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사진사 카와타 키이치가 촬영한 1876년 개항 직전의 부산항.

- 폭리 취하며 쌀·콩 대량 반출
- 곡물가격 상승해 민심 흉흉
- 조정, 조선상인에 편법 과세
- 수입품 매매 이뤄지지 않자
- 일본, 군함 보내 무관세 강요

1876년 병자수호조약으로 개항하던 그해, 우리나라는 개항이라는 변화의 바람보다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에 더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 모른다. 온 나라가 심한 가뭄을 겪고 있어 그해 초부터 기우제를 지내기 시작해서 6월에는 고종 임금이 직접 사직단에 나가 특별기우제를 지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특히 전라도의 경우 병자년에는 큰 가뭄으로, 그다음 해인 정축년에는 콜레라까지 발생하여 마을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끊기고 들에는 곡물이 사라지는 지경에 빠졌다.

'병자년 까마귀 빈 뒷간 들여다보듯 한다'는 속담만 보더라도 가뭄으로 인한 굶주림과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근 중국을 비롯하여 인도, 러시아, 중남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가 가뭄으로 대재앙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흉흉한 시절을 배경으로 부산항은 본의 아니게 개항의 뱃고동 소리를 울렸다. 호시탐탐 개항 기회를 노리던 무역상들에게 뱃고동 소리는 마치 가뭄의 단비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가뜩이나 무관세로 개항되었으니 일본 상인으로서는 더욱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고나 할까.

개항을 전후해서 중국과 일본 상인들이 단연 압도적으로 많이 조선에 들여온 상품은 영국산 기계 섬유면제품인 옥양목(玉洋木)이었다. 상품명은 카네킨(canequine·金巾)으로 수입되곤 했는데 당시 사대부 집안에서 애용하던 박래품의 하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옥처럼 하얀 서양 옷감이라고 해서 옥양목이라 불렀다. 영국은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후 중국을 개항시켜 자국 상품을 아시아에 수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대표적인 항구가 상하이였다. 이곳에서 중국 상인들은 면제품을 동아시아 각지로 재수출하였다.

특히 일본은 이러한 주변국의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처하면서 1877년에 나가사키와 부산 간에 정기 직항로를 개설, 상해에서 건너온 옥양목을 조선에 독점 중계무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중국 상인들이 앞서 누려오던 무역 기득권을 서서히 빼앗아갔다. 이어서 1878년에는 일본 국립제일은행 부산지점까지 개설하면서 드디어 해운과 금융을 우리나라에 침투시켜 무관세 무역을 위한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이에 힘입어 1878년 당시 우리나라에 수입된 영국제 면제품은 전 수입품의 76%에 달하였고, 수출품은 쌀이 약 60%를 차지하였다. 일본 상인들은 옥양목을 통한 중계무역으로 폭리를 취하고 그 이익금으로 쌀과 콩을 대량 구입하여 자기 나라로 반출했다. 병자년 흉년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많은 곡류가 반출되다 보니 곡물 가격은 뛰고 품귀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방곡령은 이런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서 나온 지방관의 고민이었다. 여기에 외국산 면제품 유입으로 삼베, 모시와 같은 가내공업 기반마저 흔들리게 되어 더욱 민심이 나빠졌다.

이렇게 적나라한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곳이 당시 조선의 유일한 개항장 부산항이었다. 선착장에는 일본 상인의 중계무역상품인 면제품과 일본으로 싣고 나갈 쌀가마 등이 가득히 쌓여 있었다. 이대로 두면 조선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1878년 7월 19일 이 지역을 담당하는 경상좌도 암행어사 이만직은 이러한 정황에 대해서 별단(別單)을 올렸다.

조정에서 검토한 후 고종의 윤허를 받아 당시 동래부사 윤치화 앞으로 내려온 지시 내용은 '세목책자(稅目冊子)와 함께 수입품에 대한 수세(收稅)조치'였다. 관세는 수입자나 화주가 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조약을 맺으면서 무관세를 인정했기 때문에 수입자인 일본 상인에게 관세를 물릴 수가 없었다.

부득이 1978년 9월 28일에 두모진에 있는 변찰소(辨察所·동구 수정초등학교 부근) 내에서 일본 상인으로부터 구매하는 조선(동래) 상인에게 수세라는 명목으로 과세하였다. 그러자 일본 상인들은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이유로 반발이 심했다. 그리고는 수세를 간접적인 관세로 보고 정세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동래부사가 쉽게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일본은 신예 군함 비예환(比叡丸)을 부산항으로 보내 무력시위를 벌이면서 사건을 비화시켰다.

결국, 3개월 후에 우리 조정은 수세를 중지하고 만다. 이것이 두모진과세사건이다. 개항 당시 무관세 폐단에 대해 수세로 대처해 보았지만, 일본의 무력 앞에서는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오히려 일본은 그다음 해에 조선에서의 일본 화폐 통용과 해안에 등대·부표 설치 등 7가지 피해배상 요구를 내걸며 옥죄어왔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