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까지 소외받지 않으려던
- 망자들 마지막 모습 아랑곳없이
- 붕괴된 지역공동체는 침묵·외면
- 관 주도의 절망사 예방기관보다
- 민간 주도 컨트롤타워 만들어
- 상담부터 자살예방까지 도와야
지난해 40대 남성이 절망사를 택했다. 그가 마지막을 보낸 장소는 다세대주택 옥상이었다. 그곳은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 속의 섬 같은 주택가였다. 앞쪽으로 지상구간의 도시철도가 지나고 옆에는 7층 규모의 빌딩이 서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그곳에 유서 13장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행동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가족과 사회를 향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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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3일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에서 학생들이 자살 예방 플래시몹을 펼치고 있다. 강덕철 선임기자 |
본지 취재팀이 지난해와 올해(10월까지) 부산의 20·40대 절망사 377건을 분석한 결과 마지막으로 선택한 장소는 실내가 257건(68%), 실외가 120건(32%)이었다. 실내는 집이나 숙박업소 등이고 실외는 공공장소, 야산, 옥상 등이다. 아미정신건강센터 박미옥 원장은 "실외를 택한 것은 자기 죽음을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라며 "사후에는 세상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안타까운 것은 절망사를 실행하기 전 상당수가 가족이나 주위에 알렸다는 점이다. 377건 중 95건(25%)에서 사전 암시가 발견됐다. 네 명 중 한 명이 가족과 친구 등에게 문자메시지나 SNS, 전화, 말로 자기 심정을 내비친 것이다. 이는 절망사를 선택한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가족이나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전 암시 95건과 유서 89건을 살펴보면 이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절망사가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과 가족, 세상에 대한 원망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을 추출해 보면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힘들어요' '잘 살아요' '사랑합니다' 등이다.
이 밖에 자살 재시도가 27건이었고 8년 동안 열 번이나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역시 관심이 필요했던 대목이다.
■사회의 외면
사회는 침묵하고 외면했다. 본지는 절망사가 발생한 일부 지역을 직접 다니면서 가족과 이웃 반응을 취재했다. 대부분 모르거나 말하기를 꺼렸다. 20·40대 절망사의 경우 아파트, 원룸, 주택 등 주거 형태가 다양했는데 주변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아파트는 접근이 어려웠으며 동네 주민들은 말을 꺼내는 순간 "집값 내려간다"고 취재 자체를 거부했다. 단절이 심한 원룸에 사는 주민들은 막연하게 사건 발생 정도만 인식했다. 사정은 주택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원룸에서 40대 부부가 절망사를 선택했던 지역에서는 인근 슈퍼, 미용실, 중국집, 분식집, 세탁소, 부동산 중개소 등을 상대로 취재했지만 모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 외에는 알지 못했다. 사회안전망의 첫 번째 울타리인 가족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도 붕괴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응답하라, 가족과 지역 공동체
절망사 해결의 첫걸음은 우리 주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과 지역 공동체 회복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하다. 가족이 그 역할을 해야 하지만 가족이 무너졌다. 지난 10월 현재 부산의 세대당 인구는 2.48명에 불과하고 1, 2인 세대가 전체의 55.5%에 달한다. 가족 울타리 내에서 이야기할 상대 자체가 없는 셈이다.
사회복지연대 박민성 사무처장은 "1, 2인 세대가 절반을 넘는 현실에서 가족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가족을 먼저 회복하지 않으면 사회안전망을 복원하기 어렵다"며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라도 가족 울타리를 만들고 지역 공동체를 구성해 사회안전망을 몇 겹으로 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응답하라, 사회
본지 자문단은 절망사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으로 비정규직 해소나 일자리 창출 같은 뜬구름 잡는 구호보다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물론 현재 부산에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구가 있다. 2012년 '부산광역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조례'가 제정되면서 '부산시 자살 예방 전문위원회'가 결성됐다. 부산시와 부산경찰청, 부산시교육청, 생명의 전화, 부산시 소방본부, 인제대병원 등 관련 기관 관계자들이 위원으로 활동한다. 1년에 2회 모임을 하며 부산시의 자발예방대책을 심의한다.
하지만 관 주도로 움직이는 이 위원회는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민간 활동가가 주도하는 컨트롤타워다. 거창한 기구가 아니다. 민간 활동가가 자살 예방과 관련 있는 기관들과 연계해 실질적인 정책과 예방 대책을 마련하고 운동을 주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살 예방 전문위원회에 참가하는 기관뿐만 아니라 신용회복위원회 부산지부, 부산고용노동청 등 자살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 단체의 실무자들까지 포함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유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학교 교육 강화도 절실하다. 현재 부산시 자살예방센터와 생명의 전화가 각 학교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지만 전면적인 도입이 요구된다. 부산시 자살예방센터 이미경 부센터장은 "내년부터 중학교에 자유학기제가 도입되면 '정신건강 증진과 자살 예방' 교육이 시행돼야 한다. 어릴 때부터 개인과 사회안전망 확대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확한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 해마다 부산에서 발생하는 자살은 평균 1000여 건인데 2011년 문을 연 자살예방센터가 실시하는 심리적 부검은 190건에 그친다. 이것도 경찰의 변사보고서 수준이다. 전문 상담사 면담을 통해 시행하는 정밀 심리적 부검은 지난해 50건에 불과했다. 대책을 세우려면 정확한 원인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 구조적 문제 파헤친 뒤 사회운동·여론조성해야
- 본지 자문단 회의서 입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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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8일 열린 본지 자문단 회의 모습. |
지난달 18일 열린 회의에서 자문단은 20·40대 절망사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회운동이 필요하고 언론도 나서서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동서대 김영미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문제 등 시대적인 상황만 논의하면 모호하니까 부산에서 20·40대에 절망사가 많은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치는 게 먼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부산 생명의 전화 변윤진 사무국장은 "20·40대 절망사를 개인 책임으로 돌릴 게 아니라 사회가 위기를 만든 결과로 인식해야 한다"며 "이제 사회가 변해야 하고 한두 개 기관에 미루지 말고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 자살예방센터 이미경 부센터장은 "협의 이혼 상담사를 상대로 홍보하거나 고용노동청에서 실업급여 타려는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는데 어려웠다"며 "고위험군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방법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 각 기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미정신건강센터 박미옥 원장은 "20·40대 모두 실업이 주요 원인인데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과의 단절을 의미하고 개인이 고립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며 "일자리 창출 같은 거대 담론도 중요하지만 고립된 개인에게 관심을 주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일의료재단 한선심 이사장은 "우리 사회가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은데 누구나 벼랑 끝에 몰리면 선택할 수 있는 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유족도 힘들면 숨기지 말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 지원·협조
전일의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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