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서 한 택배기사가 도로명주소에 아직 익숙지 못해 스마트폰으로 예전의 지번주소를 일일이 검색해가며 물품을 배송하고 있다. 전민철 프리랜서

- 도로명 표기 정확성 떨어져
- 일반주택·상가 밀집지역서
- 집배원들 '미로 찾기' 일쑤

- 사고 잦아 불안한 소비자들
- 아예 지번주소 함께 쓰기도

"새 도로명주소 단디 안 적으면 집 몬 찾습니데이."

9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에서 등기우편물을 배달하던 집배원 김모(43) 씨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김 씨는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쉴 틈 없이 시내 곳곳을 누볐다. 하루 배달 건수만 보통 800여 건. 하지만 새로 바뀐 도로명주소 탓에 배달 시간이 평소보다 1~2시간이나 더 늘어났다고 했다.

김 씨는 해운대구 반여동 재송동 우동 중동 좌동 송정동 등 여러 구역을 담당한다. 그는 "반여동에서 송정동까지 '해운대로'로 도로명주소가 시작되는데 숫자 한 개만 잘못 적어도 주소를 찾을 수 없다"며 "젊은 층은 그나마 도로명주소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지만, 연세가 지긋한 노인분들은 '대충 주소를 적어도 (집배원이) 알아서 우편물을 갖다 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날 부산지법 동부지원에 400여 건의 우편물을 배달했다. 살을 에는 강추위였지만 김 씨의 얼굴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나마 관공서는 도로명주소를 사용하는 게 정착돼 배달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문제는 일반 주택이나 상가 등이다. 일반 시민에게는 홍보가 부족해 도로명주소 사용률이 많이 떨어진다. 이날 김 씨가 받은 우편물 가운데 지번 주소로 적힌 경우는 무려 80%, 도로명주소로 적힌 것은 20%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주소가 분명치 않은 게 상당 비율을 차지한다. 더욱이 동네 이름만 적혀있고 ○○ 피자집, ○○ 모텔 등 제대로 주소가 적히지 않은 우편물도 많다.

김 씨처럼 오랜 기간 해당 지역을 맡은 베테랑은 가게 상호만 봐도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지만, 동네 지리에 어두운 사람이라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특히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거나 산동네인 경우에는 길 찾기가 미로를 헤매는 수준이다.

김 씨는 "택배 기사나 배달원 가운데 도로명주소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면서 "신속하게 배달업무를 마치려면 도로명주소를 정확하게 사용하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의 동료인 새내기 이모(33) 씨는 이날 길을 찾느라 진땀을 뺐다. 전봇대에 걸린 도로명주소 표지판과 우편물 주소를 번갈아 쳐다봤다.

특히 도로명주소로 적힌 아파트의 경우에는 동과 아파트 이름이 없어 해당 아파트를 찾느라 온 동네를 헤맸다. 이 씨는 "도로명주소가 익숙하지 않아 배달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이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며칠 전 택배로 물품을 보낸 최지연(여·27·해운대구 반여동) 씨는 "택배 보낼 주소를 도로명주소로 적었는데 택배 기사가 주소를 잘못 읽는 바람에 배달이 지연됐다"며 "택배 기사가 헷갈릴까 봐 이제는 도로명주소와 지번주소를 함께 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