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호는 본래 미군 기뢰에 의해 적기(부산 남구 감만동 일대) 앞바다에 침몰된 일본 화물선 화포환(和浦丸)인데, 해방 뒤 인양·수리돼 우리나라 국적선이 됐다.

한국전쟁은 부산을 '피난의 도시'로 만들었다. 피난민에 이어 수도도 피난을 오다보니까 임시 수도가 됐다. 1950년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5일까지 햇수로 3년, 일수로 1000일이 넘는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당시 상황에 대해 '임시수도 1000일'이라는 말을 한다.

불시에 일어난 전쟁은 우리나라에 많은 인명, 재산 피해와 함께 고통을 안겨 주었다. 나라가 어수선하고 분위기마저 암울해지면서 모두가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두된 것이 전쟁에 지친 국민에게 활기와 희망을 주기 위한 분위기 쇄신책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52년 10월 21일, 부산항 제1부두에서 진행된 1만t급 화물선 '고려(高麗·KOREA)호'의 취항식이었다. 전쟁에서 나온 고철 1460t을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최초로 태극기를 달고 태평양을 횡단하는 감동적인 출항행사였다. 당시만 해도 이처럼 거대한 화물선은 미국이나 영국 같은 몇몇 선진국에서나 보유할 정도였는데 전쟁으로 힘겨워했던 우리나라가 이러한 배를 운용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자랑이자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만한 메가톤급의 사건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취항식 당일 현장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뒤늦게 고려호를 찾았다. 그런데 대통령도 감격했던 것일까? 배 현측에 표시된'M/S.KOREA'를 'MISS KOREA'로 잘못 읽고 말았다. M/S는 Motor Ship의 약자로 내연기선(內燃機船)이란 뜻이었다. 이로 인해 '고려호'는 본명보다 '미스코리아호'란 별칭이 더 유명하게 됐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1953년 5월 전쟁의 암울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또다른 행사가 열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스코리아 대회라 할 수 있는 '여성 경염(아리따움을 겨룬다는 뜻) 대회'로, 당시 임시수도 부산에서 창간된 중앙일보(지금의 중앙일보와 다름)가 주최했다.

전쟁 중 대회여서 그런지 대외적 관심도나 심사 방법이 특이했다. 미혼녀 만을 대상으로 한 예선 선발 기준을 보면 몸은 신장 기준(다섯 자·약 150㎝ 남짓)에 맞춰 깡마르거나 뚱뚱하지 않고, 얼굴은 둥그스름하고 복스러워야 했다. 또 옷을 입었을 때 등이 반듯하고 걸을 때 다리가 휘어지지 않으며 웃을 때 치아가 하얗고 반듯해야 하는 겉모습 외에도 현모양처의 기품이 필수 조건이었다.

당시에도 미인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수영복 심사였던 것 같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분위기를 고려해 비공개로 수영복 차림의 예선심사를 했다. 본선 심사는 개회식조차 못하고 취소가 됐는데 소문을 듣고 많은 이들이 몰려 심사장이 아수라장이 됐기 때문이다. 결국 며칠 뒤 예선 통과 미인과 심사위원만 따로 심사를 했다. 1등의 영예는 당시 숙명여대 영문과 재학생이던 강귀희가 차지했다. 이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미스코리아'는 임시수도 부산에서 탄생됐다.

우연의 일치일까? 결과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임시수도 부산에서의 미인 대회 탄생을 예견이나 한 것처럼 고려호 선상에서 '미스코리아'라는 말을 유행시킨 셈이 됐다. 전쟁의 와중에 분위기 쇄신을 위해 바다와 뭍에서 진행한 행사가 모두 '미스코리아'란 명칭이 붙게 된 게 오늘날 생각해도 참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부산세관박물관장