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부산경찰청 브리핑룸에서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이 공식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부산경찰청제공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은 "갑오년이 가고 을미년이 왔는데, 이는 갑이 지고 을이 뜬 것"이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을미년에도 갑질의 횡포는 여전하다.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의 '막말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전형적인 '직장 내 갑의 횡포'로 규정했다. 이를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은 더 험악하다. 치안 등 국민안전을 책임진 조직 내부에서 벌어진 갑질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특별히 이번 사태가 폐쇄적인 경찰 조직의 치부가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시각도 있다.

유명 포털사이트에선 실시간 인기 검색어로 '권기선'이 등극했다.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지자 경찰청은 지난 8일 권 청장에게 '엄중 경고'했다. 엄중 경고는 행정상 공식 징계가 아니다. '여론이 좋지 않으니 자숙하고 조심하라'는 의미의 질책성 경고다. 권 청장이 총경 두 명을 질책하고 한 총경에게 욕을 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모두 업무추진 과정이었다는 이유에서다.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은 9일 오전 공식사과 기자회견까지 부랴부랴 열었다. 권 청장은 "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저의 언행을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고쳐나가겠다"고 말했다. 자진사퇴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죄송합니다"를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공식 사과는 미봉책일 뿐이다. 오히려 사과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던지는 시민도 많다. "직원들과 친근한 분위기에서 소통하자는 취지였는데 욕심이 앞서 과한 언행을 한 것 같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을 내놓은 지 불과 하루 만에 공식사과했다. 부하 직원에게 퍼부은 상습적인 욕설과 모욕적인 발언은 친근감, 소통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과거 언행까지 드러나는 등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자 자기 합리화에 가까운 해명을 한 지 단 하루 만에 공식사과를 한 모양새도 우스꽝스럽다. 당연히 권 청장은 공식사과를 하면서도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경찰청은 진상조사 대신 내용 파악에 나섰고, 공식징계 대신 구두경고에 그쳤다. 경찰청 차원에서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미온대응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단 덮어두자'는 식의 경찰청의 태도는 변화를 거부하는 경직된 조직문화를 고수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찰 수뇌부의 인식에 우려를 표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꼴이다.

대민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조직이 과연 쇄신할 수 있을까. 이번 문제를 최초 제기한 해당 총경이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외면한 채 미봉책에 급급한 경찰 조직이 참 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