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품 제조 日 전시회 출품도
- 대기업 계열사 대표이사 등
- 가담 임직원 5명·법인 입건

수십억 원을 들여 힘겹게 국산화에 성공한 부산지역 중소기업의 최첨단 기술을 빼내 똑같은 제품을 생산, 판매하려 한 국내 유수의 대기업 계열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번 사건은 해외 경쟁업체가 아니라 국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침탈하려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은 이 같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침탈을 엄벌하기 위해 해당 기업 법인과 대표이사까지 관련자 전원을 입건했다.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반도체용 가스필터를 개발·생산한 중소기업의 연구원을 영입(스카우트)한 뒤 제품 설계도면 등을 이용해 같은 제품을 제작한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W사 박모(48) 대표이사 등 임직원 5명과 W사 법인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 대표 등은 2010년 9월 19일 강서구 녹산산업단지 내 T사 연구개발팀 조모(37) 과장을 W사 생산팀 과장으로 영입해 T사가 수개월간 30억 원 상당을 들여 개발한 '반도체용 가스필터' 제작과 관련한 설계도면 등 영업비밀 파일을 취득했다.

이후 박 대표 등은 T사와 같은 제품을 만들어 2011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세미콘 재팬'에 전시하고 본격적인 생산을 위해 수십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 씨는 T사의 핵심 정보를 유출한 대가로 고작 수고비 명목의 500만 원과 연봉 500만 원을 인상받았다. W사는 일본 전시회 출품 뒤 경찰이 압수수색에 나서자 곧바로 사업 추진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T사의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박 대표는 당시 W사의 전략본부장으로 이번 범행을 진두지휘했고, W사는 국내 30대 그룹의 계열사다. 특히 T사가 만든 반도체용 가스필터는 반도체의 표면을 매끄럽게 하려고 분사하는 가스를 초청정·고순도로 만들기 위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장치로, 2007년 8월 T사가 국산화에 성공하기 이전에는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T사는 이 기술로 2010년 22억 원 상당의 매출을 올렸고 2014년까지 180억 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었다. T사는 반도체와 LCD 제조에 필요한 초청정 배관 이음매와 밸브류 국산화에 성공해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일본 후지쓰,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대만 UMC사 등에 납품하고 있다.

조중혁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장은 "이번 W사의 행각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은커녕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해 기술을 침탈한 범죄로, 유사 사례 등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