬 박차정'이 2008년부터 공연되고 있다.

부산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지만 아픈 과거사를 간직한 우장춘 박사가 있다.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그를 기리기 위해 2000년 부산대와 금강식물원을 잇는 우장춘로가 준공됐다. 도로명에 사람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그의 개인사는 조선의 불행한 역사를 반영한다. 그의 부친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했다. 친일파의 자손이 한국 농업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의 비극이다.

일본에서 농업학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비난도 받았다. 그러다가 1950년 한국 정부 초청으로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을 맡아 일본에 의존하던 채소를 자급자족하는 데 성공했다. 강원도의 감자, 제주도의 감귤 재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1999년 동래구 온천동에 우장춘 기념관이 세워졌다. 우장춘로를 달리는 부산 시민 대부분이 우 박사 부친에 얽힌 친일과 우 박사가 보여준 한국에 대한 헌신 사이의 모순을 알지 못한다. 도로의 어느 곳에도 드라마틱한 우 박사에 관한 안내가 없다.

울산에서 태어났지만 초·중·고교 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 의사가 있다. 그는 2001년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만취한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선로에 뛰어내렸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의 모교인 부산 낙민초등학교와 내성고교에는 흉상(2004년)과 추모비(2001년)가 각각 건립됐다.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에도 추모비가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그가 숨진 1월 26일 매년 추모 행사를 열고 의로운 죽음을 기리고 있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그에 대한 기억이 더 뜨거운 것 같아 안타깝다. 일본에서 영화 '너를 잊지 않을꺼야'를 제작하는가 하면 성금을 모아 '이수현아시아장학회'를 설립해 일본에 유학온 아시아 학생들 100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난해에야 10주기를 기념해 '이수현의인문화재단'를 설립하는 모임이 이루어졌다.

■변방에서 그들을 만나다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이수현 추모비.
부산은 해방과 6·25전쟁 이후 귀환 동포와 팔도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다. 그들이 잠시 머물다가 떠나간 곳이기도 하다. 한때 제2의 도시였던 부산은 근대화 과정에서 불균형 발전을 거치면서 이제 지방 대도시 중 하나에 불과하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라는 말은 부산으로서는 뼈아프다. 누구를 기억해야 하는가는 초라해진 부산의 자화상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이기도 하다. 부산만의 인물이 아니라 한국의 인물로 기억되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부산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부산의 인물 역시 문제가 있다. 부산의 인물을 기억하는 일은 부산 사람의 도리이자 의무다.

■용서와 화합의 부산 정신

지역의 인물은 태어난 곳뿐만 아니라 활동의 무대로 평가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상징적으로 기억되는 인물은 부산의 정체성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가깝고도 먼 일본과의 관계에 견줘 부산의 세 인물을 조명해 보았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부산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부산이라는 지명도 일본인들이 접근하기 좋은 부산포에서 유래됐다. 원래 부산은 동래가 중심이었지만.

부산의 역사에서 일본의 지정학적 의미는 지리적 거리와 심정적 거리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부산의 인물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 친일과 애국의 모순,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가교를 잇는 세 사람은 부산의 숙명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기억은 죽은 자를 부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잊혀진 그들을 기억함으로써 부산의 자부심과 부산인의 긍지를 부활하는 작업이다. 그래야만 구석진 곳에 외롭게 서 있는 그들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다.


# 부산이 기억해야 할 또다른 부산인들

- 세상 낮은 곳부터 돌아본 따뜻한 인류애의 상징들

   
장기려 박사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산의 인물은 수없이 많다. 불의에 저항하고,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려는 부산 사람의 기질은 인류애로 승화한다.

성산 장기려 박사는 평안북도 출신이지만 부산에서 활동한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다. 장 박사는 김일성종합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6·25전쟁 때 월남해 서울대, 가톨릭대, 부산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1951년 부산에 고신의료원 전신인 복음병원을 설립해 피란민을 치료하는 등 빈민 치료에 애썼다. 부와 명예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들을 위한 의사로 귀감이 되고 있다. 1995년 고신의료원 옥상에 있는 66㎡(20평) 사택에서 일생을 마감한 일화가 전해진다. 국제신문과 부산과학기술협의회는 장기려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매년 '성산 장기려상'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지난해 장 박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동구 수정동에 '장기려 박사 기념관'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31일 부산대병원에 '장기려관'이 문을 열었다.

