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7일 부산 부산진구 경남공고 교정에서 열린 고 강수영 열사 추모제에 참가한 학생들이 묵념하고 있다. 강수영 열사는 4·19혁명 때 부산시내 거리행진에 나섰다가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홍영현 기자 |
- 당시 국제신보 혁명詩 분석
- 총 34편…전국 매체 중 최다
- 3월28일자 김춘수 시작으로
- 당대 이름 있는 시인 릴레이
- 현재 시점서 다시 읽으면
- 젊음 희생됐고 과제 남긴 점
- 세월호 참사와 닮아있어
19일은 4·19 민주혁명 55주년이 되는 날이다.
1960년 4·19혁명은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었다. 당시 한국은 가난했다. 해방된 지 15년밖에 안 돼 미숙한 게 많았던 나라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국민이 "독재정치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지키자"며 일어선 것이 4·19혁명이었다.
지금도 4월 혁명은 국민 속에 살아있다. 민주주의는 소중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일어서는 것은 선(善)이라는 인식을 심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원리가 되어 대한민국호가 흔들릴 때마다 길을 제시했다.
 |
| 4·19혁명 당시의 상황을 적극적이고 상세하게 보도한 국제신보(국제신문의 전신) 1960년 4월 12일 자 3면(위 사진)과 4월 13일 자 3면. 국제신문DB
|
부산 경남의 4·19혁명과 그때 나온 문학 작품·기록을 연구하는 국문학자 이순욱(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부산의 언론은 4월혁명 때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가장 적극적으로 정론직필의 보도를 했다. 그 가운데서도 국제신보(국제신문의 전신)가 가장 앞섰다고 볼 수 있다"며 "4월 혁명과 관련해 국제신보가 1960년 3월~12월 실은 시가 34편으로 전국 매체 가운데 가장 많았던 것도 이를 말해준다"고 17일 밝혔다.
당시 국제신보를 펼쳐 언론에 비친 4·19와 혁명시를 다시 살펴보았다. 전국에서 4월 혁명시를 신문에 가장 먼저 실은 시인은 '꽃'의 시인 김춘수였다.
그 시가 바로 국제신보 1960년 3월 28일 자 2면에 실린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마산사건에 희생된 소년들의 영전에'이다.
시는 이렇게 시작하며 '희생된 소년들'을 애타게 부른다. '남성동파출소에서 시청으로 가는 대로상에 / 또는 / 남성동파출소에서 북마산파출소로 가는 대로상에 / 너는 보았는가… / 뿌린 핏방울을 /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선연했던 것을…'
같은 해 4월 14일 자에는 정공채 시인의 '하늘이여'가 1면 상단에 실린다. 1면 머리기사에 버금가는 배치로, 지금 보아도 파격의 편집이다. 경남 하동 출신 정공채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하늘이여'가 꼽힌다. '…꽃같이 피어 오르는 소년을 / 남쪽바다 / 부두앞 수면 위로 / 실종(失踪)은 얼굴에 포탄을 박아 / 십칠 세를 떠올렸습니다…이땅에 자라나는 민주주의의 / 어린 수목(樹木) 때문에 / 이땅에 자라나는 / 어린 소년이 죽어야 합니까….'
시위에 나섰다가 최루탄이 얼굴에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소년 김주열의 시신 앞에서 어른 정공채는 운다.
요즘 페이스북에서 유행하는 세월호 추모 릴레이 물결처럼, 유명한 여성 시조시인 이영도가 이어받는다. '…행악이 사직을 흔들어도 말없이 견뎌온 백성 / 가슴 가슴 터지는 분노 천둥하는 우레인데 / 돌아갈 하늘도 없는가 피도 푸른 목숨이여!…'(4월 19일 자 4면) 이어 낯익은 이름이 나온다. 부경대 총장과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지낸 강남주 시인의 시 '십구세 소년 죽음-합동위령제에 부쳐'(4월 24일 자 3면)가 스승인 향파 이주홍의 애도 시 '꽃들에 부치어-4·19에 져버린 젊음들의 영전에'(같은 날 4면)와 함께 실렸다.
장하보 김태홍 고두동 박남수 박두진 등 당대의 이름 높은 시인도 '4·19의 시 릴레이'에 참여했다.
4·19혁명 당시의 시를 55년이 지난 2015년 4월의 시점에 다시 읽어보면 비슷한 점이 있다. 그때도 지금처럼 '어른'들이 희생된 '젊음'들을 위해 울고 있다는 것과 '부당함 앞에서는 가만있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한다는 점이다. 4·19 때 희생된 젊은이들이 '민주 한국' 건설을, 세월호 참사 때 떠난 청춘들이 시스템과 철학을 새로 갖춘 '안전 한국'을 각각 과제로 남긴 점에서 결이 다를 뿐이다.
강남주 시인은 "4·19 당시 부산 시내 시위에 나섰다가 연행된 뒤 풀려났을 때 국제신보 최계락 부장이 '시 한 편 쓰라' 해서 '십구세 소년 죽음'을 투고했다. 당시 젊은이의 국가관과 공동체 의식이 요즘 젊은이에게 이어졌으면 한다. 아울러 4·19혁명은 부산과 경남 지역의 힘이 매우 컸음이 연구를 통해 더 알려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