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10경의 하나인 칠선계곡. 사진은 현재 개방된 칠선계곡에서 비경의 극치를 이루는 옥녀탕. 국제신문 DB

- 전통문화·수려한 자연경관
-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어
- 국내 첫 복합유산 가치 충분

- 그동안 당국·주민 관심 소홀
- 문화재청, 뒤늦게 등재 추진
- 국제적 수준 보존·지원 기대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을 '세계복합유산'으로!

최근 경남 산청·함양군 등 지리산권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리산을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등재가 이뤄진다면 지리산은 한국에서 유일한 세계복합유산이 된다. 지리산은 한국의 명산 중에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생활문화터전으로 살아온 대표적인 산이다. 지리산은 문화유산의 등재 기준 중 '인류의 전통적인 주거지, 용지로 인정받은 지역 가운데 문화적 특성이 두드러진 곳'과 자연유산 기준 중 '매우 보기 드문 수려한 자연경관이 있는 지역' 등의 요건을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지리산이 세계유산 가운데 복합유산 범주에 가장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왜 복합유산인가

누구나 알고있다시피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靈山)이자 민간의 기도처, 또 국립공원의 지위를 갖고 있는 명승지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신령스러운 산의 공간적인 특성과 사람의 생활문화터전이 통합된 새로운 지평의 산악문화경관 개념'을 제시하는 곳이 지리산이라 보고 있다.

지리산은 예부터 신성한 어머니(聖母)의 산으로 여겨져 많은 사람이 거주했고 신성시됐다. 삼국시대의 산성과 가야 고분을 비롯한 각종 역사 유적이 남아 있다. 또 국가적인 산신제의가 행해진 곳으로 그 전통은 현재까지 남악제(전남 구례군에서 해마다 4월에 열리는 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자연경관과 국가의례, 민간신앙, 불교문화, 고전문학 등 한민족의 복합적인 문화양상이 어우러진 산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특히 석탑, 석등, 부도, 탑비 등 석조건축은 1000년이 넘도록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상태다.

부도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불교 석조 예술품이다. 목조건축도 300년이 넘는 대규모 불전이 지리산에 적지 않다. 각 경전의 의미를 담은 전각들은 인도, 중국, 일본의 불교와는 다른 우리만의 독자성을 갖고 있다.

■그동안 어떻게 진행됐나

	역사와 풍광을 자랑하는 천년고찰 쌍계사 팔상전. 국제신문 DB

지리산의 복합유산 등재 추진은 지난 2011년 문화재청의 의뢰로 경상대와 순천대로 구성된 지리산권문화연구단이 용역을 수행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국제 2회, 국내 4회 등의 학술세미나가 경남 산청과 전남 구례, 순천, 전북 남원 등지에서 열렸다. 이는 학술적 논의를 통해 지리산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발굴하는 한편 지역민들과 지리산을 끼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지리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가치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또 용역을 수행한 지리산권문화연구단은 지난해 지리산이 갖춘 세계유산적인 가치와 요소를 국내외 전문가들의 논의와 평가를 통해 확정한 뒤 보고서 및 잠정목록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전달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잠정목록 신청을 위한 협조를 받고자 지난해 10월 지리산 인근의 전남·북 3개 광역 단체들과 간담회를 개최했다. 세계유산위원회에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려면 해당 지역 광역단체장이 서명한 잠정목록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3개 광역단체는 관내 기초자치단체들이 지리산 케이블카 유치에 집중하자 이 문제가 해결된 뒤에 신청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이 바람에 더는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는 당국의 무성의에다 지리산에 터를 잡고 사는 주민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문화재청은 학계의 건의를 받아 정밀 조사에 들어가는 등 지리산 세계유산 등재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문화재청의 이런 움직임과는 별개로 지리산권 7개 문화원장 협의체인 지리산권문화원장협의회 등도 지난 5월 모임을 갖고 지리산의 복합유산 등재를 시도하고 있다.

■단순 수치 이상의 기대효과

지리산이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을 때 첫 번째 이점은 우리의 산을 국내외에 널리 홍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지리산이 맞닿은 3개도 5개 시·군은 물론 인근 지역까지 관광명소화되는 등 주민들의 소득향상과도 직결된다. 이와 함께 국민적 자긍심과 의식 제고는 물론이고 국가적 책임감 형성과 체계적인 보존관리 강화 등도 기대된다.

특히 훼손방지와 영구보존을 위해 국제적 수준을 갖춘 전문가에 의한 기술지원과 자문, 세계유산기금 재정지원도 가능하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사원과 크로아티아의 역사도시를 복원하고자 유네스코가 파견한 전문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다. 베트남의 후에 궁전, 예멘공화국의 역사도시인 사나 역시 유네스코의 특별 관리를 받고 있다.

최원석(경상대 인문 한국) 교수는 "가까운 중국만 해도 태산, 황산 등 8개가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명산이 포함된 적이 없다"며 "등재로 인해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은 일반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라고 강조했다.


# 광역단체 세계유산 인식전환 필요

■ 등재 추진 성공 열쇠는

- 케이블카 유치 경쟁 탈피 협력

지리산의 세계복합유산 등재에는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우선 문화재청이 일을 진행하고 싶어도 해당 광역단체의 협조 없이는 이루기 어렵다.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주체는 광역단체이기 때문이다.

현재 지리산은 경남과 전남·북 등 3개 광역단체와 경남 하동 산청 함양,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5개 시·군이 맞닿아 있다. 이들이 상호협력을 해야만 등재를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광역단체가 지리산을 세계복합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는 지금으로서는 알기 어렵다. 세계유산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다.

현재 지리산권 지방자치단체는 단기적 경제적 이익이 있는 케이블카의 설치에만 혈안이 돼 전력을 쏟고 있다. 광역단체도 무관심한 실정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남한산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자 동분서주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 같은 상황은 지리산의 세계유산 추진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리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자연유산이나 복합유산 추진은 힘들다는 것이 대체적인 판단이다. 일부에서는 중국 황산을 예로 들어 케이블카 설치 여부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지리산댐(용유댐) 설치 건은 앞으로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우리나라 세계유산 현황은

◇ 유네스코 10건 보유

- 종묘, 하회·양동마을 등 문화 9건
- 제주 '화산섬·용암동굴' 자연 1건

2013년 8월 현재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세계유산은 모두 10건이다. 이 가운데 문화유산은 9건, 자연유산이 1건이다.

문화유산은 종묘(1995년)를 비롯해 해인사 장경판전(1995년), 불국사·석굴암(1995년), 수원 화성(1997년), 창덕궁(1997년), 경주 역사유적지구(2000년),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2000년), 조선왕릉(2009년), 하회·양동마을(2010년)이다. 자연유산으로는 지난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