   
이태석 신부
부산 출신의 이태석 신부도 있다. 인제대 의대를 나와 광주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사제의 길을 걸었다. 2001년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로 가서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의료 봉사는 물론 학교 건립, 음악 동아리 같은 봉사 활동을 펼쳤다. 사제, 의사, 음악인으로 벅찬 일을 해서 일까. 2010년 4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로 우리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부산 시민들은 지난해 1월 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올해부터 '이태석 봉사상'을 시상하고 있다.

   
하 안토니오 몬시뇰
넓은 의미에서 지난해 6월 명예부산시민이 된 독일 출신의 하 안토니오 몬시뇰도 부산의 인물에 포함될 수 있다. 그는 1959년 부산 남구 우암동 동항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해 한독여실(현 부산문화여고)과 사랑의집(현 오순절 평화의 마을)을 세워 인재 양성과 가난한 사람 돕기에 일생을 바쳤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설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은 '인물로 만나는 부산정신 1, 2' 강좌를 개설해 시민들에게 이들의 삶과 정신을 교육하고 있다. 강좌에서 다루는 부산의 인물은 ▷노무현 대통령 ▷최성묵 목사 ▷박차정 의사 ▷아동문학가 이주홍 ▷동래야류 탈 장인 천재동 ▷투수 최동원 ▷먼구름 한형석 ▷금당 최규용 ▷산수 이종률 ▷소설가 김정한 ▷ 독립운동가 최천택 ▷성산 장기려 박사 등이다.


공동취재=이동일 일상생활연구소 사무국장·부산대 사회학 박사
국제신문·대안사회를 위한 일상생활연구소 공동기획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3. 3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4. 4“끝내 알 수 없었던 어머니 마음…그 알 수 없음이 인간이죠”
  5. 5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6. 6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7. 7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8. 8“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9. 9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10. 10해군 3600t급 디젤잠수함 ‘서희함’ 진수
  1. 1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2. 2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3. 3李 “집값 놀라울 정도로 하락…통계 제대로 알려야”
  4. 4정계 “지역언론 독립·공공성 훼손없게 계속 관심을”
  5. 5국힘 신임 부산행복연구원장에 오경은 전 구의원
  6. 6시의회 상임위 제한 폐지 논란일자 결국 심사 보류
  7. 7“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8. 8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9. 9국힘 “가덕 건설 의지 없는 정부…공사비 증액 확약해야”
  10. 10정치권 “능인선원 경영능력 불합격…국제신문 회생 동의를”
  1. 1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2. 2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3. 3“부산 해양수도·북극항로 육성, 선원 역할 중요”
  4. 4[증시와이드] 불확실성 커진 증시…우량주 중심 냉정한 대응을
  5. 5한진칼 주식 더 사는 조원태…호반과 지분경쟁 2R
  6. 62050년 중간저장시설·2060년 영구시설…정부, 방폐물 관리 3차 계획안 여론 수렴
  7. 7‘반도체 소부장’ 원익 공채에 1만2000명 몰려
  8. 8석유류·공업제품값 ‘고공 행진’ 지속…부산 10월 물가상승 4개월만에 최고(종합)
  9. 9한양증권도 털렸다…고객·임직원 정보 일부 유출
  10. 10주가지수- 2026년 11월 3일
  1. 1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2. 2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3. 3“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4. 4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5. 5해군 3600t급 디젤잠수함 ‘서희함’ 진수
  6. 6에코델타에 유치원·초·고교 추가 신설
  7. 7141개 시민단체도 노동계도 ‘국제신문 회생’ 인가 촉구
  8. 8역삼동 연쇄방화 77세 이명수(종합)
  9. 9면세유 23억 원어치 빼돌린 유통업자 집유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4일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3. 3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4. 4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5. 5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6. 6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7. 7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8. 8[뭐라노] 롯데가 스마트 야구를?
  9. 9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10. 10동의과학대학교,‘제1회 부산지역 전문대학 유학생 축구대회’ 준우승
우리은행
다시 피어나는 신중년
지역 기업과 1대 1 매칭…50+부산포털도 가동
다시 피어나는 신중년
봉사·일·문화 등 다양한 분야 경험·재능 나눠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